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중국과학원(CAS) 연구진은 2023년 돼지 배아에서 인간 신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장 세포의 40~60%는 인간 세포(빨간색)로 구성 돼 이종 장기 이식의 면역 거부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사진 셀 스탬 셀
21일 동안 돼지 몸에서 박동
돼지는 장기(臟器) 크기와 형태가 사람과 비슷해 수십 년 전부터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심장과 신장 같은 장기가 돼지에게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해도 돼지 장기라서 사람 몸에 들어가면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과학자들은 돼지 몸에서 인간 장기를 키우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라이 박사는 2023년 돼지 배아에서 인간 신장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방법은 같았다. 먼저 사람의 신장으로 자랄 ‘유도만능줄기세포(이하 iPS세포)’를 만든다.
iPS세포는 피부 세포처럼 다 자란 세포가 배아 줄기세포처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초기 미분화 세포 상태로 돌아간 것을 말한다. 일종의 원시세포다. 특히 iPS세포는 배아 줄기세포와는 달리 난자나 수정란을 파괴하지 않고도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들 수 있어 윤리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연구진은 iPS세포에 사멸을 방지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도입했다.
인간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지 3~4일 지나면 배아 세포가 12개로 분열한 상실배(桑實胚) 단계가 된다. 세포가 여러 개로 갈라져 뽕나무 열매 오디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연구진은 이전보다 생존 능력이 강화된 인간 iPS세포를 상실배 돼지 배아에 주입하고 대리모 암컷의 자궁에 이식했다. 그 전에 배아에서 심장을 자라게 하는 유전자 두 개를 없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돼지 배아가 대리모 자궁에서 자라면 다른 장기는 다 돼지 것이지만, 심장은 인간 iPS세포만 자란 것이 된다.
실험 결과, 인간 심장을 가진 돼지 배아는 21일 동안 자라다가 죽었다. 그 전에 돼지 배아의 심장을 살펴보니 같은 단계의 인간 심장과 비슷한 크기로 성장해 박동하고 있었다. 라이 박사는 인간 세포가 돼지 심장의 기능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인간 줄기세포만 형광을 내도록 유전자를 변형해 심장에서 사람 세포가 얼마나 차지하는지 알아봤다. 이번 학회에서는 구체적 수치를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앞서 돼지 배아에서 자란 인간 신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됐다. 당시 신장에서 인간 세포는 40~60%를 차지했다.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 해결할 대안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 장기 이식은 만성 환자가 이식용 인체 장기를 구하기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자들은 돼지 장기가 사람 몸에서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인간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효소 복합체인 유전자 가위로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킬 돼지 유전자를 잘라내는 유전자 편집이다.
하버드대 의대의 조지 처치 교수는 ‘이제네시스(eGenesis)’라는 회사를 세워 돼지 유전자 13가지를 편집하고 돼지 장기를 원숭이에게 이식한 바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돼지 장기를 인간화해서 사람에게 넣겠다는 것이다. 이미 돼지 신장과 심장 등이 이런 방식으로 환자에게 이식돼 일정 기간 기능을 유지했다.
이번 연구는 아예 돼지 몸에서 인간 장기를 만드는, 이른바 ‘키메라(chimera)’ 연구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동물인 키메라처럼, 한 동물에게서 종이 다른 동물의 줄기세포를 키워 발생과 질병을 연구하고 나아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이식용 장기까지 얻자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게 2017년 나카우치 히로미츠(Hiromitsu Nakauchi)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실험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시궁쥐의 몸에서 생쥐의 췌장을 키웠다. 나중에 이 췌장을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치료됐다.
인간 세포를 가진 키메라 동물도 나왔다. 2017년 소크 연구소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Juan Carlos Izpisua Bel-monte) 교수는 사람 줄기세포를 돼지 배아에 이식했다. 수정란을 대리모 암컷 돼지의 자궁에 이식해 3~4주 배양하자 돼지 태아의 근육과 장기에서 사람 세포가 자랐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 사이의 키메라도 성공했다.
키메라 장기가 손상된 장기를 대체하고 정상 작동할 수 있다는 증거도 나왔다. 크리스틴 볼드윈(Kristin Baldwin)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셀’에 “생쥐가 시궁쥐의 줄기세포를 받아 뇌에서 두 동물의 세포가 융합하면서 잃어버렸던 후각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한 동물이 종이 다른 동물의 감각세포를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건은 해당 장기가 전적으로 인간 세포로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면역 거부 반응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 나카우치 교수는 이번 학회에 참석해 “심장 세포가 확실하게 인간 세포인지 확인하려면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라며 “키메라의 일반적인 문제는 인간 세포주가 다른 종의 세포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윤리적 문제도 제기한다. 특히 의식과 관련된 뇌는 키메라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연구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면 영화 ‘혹성탈출’처럼 사람의 의식을 가진 원숭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