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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인 전 세계 지도자는 인류 공동의 생존을 위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채택했다. 기후변화의 원인 물질인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하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다.

5년 뒤인 1997년 일본 교토에서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되며, 선진국에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여됐다. 이때 규제 대상으로 정의된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₆) 여섯 가지였다. 이후 기술과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삼불화질소(NF₃)의 사용이 확대됐고, 이에 따른 지구온난화 영향도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7번째 관리 대상 온실가스로 지정했고, 우리나라 역시 제도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1│NF₃ 사용 확대

NF₃는 질소와 불소로 구성된 무색·무취의 기체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식각 장비를 세정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특히 웨이퍼 표면의 불순물 제거와 미세 패턴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HFCs, PFCs, SF₆ 등 F-gas가 규제 대상으로 포함되자 산업계는 대체 가스를 찾아 나섰고, 당시 규제 대상이 아니었던 NF₃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NF₃는 공정 내 분해율이 높고 사용량 대비 효과가 뛰어난 데다, 화학적 안정성까지 갖추어 대체 가스로 주목받았다.

정부도 이 흐름에 발맞춰 저탄소 기술 개발 지원과 감축 실적 인정 제도를 통해 기업의 전환을 장려했고 그 결과, NF₃의 국내 사용량은 2010년대부터 급격히 늘었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성장과 함께 사용량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6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의 기후정의에 입각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6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 정부의 기후정의에 입각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강력한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NF₃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정 내 분해율에 주목했지만, 후속 연구는 대기 중 배출 이후의 잔존성과 기후 영향에 집중했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는 NF₃의 지구온난화지수(GWP)를 1만7400으로 산정했다. 이는 1t의 NF₃가 CO₂ 1만7400t과 같은 온실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또한, 대기 중 체류 기간은 약 500년에 달해, 일단 배출되면 수 세기 동안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공정 내에서는 높은 분해율을 보이지만, 일단 대기 중으로 유출되면 매우 불안정한 화합물로 잔존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2년 도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개정문을 통해 2013년부터 NF₃를 규제 온실가스로 포함했으며,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면서 2020년부터는 NF₃를 포함한 7대 온실가스를 보고 의무 대상 가스로 규정했다. 

3│글로벌 동향과 한국의 위치

NF₃ 관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2016년 자발적 보고를 시작으로 2021년부터는 의무 보고로 전환했고, EU도 F-gas 규제에 NF₃를 포함했다. 대만의 TSMC는 2019년부터 신규 사업장에 NF₃ 감축 설비 설치를 의무화했으며, 기존 시설로도 확대 중이다. 중국 역시 불소계 가스에 대한 규제 방침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기술력과 인프라 측면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감축 기술은 글로벌 벤치마크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이 과제다.

4│산업계의 고민과 기술적 도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기업은 NF₃ 감축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배출가스 처리 시설을 통한 고온 분해 및 화학적 중화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모든 반도체 생산 라인에 NF₃ 감축 설비를 도입했고, 분해 효율을 9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SK하이닉스도 2025년까지 NF₃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설비투자를 확대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현실적 제약은 크다. 감축 설비 설치에는 수십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며, 중견·중소기업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운영비와 유지 보수 부담도 상당하다. 기술적 한계도 여전하다. 대체 가스로 거론되는 플루오린(F₂)은 폭발성과 독성으로 인해 상용화가 어렵고, 원격 플라스마 등 차세대 공정 기술은 아직 도입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완전한 대체보다는 배출 저감과 정밀 측정 기술의 고도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며, 이를 위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과 국제 인증 연계 등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5│규제보다 단계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

NF₃를 국제 기준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속도와 방식이다. 대체 기술 부재와 공정 특성을 고려할 때 즉각적인 규제 편입은 산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기술 준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대체재와 감축 기술 모두 상용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번째, 측정 인프라 부족이다. NF₃ 특성상 정밀 측정이 필수지만, 표준화된 인증 체계가 미비한 상황이다. 

세 번째, 산업 특성상 어려움이다. 공정 안정성이 매우 중요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NF₃를 다른 물질로 전환하기 어렵다.

따라서 배출권 거래제(ETS) 포함 시점을 감축 기술 상용화 수준과 연동하고, R&D 투자에 대한 정책적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배출 계수 표준화와 실측 기반 통계 체계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 세종대 환경공학 학·석·박사, 현 세종대· 카이스트(KAIST) 겸임교수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 세종대 환경공학 학·석·박사, 현 세종대· 카이스트(KAIST) 겸임교수

6│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적 접근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시장에서 핵심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NF₃는 이 산업의 탄소 발자국 관리에서 중요한 변수이자, 기후 리스크를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험대다.

정부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국제 협력을 통해 측정·검증 체계의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기술의 중소기업 이전과 공동 활용 플랫폼 구축 역시 생태계 차원의 감축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

7│정교한 정책 설계가 답이다

NF₃는 한국이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만큼, 기후 정책과 산업 경쟁력의 조화를 모색하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NF₃가 온실가스로 추가되는 것은 국제 협약에 따른 필연적 조치지만, 아직 대체 가스가 없고 기술적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이를 배출권 거래제 등 직접적 규제에 포함하는 것은 산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민간과 협력 아래, F-gas 감축 사업과 유사한 별도의 관리 체계를 통해 NF₃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 구축, 감축 기술 지원, 제도 이행의 예측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이 병행될 때 NF₃ 문제는 부담이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