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월 7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 서한을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7월 7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 서한을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7일(이하 현지시각),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상호 관세(기본 관세 10%+국가별 관세 15%)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이는 4월 2일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명명하며 발표한 대(對)한국 상호 관세 조치와 동일한 수준이다. 일본은 종전 24%에서 25%로 상향된 상호 관세를 통보받았다. 이번 조치는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와 별도로 부과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규모 무역 적자에 따른 ‘무역 불균형’을 관세 부과 근거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다만, 8월 1일 발효 전까지 관세 및 비관세장벽, 산업 협력 방안 등을 포함한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협상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주한 미군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어서다. 또,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 (50%) 등에 이어 반도체와 의약품 등 한국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신규 관세 부과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처럼 관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31조8000억원 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확장적 재정 정책을 통해 0%대 성장률 추락을 방어하겠다는 이재명 정부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5월 통과된 1차 추경(13조8000억원 포함)과 함께 재정 확대로 약 0.2%포인트의 성장률 제고가 기대되는 반면, 25% 상호 관세와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에 대한 고율 관세가 부과될 경우 약 0.1%포인트 이상 성장률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韓·日 정조준한 ‘관세 서한’…주요국은 예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국, 일본을 시작으로 총 14개국에 관세 부과 관련 ‘관세 서한(tariff letter)’을 순차적으로 발송했다. 한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서한을 받은 말레이시아는 관세가 24%에서 25%로 올랐다. 

반면, 카자흐스탄(27→25%), 튀니지(28→25%),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35→30%), 방글라데시(37→35%), 세르비아(37→35%), 캄보디아(49→36%), 미얀마(44→40%), 라오스(48→40%) 등은 관세가 인하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30%), 인도네시아(32%), 태국(36%) 등은 기존 수준이 유지됐다.

이미 미국은 영국과는 자동차·철강 등 주요 품목 관세를 10%로 낮추는 데 합의했으며, 중국과도 145%에 달하던 상호 관세를 90일간 30%로 낮추고 추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베트남과는 미국산 수입품 관세 철폐를 조건으로 대미 수출 관세를 20%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연합(EU), 인도 등 주요 교역국은 이번 관세 서한 수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가 사실상 한국과 일본을 타깃으로 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통해 조기 대응에 나섰던 일본은 쌀 시장 개방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반면, 한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협상 대응에 나설 여유가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은 공통적으로 미국 측에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품목 관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의약품 품목 관세, 주한 미군 방위비 연계 카드 꺼낸 트럼프

정부는 관세가 발효되는 8월 1일까지 미국과 협상을 이어가며, 경쟁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국가별 관세율을 조정받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서한 발송 직후 “상대국이 다른 제안을 하면 마음에 들 경우 수정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7일 밝힌 “8월 1일 부과 일정도 조정 가능하다”는 입장을 7월 8일엔 “8월 1일 관세 부과는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바꿨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약품, 반도체 등 몇몇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며 품목별 관세 확대 방침도 밝혔다. 구리에 대해서는 8월 1일부터 50% 품목 관세 부과를 확정했고, 의약품은 2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선 관세 협상과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을 연계하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미국은 한국을 재건해 줬다. 그런데도 한국은 미국에 매우 적은 금액만 지불했다”고 지적하며, “나는 한국이 연간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조 바이든 정부와 합의한 주한 미군 방위비(1조5000억원)를 아홉 배가량 증액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이 밖에 쌀, 소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 확대. 미국 빅테크 규제 철폐 등 한국 정부가 흔쾌히 수용하기 힘든 사안이 미국 측 협상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 상호 관세 부과 시 韓 성장률 0.1%포인트 이상 하락

이 때문에 미국과 관세 협상이 원활하지않을 경우 경제 여파에 이목이 쏠린다. 관세 서한에 따르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25%가 적용되며, 자동차 50%, 철강·알루미늄은 75% 관세가 부과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수정경제전망’에서 2025년과 202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 1.6%로 전망하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가 기본 관세 수준으로 유지되고, 철강·알루미늄과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 관세 25%,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 관세가 10%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다. 

미국이 발송한 관세 서한과 유사하게 상호 관세 20%, 개별 품목 관세 25% 수준으로 각각 올라가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025년과 2026년 GDP 성장률이 0.7%와 1.2%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25% 상호 관세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추경 등 확장 재정을 통해 GDP 성장률을 1%대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정부 구상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1, 2차 추경을통한 0.2%포인트가량 성장률 제고 효과가 상호 관세의 부정적 영향으로 반감될 수 있어서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측이 제시한 25% 상호 관세 등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새 정부 출범 이후 추경 예산 집행과 주가 상승으로 인한 성장률 제고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 새 정부가 추가 경기 부양 수단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빠르게 식어가는 韓 성장 엔진…
OECD “잠재성장률 1.9%로 하락”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물가가 상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인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 기초 체력을 의미한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는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7월 7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이번 전망은 OECD가 2024년 12월 발표한 분석 당시 제시한 2.0%보다 0.1%포인트 낮춘 것이다. OECD가 추정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4년까지 2.2% 수준을 유지했지만, 올해 들어 0.3%포인트 떨어졌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 5%대에서 2010년대 3% 안팎으로 내려왔고 2022년 이후 2.2% 수준으로 추정됐다. 

주요 7국(G7)의 올해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미국(2.1%), 캐나다(1.7%), 이탈리아(1.3%), 영국(1.2%), 프랑스(1.0%), 독일(0.5%), 일본(0.2%)순이다. 한국은 미국에 2021년(미국 2.4%·한국 2.3%) 잠재성장률이 역전된 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 이탈리아, 영국 등은 올해 잠재성장률이 2021년보다 올랐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노동생산성 하락,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 투자 환경 개선이나 혁신 기업 육성을 통한 생산성 향상, 출산율 제고, 외국 인력 활용 등을 통한 생산 가능 인구 감소 적극 대응 등이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완화하거나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원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