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과 미국이 7월 3일(이하 현지시각)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베트남에 46%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후 약 3개월 만에 타결된 협상이다. 무역협정에 따라 미국은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 20%의 관세를 적용하게 된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낮아진 10% 관세에 비하면 두 배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의 분위기는 우리 예상과 달리 ‘환영 일색’이었다. 수출의 30%가 미국으로 향하는 베트남으로서는 불확실성을 해소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협상을 조기에 타결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달성했다. 베트남은 46% 관세 적용 발표 직후부터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비관세장벽을 해소할 것을 선제적으로 약속했다.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항공기 대량 구매도 약속했다.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베트남으로서는 미국으로 수출이 막힐 경우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앞서발표한 46%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아진 20%의 관세 적용에는 미국 기업의 로비도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미국 기업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중국에 집중된 제조 시설을 중국 외 지역에 추가로 구축해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는 것) 전략에 따라 베트남을 중국을 대체 또는 보완하는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2024년 미국은 베트남에서 1336억달러(약 182조원)의 상품을 수입했고 같은 기간 131억달러(약 18조원)를 베트남에 수출함으로써 무역 적자가 1205억달러(약 164조원)에 이르렀는데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은 미국 기업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베트남과 미국의 협상 타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베트남을 통한 미국 수출 환적 시 관세 40% 적용이다. 베트남의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방법으로 중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각종 제약과 규제를 피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변형과 부가가치가 더해질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표만 교체하는 일명 ‘택갈이(해외 물건을 수입해서 상표나 겉 포장만 교체해서 파는 것)’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불만이었다.
양국 합의에 따라 이러한 방식의 우회 대미 수출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연히 중국은 미국과 베트남의 합의에 대해 자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양국 합의에 대해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조치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 외교부는 자국 이익이 희생될 경우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으로서는 베트남 이외 동남아 다른 국가가 유사한 내용으로 미국과 무역협정을 타결할 경우 동남아 지역에 대한 자국의 경제 및 정치적 영향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영국과 무역협정에서도 영국산 철강 및 의약품의 미국 수출에 대해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대신 영국산 판정을 위한 엄격한 요건을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영국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되었는데 베트남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저부가가치 산업구조 필히 개선해야
베트남은 관세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면서 큰불은 껐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산업구조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베트남은 제조업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기반으로 빠른 성장을 해왔다.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90%에 이르면서 국내시장의 상대적 위축과 수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위험 요소로 간주됐다. 세계은행은 2024년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의 수출 관련 고용은 급증했지만, 내수 수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전혀 없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수출이 줄어들 경우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수출 역시 절대 규모는 급증했지만 대부분 중국산 원자재와 자국의 낮은 인건비를 결합한 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돼 있다. 베트남이 단순 조립에서 탈피해 단계적 고부가가치화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계속 반복되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베트남은 최근 경제개혁에 나서고 있다. 2045년까지 고소득 국가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근간으로 하는 ‘결의안 68호’가 그것이다. 결의안 68호는 2030년까지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될 20개 이상의 대형 민간 기업을 육성하고, 현재 100만 개 이하인 민간 기업 수를 2045년까지 최소 300만 개로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민간 부문을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인정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규제를 폐지하고 효율적인 정부 운영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경제개혁과 더불어 중국과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지도 베트남 지도부의 과제다. 최근 베트남에 대한 해외투자 가운데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22%에서 2024년 28%로 늘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투자도 증가했는데, 많은 전문가는 이를 중국 기업에 의한 우회 투자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자동차부터 태양광 패널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중저가 제조업에 집중돼 있고, 자국 내 공급망 구축보다는 중국으로부터 원자재 및 부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로서는 과도한 중국 의존에서 탈피하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미 무역 흑자국인 베트남의 협상 타결은 우리를 비롯한 일본 등 다른 국가에 불리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미국으로서는 베트남에 적용한 20% 관세를 기준으로 협상에 나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0% 관세와 비관세장벽 폐지까지 약속했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당연히 관세 이외에 미국 기업의 활동을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 및 비관세장벽을 폐지하도록 나설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일본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면서 쌀 수입을 포함한 다양한 수준의 압박을 더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대한 누적 투자 금액 1위 국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했으며, 베트남에서 제조한 상품을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이번 베트남과 미국의 협상 타결은 20% 관세 부과로 인해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향후 중국산 부품 및 원자재 사용을 둘러싼 각종 분쟁과 제재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기업의 주의와 대응이 필요하다. 반대로 미국의 압력을 이용해 베트남을 비롯한 생산 기지에서 우리의 중간재와 부품이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요구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 비용을 이유로 생산 기지를 옮겨가는 것이 과연 앞으로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 정책 당국자와 기업 의사 결정권자 대부분은 자유무역 시대의 사고와 관념에 머물러 있다. 국제적 합의에 따른 규칙의 제정은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일방적인 약속 파기와 불리한 조건 강요는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도 경제구조와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왔던 기간산업에 대한 적극적 구조조정, 미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 등 많은 과제가 있음을 명심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