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결국 같은 방이든 다른 방이든 함께 걸어가야 하는 관계가 아닌가. 때론 함께 자고, 때론 각자의 공간에서 숨을 고르더라도 말이다. / 사진 셔터스톡
부부란 결국 같은 방이든 다른 방이든 함께 걸어가야 하는 관계가 아닌가. 때론 함께 자고, 때론 각자의 공간에서 숨을 고르더라도 말이다. / 사진 셔터스톡

50대 초반의 한 중년 부부는 서로 생활 패턴이 다르다. 아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남편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어느 날 올빼미 남편이 종달새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 각방 쓸까?” 순간, 아내 표정이 얼어붙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각방’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단순한 잠자리 문제가 아니다. 이 단어는 관계의 거리, 애정의 농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가깝기 때문에 가능한 제안이지만 그래서 더 상처가 클 수도 있는 것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잔다’, 한국인에게 이 말은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상징한다.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의례고 안정감이며 사랑을 표현하는 무언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각방을 제안받는 순간, 많은 사람은 먼저 정서적인 위협을 느낀다. ‘정이 떨어졌나’ ‘이제 나랑 잠자고 싶지 않은 거야’, 복잡한 감정의 파장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반응(attachment response)이 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안정적 애착을 가진 사람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만, 불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각방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곧 거절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한 40대 부부는 남편의 심한 코골이로 인해 몇 년간 불면에 시달리던 아내가 먼저 각방을 제안했다.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잠을 못 자니 나도 예민해지고, 그러면 당신에게도 상처 줄까 봐.” 남편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아내가 이렇게 말하자 안심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에서 자되, 매일 밤 잠자기 전 같은 방에서 10분간 이야기를 나누는 ‘사전 포옹 시간’을 정해 정서적 연결을 유지한다. 부부 모두 수면 질이 개선되고, 관계도 한층 편안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생활환경이 달라지면서 수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엔 수면 질이 건강과 정서 안정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각방 쓰는 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부부의 35% 이상이 ‘수면 이혼(sleep divorce)’을 경험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부부 6쌍 중 1쌍이 각방을 쓴다. 한국의 경우 밀레니얼 세대(28~42세) 중 43%, 결혼 10~19년 차 부부는 63%가 각방을 선택했다는 통계가 있다.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형태’가 아닌 내적인 ‘의도’다. 각방을 먼저 제안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남편이 먼저 제안하는 경우 주로 코골이, 뒤척임, 수면 패턴 차이 같은 이유를 든다. 남편은 이런 생리적 이유를 들어 말하면 상처를 덜 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로서는 그 말이 다르게 들릴 수 있다. ‘혹시 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 아닐까’, 정서적 연결에 더 민감한 쪽은 보통 여성이다. 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설명된다. 과거 생존 전략상 여성은 관계 유지와 정서적 안정에서 안전을 느끼는 경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방’은 여전히 사랑의 증표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아내가 먼저 각방을 제안하는 경우는 갱년기 증상이나 감정적 휴식, 독립 공간에 대한 필요 같은 이유가 많다. 이때 남편은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제 아내에게 어떤 의미일까’ ‘예전부터 나와 자고 싶지 않았던 건가’, 한 60대 부부는 아내가 갱년기 후 불면과 식은땀으로 인해 잠을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각방을 요청했다. ‘내가 불편해서 피하려는 거냐’, 남편의 서운함 은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결국 아내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이건 회피가 아니라 치료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자, 마음을 풀었다. 이후 남편은 주말마다 아내 방에 함께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오히려 예전보다 마음이 가까워졌다.

공간보다 중요한 건 거리 안에 담긴 ‘마음의 온도’

여기서 자기 분화(self-differentiation)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가족 치료 이론가였던 머리 보언에 따르면, 자기 분화가 잘되는 사람은 상대 감정과 자기 감정을 구별해 받아들인다. 자기 분화가 잘되지 않는 사람일수록 ‘상대의 행동 = 나에 대한 평가’로 해석하기 쉽다. 단순한 수면 공간 변화가 자존감이나 정체성 위협으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대에 따라 각방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온도도 다르다. 50·60 세대 부부는 ‘부부는 한방에서 자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강하게 내면화돼 있다. 각방 쓰기는 곧 사이가 틀어졌다는 신호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는 세대에 따른 가치관 차이일 수도 있고, 함께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성격 유형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외향적 감정형인 사람일수록 관계적 밀착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므로 각방이 곧 거리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반면 30·40 세대 맞벌이 부부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수면 질, 각자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각방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하루의 고단함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로 자기 분화가 더 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과 현실을 분리해서 본다. 사랑과 거리 사이의 역설을 이해한다. 심리적 거리가 반드시 물리적 거리와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잘 조절된 거리는 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경우다. 

부드럽게 각방 쓰기를 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감정보다 환경에 집중해서 말하는 것이다. ‘요즘 잠을 자도 계속 피곤해’ ‘밤새 뒤척이느라 당신도 힘들 것 같아’, 이렇게 수면 환경이라는 객관적 이슈로 접근하면 상대는 덜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문제 원인을 배우자에게 돌리는 게 아니라, 상황에 두는 것이 키포인트다. 둘째, 말의 순서를 잘 정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옆에 있는 게 좋지만…’ ‘잠자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편하게, 회복하면 좋겠어’, 이런 표현이 먼저 나와야 각방 쓰자는 제안이 거절이 아니라 배려가 될 수 있다. 정서적 안정 기지를 먼저 제공한 후 물리적 거리를 제안해야 상대는 그 공간을 단절이 아닌 신뢰로 경험하는 것이다. 셋째,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유연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가령 일주일에 이틀만 따로 잔다든지, 주중엔 각방이고 주말엔 한방에서 자는 식으로 시범적 분리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실험적 거리 두기는 때로 관계 회복을 위한 ‘잠깐의 쉼표’가 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심리적 충격도 줄이면서 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한방’에 있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함께 있음’을 뜻하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진짜로 원하는 게 같은 공간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연결인지 구별하는 것이다. 한방에서 자면서도 외로울 수 있고 각방을 쓰면서도 깊이 연결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거리에 담긴 ‘마음의 온도’다. 모든 부부는 거리 조절을 하며 살아간다. 그 거리는 물리적·심리적·감정적인 거리를 모두 포함한다. 어떤 부부에게 각방은 단절이지만, 다른 부부에게 각방은 더 나은 연결을 위한 준비일 수 있다. 둘 사이의 신뢰와 애착,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부부란 결국 같은 방이든 다른 방이든 함께 걸어가야 하는 관계 아닌가. 때론 함께 자고, 때론 각자 공간에서 숨을 고르더라도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이런 세심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수면 이혼을 선언하고 각방 쓰기에 들어갔다. 결과는…아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한 달 만의 백기 투항으로 끝났다. ‘과연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맞나’, 아내 입장에선 무척 의아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무심코 수면 이혼 선언했다가 진짜 이혼당할 뻔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아내에 대한 나의 무조건 항복을 인증하는 부끄러운 문서이기도 하고, 내 무모했던 좌충우돌에 대한 쓰라린 자성록(自省錄)이기도 하다. 
김진국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