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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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리영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두 날개가 제 기능을 하는 한국을 꿈꿨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오히려 퇴보해 왔다. 진보와 보수, 양극단의 목소리가 두드러졌고, 균형점을 찾기 위한 대화보다는 증오의 목소리만 커졌다. 갈등의 정점에 지난 계엄 정국이 있었다. 다행히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고,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은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정치가 점차 안정되면서 미뤄 놨던 숙제를 풀어내야 할 때가 됐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기업의 혁신 부족은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락으로 이어졌다. 풀기 어려운 문제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다행히 응급처치가 가능한 골든 타임은 아직 지나가지 않은 듯하다. 해법은 자명하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변화가 가능하다. 이재명 정부는 ‘상법 개정’이라는 강수로 일단 한 걸음 나아갔다. 

밖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세계화 전략이 압박하고, 안으로는 인구 고령화와 출생률 저하로 노동인구 비중이 급감하는 복합 위기 시대다. 뛰어난 지도자는 위기에 빛을 발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대 감세와 신자유주의로 미국을 되살렸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미국 혁신 기업의 태동을 이끌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세 가지 화살로 돈을 풀고,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후 일본 증시의 장기 상승 랠리를 촉발했다. 그런 기회가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왔다.

금융 자본주의 시대 문을 연 상법 개정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좌우되는 외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외풍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다져야 한다. 아쉽게도 미국과 중국 경제가 갈라서는 상황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근로소득이 많이 늘어나기는 힘들다. 가계소득이 줄면 잠재성장률은 결국 추락한다. 근로소득의 획기적 개선이 어렵다면, 자본소득으로 물꼬를 틀어야 한다. 미국은 경기가 부진하면, 돈을 풀어 증시를 부양하고 그로 인한 자산 효과로 소비가 살아났다. 

물론 과거 한국 정부도 이러한 선순환 정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가계 부채와 자영업 위기 상황을 고려해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결국 부동산으로 그 돈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부동산값 폭등은 계층 갈등을 키웠다.

과거 진보 정권은 부동산을 잡기 위해 온갖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부동산값은 진보 정부 집권기에 오히려 폭등했다. 지난 정부의 정책 유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부동산을 대체할 자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계 자산을 분해하면, 비금융자산이 금융자산의 1.8배다. 그나마 금융자산 대부분은 예금과 보험이고, 주식 비중은 4% 수준에 불과하다. 집이 없는 이는 없는 대로, 있는 이는 있는 대로부동산 정책에 따라 정권 지지율이 급등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돈을 풀면 부동산이 아닌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집을 좀 더 쉽게 얻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는 그런 사회 말이다. 주식시장 등락에 따라 지지율이 바뀌는 시대가 오면 실현 가능한 미래다.

상법 개정으로 부동산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 시대로 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독립 이사 명칭 변경, 사외이사 감사위원에도 ‘3%룰(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 적용이 포함된 개정이다. 집중 투표제와 감사위원 선출 확대 방안은 공청회를 통해 추후 추진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증시는 이미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상법 개정은 지배구조 개혁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이사회 의사 결정 구조 재편이다. 무조건 자사주를 매입 소각하면 좋고, 배당으로 나눠주면 좋다는 게 아니다.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의사 결정 구조만이 오너 입장이 아닌 주주 시각에서 가치 성장을 공유할 수 있다.

자본 배치 왜곡을 방치하는 이사회는 개편해야 한다. ‘오너’라는 금융자본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개념이 통용되는 한국 현실에서, 이사회 충실 의무만으로는 변화를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 1998년 상법에 도입된 이후 사문화된 집중 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모든 기업이 대상은 아니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의 의무화가 이사회 재편의 기본 조건이다. 이사 전원을 지배주주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소수 주주 의견도 반영되는 이사회가 구성될 때,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의사 결정 기구로 되살아날 수 있다. 7~8월 중 공청회를 통해 집중 투표제가 공론화하고, 추진이 구체화하면 주가 상승에 힘이 실릴 것이다.

윤지호 경제평론가 -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경제평론가 - 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세법 개정으로 지배주주·투자자 이해관계 일치시켜야

왼쪽 날개가 상법 개정을 통한 지배구조 개혁이라면, 오른쪽 날개는 세법 개정이다. 상법 개정은 이사회 변화를 이끈다고 하더라도, 지배주주의 저항이 강력하다면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도 들어줘야 한다. 세법 개정으로 지배주주와 투자자 이해관계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사실상 최고 세율이 60%에 달하는 상속세는 대주주의 편법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이사회가 일감을 몰아주는 사업부를 떼어내 상장하고, 해외에 회사를 두고 이익을 남기는 등 지배주주를 위한 결정에 거수기 노릇을 해 온 것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를 시가 기준으로 부과하다 보니 지배주주로서는 주가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상속 과정에서 유리할 수 있다.

상속과 증여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 배당 세율 완화로 지배주주에게 물꼬를 터줘야 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배당을 확대하면, 일반 주주도 비례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 현재 코스피의 배당 성향은 27%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배당 성향 35% 이상 기업의 지배주주에게만 배당 소득세를 감세해 주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의 개편안은 합리적이다.

나아가 지배주주의 경영권 승계 비용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주식 상속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거라면, 상속세 납부에 5년 연납 이상의 시간을 주고, 일정 부분 감세도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 같은 세법 개편은 부자 감세라는 프레임으로 여당 내 진보 진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새(주가)는 좌(상법 개정)우(세법 개정)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 아직 두 날개가 제대로 날갯짓하고 있지는 않다. 7~8월 다시 새의 날갯짓을 향한 주식 투자자의 요구가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부동산을 사면 그 가치가 온전히 내 것이 됐지만, 주식을 사면 그 가치는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새의 힘찬 날갯짓은 주식도 부동산처럼, 그 가치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Plus Point

법조계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권익 강화⋯소송 리스크는 커져”

김우영 기자

법조계는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으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권익 보호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이번 개정안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추가된 것을 두고 소액주주의 권익까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소송 리스크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화우는 “회사의 손익 여부와는 별개로 이사 업무 수행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책임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며 “자칫 이사에 대한 업무상 배임죄 고소·고발 등이 남발될 수 있다”고 했다.

사외이사를 독립 이사로 명칭을 바꾸고 이들의 이사회 내 선임 비율을 확대한 것에 대해 법조계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평가했다. 다만, 법무법인 세종은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독립 이사 자격 요건이나 결격 사유가 강화될 수 있어 추후 시행령 개정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3%룰’ 강화와 관련해선 최대 주주의 영향력이 많이 감소할 것이란 게 공통된 시각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주식 분산도가 높은 기업의 경우 행동주의펀드 등이 등기 임원 구성과 경영권 행사에 도전을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자 주주총회 도입 의무화와 관련해 법조계는 기업 의사 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기술적·절차적 보완은 앞으로 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법무법인 지평은 “출석 확인, 의결권 행사, 기록 보존 등 사전 리허설을 통해 주주총회 운영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지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