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내 상가 상업 시설 ‘포레온스테이션 5’가 텅 비어있다. 6월 현재 기준
상가 1층 입점률은 40%에 불과하다. 지상 2·3층 및 지하층 점포의 평균 입점률은 60~70%에 그친다. 상가
477개 중 절반가량 비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사진 뉴스1
6월 16일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내 상가 상업 시설 ‘포레온스테이션 5’가 텅 비어있다. 6월 현재 기준 상가 1층 입점률은 40%에 불과하다. 지상 2·3층 및 지하층 점포의 평균 입점률은 60~70%에 그친다. 상가 477개 중 절반가량 비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사진 뉴스1

경제가치의 중심축이 물리적 공간에서 디지털 자산으로 이동하는 시대적 흐름이 강렬하다. ‘스트래티지(Strategy Inc.)’라는 비트코인 금융 전문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세일러는 “물리적 자산의 시대는 지났다.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짜리 건물을 현실에 갖기보다 디지털 자산을 선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극단적인 비유처럼 들릴 수 있으나, 그만큼 경제활동 무대가 온라인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본과 인력이 사이버 공간,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디지털 화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몰리면서, 기존의 오프라인 부동산이 과거만큼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산업 경제 시대에 부동산은 부(富)의 핵심 토대였지만, 21세기 디지털 경제에서는 데이터센터, 플랫폼, 네트워크 인프라 등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다시 말해 돈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 개념 자체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상가 건물 등 물리적 부동산의 가치 평가 방식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땅과 건물에만 옛 기준으로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게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 일리노이대 응용경제학 박사, 전 자본시장 연구원 연구위원

텅 빈 상가에 올라가는 공시지가

실제로 텅 빈 상가 건물과 임대 안내문, 도심  상권에도 빈 점포가 넘쳐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의 폐업이 늘어난 결과다. 단지 일시적인 불경기가 아닌, 고착화된 ‘오프라인 경제 위축’이 심화하는 것이다. 전국 10곳의 상가 중 1곳이 공실일 정도로 상가 공실 문제가 심각하지만, 온라인 비대면 소비 증가 등으로 임차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공시지가(공식적인 토지 가격)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며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근린생활시설 부동산(상가·점포 등)이 사실상 활용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공시지가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 채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세제가 괴리된 역설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부동산 공시지가는 정부가 매년조사·평가해 발표하는 가격으로, 과세와 각종 부담금의 기준이 된다. 과거에는 실제 거래되는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어 왔는데, 이는 조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시지가 산정은 표준지(대표 필지)를 선정해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후, 이를 기준으로 주변 개별 토지 가격을 보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인근에서 거래가 없더라도 기존 가격에 주변 지역의 거래 가격, 경제 상황, 특히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하여 공시지가를 조정한다. 즉, 유사한 필지의 실제 거래가 없어도 매년 일정 수준의 상승이 자동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 상승률과 공시지가 인상 간의 연동 메커니즘을 봐야 하는데, 공시지가 평가 시 소비자물가지수(CPI)나 임금, 자재비 상승률 같은 경제지표가 주요 고려 요소로 들어간다.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여 땅값을 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래 여부와 무관하게 물가가 오르면 표준지 공시지가는 자동으로 오르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 자료=통계청
/ 자료=통계청

사용가치 반영 안 하는 부동산 세제

공시지가가 오르는 것과 별개로, 근린생활시설 부동산의 실제 사용가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경제의 디지털화와 소비 트렌드 변화이다. 전자상거래와 배달 문화의 확산으로 소비자가 굳이 오프라인 가게를 찾지 않으면서 동네 상권의 매출은 감소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되며 이런 흐름은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번화가로 꼽히던 지역조차 상점이 문을 닫고 공실로 남는 사례가 속출한다. 실제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전국 상가 10곳 중 1곳은 빈 채 방치된 상황이다. 자영업 폐업 증가와 소비 위축이 겹치고 온라인 소비가 늘어난 점 등이 상가 임차 수요 급감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렇게 임대 수익과 활용도가 급감하는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이 여전히 과거 호황기 수준으로 매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시지가 상승에 따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부담이 자동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상가 공실이 늘어나자, 임대료도 일부 하락했지만, 정작 공시지가는 이런 시장 변화를 제때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예컨대 2021년 서울의 개별 공시지가는 평균 11.54% 올라 2019년 이후 처음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작 서울 주요 상권의 건물주는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공실이 넘치는 가운데 세금 부담만 커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가 나빠 상가를 비워둔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나 임대인 입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세에 대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변화와 모순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요새는 감정가보다 훨씬 낮게 거래되는 경우는 흔하고,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공시 가격이 실제 거래 가격보다 높아지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가격이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는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공시지가 상승 → 세금 부담 증가’ 공식은 경기가 나쁠 때도 계속 작동해서, 공실률이 높고임대료가 떨어지는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디지털 전환 반영하는 부동산 과세 체계 시급

지금의 상황은 새로운 부동산 과세 기준 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단순히 토지와 건물의 추정 시세만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에서 탈피해, 그 부동산의 실질적인 사용가치와 수익률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공시지가 산정 방식 다변화가 필요하다. 상가의 경우에는 실제 임대료수준이나 수익률, 공실률 등을 반영해 과세표준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지역별 유연 과세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역 경기와 부동산 수급 상황이 천차만별인 만큼, 공시지가 현실화율이나 세율을 지역 여건에 맞게 탄력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임대 수익이 없는 자산에 대한 세 부담 완충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도 2년 이상 공실로 남았거나 지은 후 임차인을 못 구한 상가 건물의 보유세를 감면해 주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공실 상가 소유주의 세 부담을 일시적으로나마 낮춰주고, 나아가 임대료 인하를 유도함으로써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방안은 세제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시장 변화에 대응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임시 감면보다 과세 체계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예컨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서는 감정평가 시 근본적으로 수익 환원법(임대 수익을 기반으로 가치 평가)을 큰 폭으로 도입해 공시 가격에 반영하는 등 구조적인 보완이 요구된다.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과 지역 경기 양극화 속에서, 과거 부동산 가치 평가 틀과 과세 구조는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이제는 빈 점포가 즐비한 거리에서도 공시지가 표지만은 높게 책정되는 불합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더 이상 물리적 자산의 명목 가치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 자산이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얼마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