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 /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 / 사진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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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란티스그룹 산하 이탈리아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함께 이탈리아 3대 명차로 불린다. 한국에선 인지도가 낮아 인기도 약간 부족하지만, 한국보다 자동차 문화가 길고 깊은 일본에서는 상당한 인기 브랜드다. 

마세라티는 전통 카로체리아(carrozzeria· 수제작 차) 브랜드로, 공학적 완성도에서 나오는 독일 브랜드의 안정감 있는 성능과는 다른 느낌을 내는 게 특징이다. 이탈리아 차 특유의 야생마와 같은 레이싱 유전자(DNA)도 있다. 

마세라티는 이전부터 강렬한 배기음, 정제되지 않은 감각의 엔진 성능, 날카로운 핸들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용량 엔진(내연기관)이 고성능을 낼 때마다 뿜어내는 각종 물질은 기후 위기 시대에 들어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이 때문에 마세라티는 2028년까지 전 라인업의 순수 전기차 전환을 계획 중인데, 주력 차종인 그란투리스모(GranTurismo), 그란카브리오(GranCabrio), 그레칼레(Grecale)부터 전기동력계를 얹기 시작했다. 슈퍼 전기차 그란카브리오 폴고레(Folgore)를 서울과 인천 일대에서 시승했다. 

번개 같은 오픈카  

마세라티가 전기차 라인업 이름으로 내세운 폴고레는 이탈리아 말로 ‘번개’라는 의미다. 전동화 전환 이후에도 마세라티가 가지고  있는 날렵함과 날카로움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란카브리오는 마세라티의 주력 차종 중 하나로, 지붕이 열리는 오픈카다. 오픈카는 자동차 제조국 혹은 브랜드마다 부르는 말이 조금씩 다른데, 미국 브랜드나 BMW, 재규어 등은 ‘컨버터블(convertible)’이라는 용어를 주로 붙이고,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은 ‘카브리올레(cabriolet)’를 주로 쓴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은 ‘스파이더(spyder)’로 부르기도 한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의 ‘카브리오’는 카브리올레를 줄인 말이다. 말(馬)이 끄는 개방형 이륜마차에서 유래했다. 형제 차인 그란투리스모가 ‘긴 거리를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차’를 뜻하기 때문에 카브리오에 ‘그란’이라는 말을 붙여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오픈카’라는 의미를 완성했다. 

전기 고성능에 초점 맞춘 디자인

그란카브리오 폴고레의 외관은 기존 내연기관 버전과 큰 차이가 없다. 또 그란투리스모의 모습과도 거의 흡사하다. 길게 뻗은 보닛(자동차의 앞부분)과 네 개의 펜더(바퀴를 덮는 외부 패널)가 교차하며 차체를 듬직하게 받치고 있는 모습은 마세라티의 고전적이면서 전통적인 비율이다. 

루프 라인(지붕 선)은 차 뒤로 갈수록 역동적으로 떨어져 차체 각 기둥(필러)의 유려한 곡선을 강조한다. 시속 50㎞ 이하 주행 중에도 여닫을 수 있는 지붕은 여는 데 약 14초, 닫는 데 약 16초가 걸린다. 원터치 스위치로 간단하게 작동한다. 

마세라티의 새로운 시그니처 라이트(조명)인 수직형 라이트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내연기관 모델과 다른 폴고레 전용 그릴을 넣었는데, 이 그릴은 검은 비단 감성의 바탕 에 광택을 낸 검은 마감재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범퍼 아래 스플리터(돌출 날개)와 창문을 감싼 몰딩, 문손잡이도 유광 검은색 마감 처리로 특색을 냈다. 마세라티 로고와 폴고레 레터링은 어두운 구리색 마감으로 ‘전기’를 강조하고 있다. 

효율을 중시하는 전기차답게 내연기관차보다 공기저항 계수를 약 7% 개선했다. 전기차는 공기저항 계수가 낮을수록 주행거리 확보에 유리하다. 

실내 앞쪽은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8.8인치 컴포트 디스플레이, 12.2인치 디지털 계기판,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디지털시계, 디지털 리어 뷰 미러 등 다양한 디지털 감성을 입혔다. 자동차의 대부분 기능은 이들 디스플레이를 터치 조작해 사용할 수 있다. 각 기능을 활성화하는 탭(tap)은 밝아서 눈에 잘 들어오며, 조작이 쉬운 편이다. 또 화려한 그래픽으로 전기차 느낌을 십분 살려내고 있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 폐그물로 만든 신소재 ‘에코닐’을 좌석과 천장 등에 사용했다. 감촉이 고급 소재와 같이 부드럽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 내부. / 사진 마세라티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 내부. / 사진 마세라티

전기 주행감, 가상 엔진음으로 살려

800V(볼트) 기반 88.36 (킬로와트시) 리튬이온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제조)를 탑재한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는 앞바퀴에 한 개, 뒷바퀴에 두 개 등 총 세 개의 전기모터(300㎾급)를 장착했다. 최고 출력은 778마력이며 최대 토크는 1350 (뉴턴엠·1 은 1m 떨어진 곳에 1뉴턴의 힘을 줬을 때 생기는 회전력)다. 내연기관 그란카브리오가 최고 550마력의 출력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전기동력계를 장착한 장점이 분명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 시간은 2.7초에 불과하다. 최고 속도는 시속 290㎞로, 국내 도로에서 이 속도를 경험할 일이 없다는 게 아쉽다. 배터리를 모두 채우면 최대 321㎞(복합)를 주행할 수 있다. 급속 충전을 이용하면 배터리 용량 20%에서 80%까지 약 18분이 소요된다. 

실주행에서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는 낮은 무게중심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차체 무게의 앞뒤 배분이 50 대 50이어서 균형 감각이 좋고, 주행 역동성과 안정감은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또 날렵한 주행감을 내는 데에도 완벽한 무게 배분이 도움이 되고 있다. 

전기차 특유의 즉각적인 힘 전달도 인상적이다.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폭발적인 토크를 쏟아 낸다. 전기모터는 전기차 레이싱 대회 ‘포뮬러E’ 레이싱 카에 장착된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후륜구동(뒷바퀴 굴림) 모드에서도 출력의 100%를 발휘한다. 차 무게가 2.32t이나 나가지만, 레이스 기술인 드리프트도 가능해 보인다. 

승차감은 단단함이 기본이나 생각보다 부드러운 편이다. 슈퍼카지만 운전이 불편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700마력대 슈퍼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운전이 쉽다.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하고 있어 도로 위 과속 방지턱을 쉽게 넘나든다. 

마세라티 특유의 엔진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V8 엔진의 사운드를 디지털로 재현해 냈다. 전기차는 동력을 내는 데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는 가상의 배기음이 귀를 때린다. 현대차 아이오닉5N처럼 과격하지도 않다. 고급 차에 어울리는 중후한 음색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전기차는 전기차답게 조용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마세라티의 내연기관을 좋아하는 기존 팬은 가상이라도 이런 엔진 소리가 반가울 것이다. 오디오는 이탈리아 브랜드인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의 것을 장착했다. 가상 배기음을 중저음으로 재현해 내는 데 특화돼 있다는 느낌이다. 

폭발적 가속력과 우수한 편안함을 가진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의 가격은 2억8380만원이다. 내연기관을 장착한 그란카브리오 트로페오(3억167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저렴하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