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 직후 언급한 ‘중국몽’에는 2049년까지 미국을 넘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상황은 지금 위기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서방에 맞서지 말고, 꼭 해야 할 일만 하면서 기다리라’는 덩샤오핑의 유훈을 따르지 않은 대가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2000년대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던 시절, 우스갯소리가 하나 돌았다. 중국의 영어 이름 ‘차이나(China)’가 ‘차이가 크게 나서’ 붙은 나라 이름이라는 것. 중국 경제 고성장으로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날로 커져 나온 농담일 것이다. 중국 영어 이름이 차이나인 건 강대했던 진(秦)나라(기원전 221~206년)의 이름이 서방에 알려진 결과다. 인도, 페르시아, 포르투갈을 거쳐 영국에는 16세기쯤 차이나란 말이 들어갔다고 한다. 

나관중(羅貫中)은 14세기 말 원나라 말~명나라 초의 통속 소설가로, 그가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유비는 여포에게 쫓겨 조조의 식객으로 머무는데, 일부러 몸을 낮춰 조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정욱 등 참모는 ‘유비를 경계하라’고 경고했고, 이에 조조는 유비를 식사에 초대해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뿐이라고들 하오”라며 유비를 떠봤다. 마침, 천둥이 쳤고 유비는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조조는 이 때문에 유비를 깔보게 돼, 그를 곱게 떠나보내 줬다. 훗날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인재를 얻어, 조조에게 필적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때 유비의 계략은 ‘도회지계(韜晦之計)’라고 불린다. ‘자기 뜻을 어둠 속에다 숨기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말을 응용해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1989년 소련 붕괴 이후 일어난 자유화 물결은 중국에도 전해져 ‘텐안먼사건’이 터졌다. 이를 무력 진압한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외교적 제재를 받는 등 고립 위기에 놓였다. 덩샤오핑은 위기를 극복할 ‘20자(字) 방침’을 언급했고, 당시 외교부장이던 첸치천(錢其琛)은 ‘냉정관찰 온주진각 침착응부 도광양회 유소작위(冷靜觀察 穏住陣脚 沈着應付 韜光養晦 有所作爲)’를 공식 외교 노선으로 채택했다. ‘냉정하게 관찰하고, 진득이 자리를 지키며, 침착하게 대응하되, 은밀히 실력을 키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행하라’라는 뜻이다. 마지막 여덟 자인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는 중국이 아직은 힘이 약하니 서방에 정면으로 맞서지 말고, 꼭해야 할 일만 하면서 기다리라는 지침이다. 이후 서방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자본과 기술을 대주며 중국이 급성장하도록 놔뒀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미국 등 서방은 거대해진 중국을 경계의 대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국가수반에 등극한 직후, 그는 ‘중국몽(中國夢)’을 언급했다. 여기엔 2049년까지 미국을 넘어 세계 제일의 국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2006년 중국 관영 방송 CCTV가 방영한 역사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崛起)’는 시 주석의 대외 정책을 규정하는 용어로 쓰이게 됐다. 덩샤오핑의 유훈인 도광양회 대신 미국에 맞서 세계 제2 경제 규모에 걸맞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시 주석 취임 후 중국 경제성장률은 이전 정권에 비해 떨어졌다. 개혁·개방 이후 2000년대까지 매년 9% 이상을 유지했던 것이 2010년대 전반 연평균 8%로 떨어졌고, 후반(2019년까지)에는 6.7%로 더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에는 2.2%로 하락했다. 2021년 8.1%를 기록했지만, 2022년 다시 3%로 둔화했다. 2023년부터는 5%를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관련 통계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성장률 하락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중국 경제의 덩치가 커지고, 무거워진 만큼 예전처럼 고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은 그중 하나다. ‘1자녀 정책’ 등으로 중국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2014년을 정점으로 줄고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중국은 2023년 1자녀 정책을 폐기했는데,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지지율을 의식한 듯 중국 당국은 대대적으로 부동산 부양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시장이 과열되고,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이에 2019년 급격한 부동산 안정책을 시행,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성장률 둔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헝다(恒大) 등 부동산 기업 파산과 함께 수많은 가계의 부를 줄여 놓은 탓에 소비 여력도 크게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의 3연임을 의식한 것 같은 ‘공동부유(共同富裕)’ 국정 기조를 2021년 채택했으며, 이 때문에 많은 사기업과 기업인의 활동이 위축됐다. 여기에 실현이 어려운 ‘제로 코로나(코로나19 완전 차단)’ 정책으로 내수 경제를 사실상 정치적 통제 희생양으로 전락시켰다. 또 이 정책을 떠안은 지방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됐다.

데이터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돼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도 어려움을 겪었고, 청년 실업률도 상승했다. 2023년 하반기 ‘반간첩법’이 시행되면서 강화된 규제, 장기화한 내수 침체, 미·중 무역 갈등 등으로 외국 기업이 이탈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이 2~3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필자는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을 덩샤오핑의 유훈을 따르지 않은 대가로 본다.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야심을 드러내자, 미국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경계심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2017~2020년·1기 정부)한 이후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미·중 무역 전쟁에 돌입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에 대한 압박 기조를 유지했다. 2025년 트럼프 재집권 이후에는 대중 관세를 재차 인상해 중국을 코너에 몰았다. 미국의 대중 전략에는 중국의 수출 판로를 통제하고, 기술 유입을 차단해 경제 혁신 역량을 고사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 1980년대 미국에 도전했다가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중국이 답습할 개연성이 크다.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 -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 - 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전 CJ그룹 전략총괄기획 부사장, 전 대성합동지주 사장, 전 세종대 부총장 및 경영경제대 학장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하야할 가능성이 글로벌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첫 번째, 시 주석이 실제 물러나고, 새로 들어설 지도부가 다시 도광양회 노선으로 복귀,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두 번째, 권력 이양이 아예 되지 않고 시 주석의 정치적 반격이 있는 경우다. 세 번째, 권력 이양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권력 내 갈등이 심화하는 경우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 경제는 물론, 총수출의 20%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긍정적 일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라면 미국과 관계 개선은커녕, 중국 경제는 더 큰 부진에 봉착하게 되고, 한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런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김경원 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