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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은 나에게 항상 동경의 대상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위치를 찾는 두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태양을 마주 보고 서면 오른손이 가리키는 쪽이 남쪽이라고 했다. 밤에는 일곱 개 별의 국자 모양 북두칠성을 찾으면, 그쪽에 북극성이 있다고 했다. 그 방향으로 가면 북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해양대학에 입학해 실습선을 타면서 북극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됐다.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어디에 북극성이 있는지도 알게 됐다. 국자 모양 앞쪽 두 개 별을 직선으로 이은 후, 같은 방향으로 그 직선 길이의 다섯 배 떨어진 지점에 희미한 별이 보이는데, 그 별이 바로 북극성이다. 이후 밤하늘을 바라볼 기회가 생기면, 북두칠성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먼저 ‘W’ 자형의 별자리를 찾고 그 건너편에 있는 북두칠성을 확인하곤 했다.

이렇게 친숙한 하늘의 별자리와 달리, 항해해야 할 대상이 되는 북극 항로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북극’ 하면 자연스레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됐다. 바로 유빙(流氷)의 존재 때문이다. 고위도로 올라가 항해할 때면 언제나 유빙을 경계해야 한다.

대항해시대, 용기 있는 사나이에 의해 미지의 바다는 하나씩 정복되기에 이르렀다. 콜럼버스에 의한 유럽과 미대륙 항로 발견, 마젤란의 세계 일주, 그리고 남아 있던 많은 항로는 ‘캡틴 쿡’에 의해 대부분 정복됐다. 이 항로들은 선장들 사이에 구전됐고, 오늘날에는 안전한 항로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북극 항로만은 여전히 항해사와 선장에게 미지의 항로로 남아 있다. 이 항로를 다녀온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북극에 가장 가까이 간 것은 1990년,태풍을 만나 피항하면서 알류샨 열도의 러시아 섬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당시 보험회사는 얼음이 내려오는 한계선을 정해주며, 그 선을 넘어 북쪽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유빙을 만날까 봐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유빙은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선장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보험회사에 위험 해역 진입 가능성을 사전에 통보했다. 그리고 유빙에 대비해 경계 인원을 추가로 배치해, 사방을 철저히 살피며 항해했다. 긴장의 시간이었다.

이런 내 생각도 이제는 달라지게 됐다. 내빙선(耐氷船)이 개발돼 얼음을 깨면서 항해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든 선체가 2~3m의 두꺼운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조선사 대우조선해양은 내빙 기능을 갖춘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5척을 건조해 러시아에 인도했고, 러시아는 그중 한 척을 이용해 겨울철에 실제로 얼음을 깨며 항해에 성공했다. 과거에는 7월부터 11월까지만 얼음이 없는 북극을 자연스럽게 항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겨울철에도 항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물론 비용은 많이 든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선박도 내빙 기능을 갖추게 해, 북극 항로를 연중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이미 세워 실행에 옮기고 있다. 머지않아 컨테이너 선박도 사계절 내내 북극 항로 운항이 가능해질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북극 항로가 열린다. 어느 나라가 상용화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콜럼버스와 마젤란 등 유럽 사람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그 후 산업혁명으로 세계 문명을 이끌어왔다.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은 그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그런 세상을 몰랐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과 일합을 겨룰 충분한 능력을 우리가 갖추고 있다. 내빙선을 얼마나 저렴하고 신속하게 만들어 상용화를 달성하는지에 북극 항로 성공이 달려있다. 내빙선 건조는 우리나라가 가장 앞서있다.

완전한 항해의 자유가 보장돼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조차, 러시아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점은 법적·정치적 리스크로 작용하며, 북극 항로 상용화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리스크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항해가 가능한 상태를 먼저 만들어두는 일이다. 지브롤터해협 너머는 낭떠러지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쳐낸 용기 있는 이들이 스페인의 앞바다를 넘어 대항해시대를 열었듯, 우리도 이제 용기를 내 북극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