
이른바 이상향(理想鄕)이란 모두가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지어낸 가공의 장소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유토피아와 함께 대표적인 이상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 중에 ‘샹그릴라’가 있다. 티베트 고원지대 어느 깊은 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이를 선망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 이름이 다양하게 쓰인다. 1960년대에는 동명의 4인조 미국 걸 그룹이 생겨났고, 호텔 등 온갖 상호에도 애용된다. 중국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여 년 전 윈난성(雲南省)의 어느 지역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개명했다. 이 이상향은 1933년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 이라는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1937년에는 미국에서 흑백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필자는 젊은 시절 이를 TV의 ‘명화극장’에서 본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한 장면만은 머릿속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곳의 한 젊은 여인이 외부에서 온 젊은이와 함께 바깥세상으로 나오자 바로 온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일본 고대 설화에도 나온다. 용왕의 초대를 받아 바닷속 용궁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우라시마 타로(浦島太郎)가 육지로 돌아온 뒤에 바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이상 세계와 현실의 공존이 불가능함을 말해 준다. 외부의 현실과 접촉하는 순간 이상 세계의 모든 것은 무산(霧散)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자(老子)가 염원했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 세계도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언젠가는 외부의 다른 세계와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으면, 다들 “그 음식을 달게 먹고 그 복장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그 풍속을 즐길 수 있다(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웃 나라와 마주 보고 닭과 개 소리가 들려도 사람들은 늙어 죽도록 서로 왕래하지 않아(鄰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세상이 평화롭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서로 왕래하지 않아’라는 말이다. 외부와 왕래가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의 의식주, 생활양식, 문화와 제도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일단 왕래가 시작되면, 바로 이웃과 다툼이 생기고 서로 비교하게 돼 불행해지는 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도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 같다. 지난 세기 1930년대에 남미 열대우림의 몇 개 소수 부족 탐사 경험담을 담아 1950년대에 펴낸 ‘슬픈 열대’가 그의 대표작이다. 여기서 그는 원시 부족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그들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방식, 제도, 문화와 풍습으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합리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사회를 형성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독립적인 사회구조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을 서구 문명의 기준으로 야만스럽다거나 낙후됐다고 경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일부 원시 부족의 식인 풍습조차도 열악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이해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세월을 외부와 단절된 채로 독특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오던 그 세계도 서구 문명이 침투하면서 무너져가고 있어, 이를 슬퍼한다는 것이다.
근자에 난데없이 ‘내재적(內在的) 접근법’ 이라는 말이 간간이 들려온다.
이 말은 독일에 거주하는 어느 친북 사회학자가 오래전에 제창하면서 유명해졌다. 간단히 말해서 북한을 외부 세계와 비교하지 말고, 그 독특한 구조 속에서 분석하고 이해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부 세계와 비교하고 외부 세계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순간, 그 독특한 구조 속 모든 것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영원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그 구조 속에서 그럭저럭 잘 살아갔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노자가 우려했듯이 외부와 접촉하고 왕래하면서 많은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과거 냉전 시대에 서독의 어느 학자가 동독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 같은 주장을 처음 펼쳐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동독 정보기관의 스파이였음이 밝혀졌다는 후문도 있다.
내재적 접근법도 따지고 보면, 열대우림 속의 원시 부족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이해해 주자고 한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와 그 후계자에 의해 한동안 성행하던 ‘구조주의’라는 학문 조류가 쇠퇴한 것처럼 북한을 향한 이 내재적 접근법도 이제 설 자리를 잃은 듯이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 내재적 접근법은 그 뿌리가 깊고도 널리 퍼져 사라질 줄 모른다. 대중은 자기와 관계가 좋은 사람에 대해서는 다소의 결함이나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내재적 접근법으로 이해하고 옹호해 주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치인의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과 큰 허물이 만천하에 밝혀졌는데도 이 내재적 접근법으로 그 사실을 부정하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나 대중 속 많은 이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재적 접근법을 배제해야 하는 두 부류가 있다.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학자와 그 성격이 학자에 가장 가까운 판사다. 학자는 논문 작성 등 일체의 학술 행위에서 철저하고 완벽한 증거와 자료로써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특히 그 연구가 국가의 중요 정책에 관한 것일 때는 그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더욱 엄격한 학자적 양심이 요구된다. 만약 이에서 일탈해 내재적 접근법으로 기울어진다면, 사이비(似而非) 또는 어용(御用)의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
편향적 이념과 내재적 접근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판사 등 중요한 위치의 공인(公人)에게 사서(四書) 중의 ‘대학(大學)’은 다음과 같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람은 자기와 가깝거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천시하거나 미워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자기가 두려워하거나 존경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자기가 슬퍼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여기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좋아하면서 그 나쁜 점을 알거나 미워하면서 그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는 적다(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고 말한다. 이어서 당시 유행하던 속담을 빌려 “사람은 자기 자식의 나쁜 점은 알지 못하고 자기 밭의 싹이 커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할 모든 공직자가 경계하고 명심할 수신(修身)의 기본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는 “외거불기수, 내거불실친(外擧不棄讐, 內擧不失親)” 또는 “내거불피친, 외거불피수(內擧不避親, 外擧不避讐)”란 말이 나온다. 진(晉)의 대부 기해(祁奚)가 인재를 추천할 때 현명하기만 하다면 밖으로는 원수도 내치지 않았고 안으로는 친족을 기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마음가짐이 공정하고 떳떳해 오직 나라를 위해 사심 없는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한비자(韓非子)’에도 진의 조무(趙武)가 이렇게 46명이나 추천했지만, 모두 훌륭한 인재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수양을 통해 도덕성을 갖춘 위정자가 형평과 공정을 높이 받들어 훌륭한 인재를 등용한다면, 아무도 내재적 접근법에 따른 인사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다른 나라의 옛날 일이라도 그저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