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중국인 부유층 등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도쿄 지역. 
(우) 도쿄와 함께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오사카. / 사진 최인한 소장
(좌) 중국인 부유층 등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도쿄 지역.
(우) 도쿄와 함께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오사카. / 사진 최인한 소장

지난 6월 말 도쿄 등 수도권을 다니면서 곳곳에서 물가 상승을 실감했다. 정치 이슈로 확산된 쌀값은 물론 음식값, 숙박료, 기름값 등 모든 소비자가격이 지난해와 비교해 큰 폭으로 뛰었다. 물가와 함께 임금도 오르며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경제 전문가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은 2023년부터 급등세를 타며 1990년 버블 경제 당시보다 더 오른 곳이 많다. 세계 각국이 금리를 인하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국내외 투자자가 일본 부동산 시장에 몰려들어 가격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일본 부동산 가격이 왜 오르는지,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 일본 현지 분위기를 소개한다. 저성장과 초고령사회에서 20여 년 격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도쿄 시내,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이유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군마현 이카호온천과 아카기산 등을 걸으며 인구 감소 시대를 체감했다. 수도권 북쪽 군마현에서 사흘을 보낸 뒤 사이타마현을 거쳐 도쿄 시내로 들어오며 ‘도쿄 일극주의(一極主義)’를 생생히 목격했다. 군마현 현청 소재지 다카사키시만 해도 중심부만 벗어나면 인적이 드물어 썰렁했다. 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현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거리에 사람이 북적이고, 골목 상가에도 활기가 넘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도권 ‘1도 3현(도쿄도·사이타마현·지바현·가나가와현)’ 매물에 수요가 쏠리고 있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 가운데 도쿄 시내 분쿄구(文京구) 주택값이 급등했다는 뉴스가 연일 화제다. 중국 부유층이 도쿄, 요코하마, 고베 등 국제학교에 자녀를 대거 유학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학부모로부터 인기를 끄는 곳이 도쿄대가 있는 분쿄구다. 분쿄구의 중국 국적 주민수는 2022년 4792명에서 3년 만에 8666명으로 증가했다. 부유층 중국인이 분쿄구 아파트와 단독주택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오사카, 고베 지역 부동산 가격도 많이 올랐다. 고베 소재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는 재일교포 박혁신 파이낸셜플래너는 “몇년 전부터 오사카, 고베 지역에서 부유층 중국인이 아파트는 물론 시내 중심가 수익형 빌딩을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서구권과 인도 등의 투자자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부동산 구입에 가세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 전문지 ‘프레지던트’는 7월호에서 일본 부동산 가격이 버블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도쿄 23구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1억1632만엔(약 10억9400만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11.2% 상승했다. 고소득자도 도쿄 시내 신축 아파트에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가격이 오르면서 ‘레이와(令和) 버블’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레이와는 2019년 시작된 일본 천황(왕)의 새 연호다. 도쿄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심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신축 아파트 공급량이 크게 줄어든 게 기본 배경이다. 아베노믹스의 금리 완화 정책에 따라 저금리 환경에서 판매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최근 건자재 및 인건비 인상까지 겹쳐 건축 원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레이와 버블이 1990년쯤 부동산 버블과 다른 건 일부 고액 물건이 평균 가격을 끌어올리는 점이다. 2023년에 준공된 ‘아자부다이힐즈’ 레지던스의 경우 펜트하우스 가격이 200억엔(약 1880억원) 이상이다. 이런 고가 아파트가 지요다, 미나토, 주오, 시부야, 신주쿠 등도심 5개 구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평균 가격을 밀어 올렸다. 

/ 자료=나가시마 오사무 ‘2030년의 부동산’
/ 자료=나가시마 오사무 ‘2030년의 부동산’

빨라지는 일본 부동산 삼극화 현상

부동산 컨설턴트인 나가시마 오사무 사쿠라사무소 회장은 “2025년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 ‘삼극화(三極化)’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0~15% 부동산이 ‘가격 유지 또는 상승’하는 반면 70% 부동산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나머지 15~20% 부동산은 ‘사실상 가치가 없거나 하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시장 전체가 뜨겁게 급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0~85% 부동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모르고 부동산에 투자했다가는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동반 상승했던 1980년대 버블 경제기와 달리 지금은 대도시의 ‘도심’과 ‘역 앞’ ‘역 인근’만 인기가 높다. 국내외 신규 투자자는 도심에서도 대규모 고층 맨션을 선호하는 추세다. 도쿄 시내 5구에 이어 주변 지역인 네리마, 세타가야, 오타 구 등의 역에서 도보 10~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도 사려는 사람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 시장의 삼극화 현상은 수도권뿐만 아니라 다른 대도시로 번졌다. 아키타역, 미야자키역, 고쿠라역 등 역 앞이나 역 인근에 새로 지어진 초고층 맨션에 지방의 지력가나 연예인 등 유명 인사가 입주해 주목받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당분간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걸로 예상한다. 도쿄 등 주요 도시에 초고층 신축 맨션 분양이 오는 2027년까지 예정돼 아파트 가격 상승세를 이끌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기준금리 인상이나 주택론 감세 등 우대 정책이 폐지될 경우 부동산 시장이 조기에 냉각될 가능성이 있다. 증시 움직임도 지켜봐야 한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보다 평균 3~6개월 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6월 30일 기준 일본 닛케이 225는 4만포인트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고치에 근접한 상태다. 다만 일본 부동산 시장은 수요 측면에서 장기 상승세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예측이다. 일본 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을 기록한 뒤 16년째 감소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 축소를 의미한다.

기준금리 오르면 부동산 가격 주춤할 수도

앞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투자 재료는 일본은행(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다.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에서 탈피해 금리 정상화를 향한 발을 내디뎠다. 금리 인상 속도는 경제 상황에 달려있지만, 금리 상승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가격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금리 상승과 함께 부동산 삼극화 현상이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부유층이 구매하는 부동산 물건은 상대적으로 금리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나가시마 컨설턴트는 향후 일본 부동산 투자 포인트를 이렇게 정리했다. △자산 가격이 오르는 물건은 ‘도심’ ‘역전’ ‘역 인근’ 물건 △도쿄 시내에서도 재정 능력이 있는 자치구 부동산 가격 상승 △아파트 시장은 신축에서 중고로 이동 △아파트 관리 상태가 나쁜 물건은 시장가격보다 30~40% 하락 △개인 주택은 가격 하락세 지속 △주택 담보대출은 상한선이 있는 변동 금리를 이용할 것 △주택 자가 소유 비율이 떨어지면 부동산 투자에 유리하다.

부동산 자산은 금액이 크기 때문에 손쉽게 사고팔기가 쉽지 않다. 거주용이든, 투자용이든 지역과 물건에 따라 투자 가치가 크게 차이가 있고 투자 수익도 달라진다. 세계적인 통화 팽창과 일본 경제 회복세, 외국인 투자자 유입 등 호재가 많지만, 일본 부동산에 투자할 경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