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산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한국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 석학의 적극적인 영입이 필요하다. 중국의 대규모 해외 인재 유치 프로젝트인 천인계획처럼 국가 차원의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우근 중국 칭화대 교수 - 서울대 전자공학, 미 UCLA 전기공학 석사, 일리노이주립대 전기공학 박사, 현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펠로(석학회원), 전 커넥선트 시스템 수석 엔지니어, 전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전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초대 부회장·2대 회장
이우근 중국 칭화대 교수 - 서울대 전자공학, 미 UCLA 전기공학 석사, 일리노이주립대 전기공학 박사, 현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펠로(석학회원), 전 커넥선트 시스템 수석 엔지니어, 전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전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초대 부회장·2대 회장

“한국에서 반도체를 의미 있게 키우고 싶다. 저전력 AI(인공지능) 반도체, 통신 분야에 집중하겠다.”

34년간 미국과 중국에서 대학과 산업 현장을 넘나들며 활동해 온 반도체·IT(정보기술) 전문가인 이우근 중국 칭화대 집적회로학원 교수가 오는 8월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이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교수는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연구자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논문 180편 이상을 발표했으며 미국 특허 24건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 분야는 전자소자와 회로를 미세한 칩 위에 집적해 고성능·저전력 전자 기기를 구현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분야다. 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이 교수는 199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석사,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커넥선트 시스템(Conexant Systems) 수석 엔지니어와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산업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IEEE 펠로(석학회원)이자 매년 전 세계에서 50명을 임명해서 구성하는 펠로 선출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다. 한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2006년 중국 칭화대 교수가 됐다.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던 때다. 이 교수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을 보며, 유대인이 미국 산업과 과학계에서 차지한 역할처럼 중국에서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2024년 2월 리창(李强) 중국 총리 주재로 열린 외국인 전문가 간담회에 초청받을 정도로 중국에서 저명한 외국 학자로 꼽힌다. 

한인 과학자 네트워크 필요성 절감

이 교수는 중국에서 연구하며 한인 과학자 간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미국에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에서 봉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에도 유사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CH) 창립에도 기여했다. 이 공로로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상(2023)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상(2024)을 받았다. 이처럼 중국에서 학문적·사회적으로 폭넓은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감염병 대유행) 시기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없게 되면서 퇴직 계획과 함께 귀국을 종종 생각했다”며 “고민 끝에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한 경험을 한국에 되돌려줄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 부모님의 나이 등 여러 삶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도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연구와 교육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특히 저전력 AI 반도체, 무선·유선 통신 기술의 송수신기, 입출력 인터페이스 설계 등 현장감 있는 과제를 직접 이끌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저전력 AI 반도체는 AI 혁신의 핵심 인프라로, 고성능 연산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추구하는 차세대 반도체다. 아울러 집적회로 설계와 관련된 학부 과목을 개설해, 학생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단순히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쓰일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을 교육하고 싶다”며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과제를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 산업 전반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으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글로벌 선도 기업과 격차를 좁히는 과정에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은 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등 신산업 수요에 대응해 저전력·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브로드컴 같은 회사가 미국 어바인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며 “한국에서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시스템 반도체 기업이 하나라도 탄생하려면 메모리 반도체나 파운드리처럼 대기업 중심 투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 생태계 조성의 핵심 요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는 반도체 회로 설계와 검증에 필수적인 전자 설계 자동화(EDA) 툴 분야를 지원하고, 대기업은 파운드리 생산 인프라, 대학은 핵심 기술 블록인 설계 자산(IP)을 구축해야 한다” 며 “이러한 삼각 편대가 구축되어야만 건강한 시스템 반도체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구현한다면 의대에만 학생이 몰리는 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24년 한 공개 석상에서 중국반도체 산업을 기술 격차 중심으로만 평가하는 시각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베이징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한중과기협력센터 주최 ‘중국 첨단 기술 경쟁력과 미래 전략 세미나’에서 “중국과 반도체 기술 격차가 3년이냐 5년이냐는 질문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중국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려면 단순한 기술 수준이 아니라 생태계의 자생 가능성을 먼저 봐야 한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내 범용 반도체 시장을 공략할 때는 ‘초격차’보다는 ‘반격차’ 전략이 더 유효할 수 있다”며 “기술 자체보다 시장구조와 생태계의 대응 전략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우근 교수가 2024년 중국에서 열린 국제 회로 및 시스템 학회(ICCS)에서 발표하고 있다. /ICCS
이우근 교수가 2024년 중국에서 열린 국제 회로 및 시스템 학회(ICCS)에서 발표하고 있다. /ICCS

칭화대 좋은 제도·문화 한국에 전파할 것

이 교수는 긴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학계로 돌아오는 데 대해 기대감과 함께 긴장도 느낀다고 솔직히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학부를 마친 이후 사회생활은 모두 해외에서만 해왔다”며 “한국에서 적응이 다소 걱정되기도 하지만, 성균관대 동료 교수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좋은 팀워크를 기대하고 있다. 이 기간에 의미 있는 반도체 연구 성과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오랜 시간 몸담았던 칭화대의좋은 제도와 문화를 한국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가 한창이던 2021년 칭화대에 집적회로학원(반도체대학원)을 설립했다. 그는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은 다양한 산학 협력을 위해 유연한 석·박사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며 “연구와 산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고 했다. 또 이 교수는 “한국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 석학의 적극적인 영입이 필요하다”며 “중국의 대규모 해외 인재 유치 프로젝트인 천인계획처럼 국가 차원의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아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