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와 고비용 지속, 복잡한 글로벌 규제 환경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 급속한 진화. 금융 업계는 지금 이 세 가지 구조적 압력 아래 놓여 있다. 기존 운영 모델로는 더 이상 시장과 고객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주요 글로벌 금융사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운영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운영 혁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일부 부서를 자동화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 성과 창출 구조, 즉 어떻게 일하고, 어떤 판단 기준으로 움직이며, 어떤 방식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특히 금융업은 리스크 관리, 규제 대응, 고객 기대 수준이 모두 높은 산업이다. 운영 체계와 AI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실제로 운영 혁신이 가장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기존 운영 모델의 한계에 봉착한 금융업
글로벌 금융사가 운영 혁신에 착수한 배경은 명확하다. 첫째, 수익성 저하다. 다수 글로벌 금융사는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이 8~10% 선에서 정체되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도 비용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영업이익률이 하락하는 추세다. 둘째, 디지털 네이티브 고객 등장이다.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와 Z 세대 (1997~2010년생)는 신속하고 투명한 서비스를 요구한다. 불행히도 많은 금융사는 여전히 수작업 중심의 비효율적 운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규제 대응이다. 자금세탁방지(AML),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금융 소비자보호법 등 복잡한 규제 환경으로 업무량이 늘어나고 있다.
인력 확충 없이 대응해야 하는 현실에서 근본적인 운영 재설계가 절실하다. 예컨대 대출 업무는 과거 수십 년간 큰 틀에서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은행 핵심 업무이면서도 고객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신용 평가 부서가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언더라이팅(내부 심사)을 거쳐 최종 승인 및 실행에 이르는 절차가 복잡하게 나뉜 탓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병목, 중복, 인적 실수는 고객 경험을 해치고, 운영 비용을 증가시킨다. 더욱이 각 단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리스크 관리나 사후 대응 역시 비효율적으로 흘러간다.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하는 운영 혁신
운영 혁신은 바로 이 고질적 병목 구간을 근본부터 재설계하려는 시도다. 최근 산업계에서는 연속된 업무 절차를 하나의 통합된 흐름 단위로 묶어 설계하는 접근법이 확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동화 및 AI 기술을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과거 단절된 업무 수행 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성과 개선으로 연결 짓는 시도다.
예컨대 대출 업무 흐름은 단순히 한 부서에서 처리되는 기능이 아니다. 고객과 첫 접점부터 대출 실행 및 종료까지 여러 단계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전 승인, 신청서 입력, 신용 평가, 언더라이팅, 실행 절차, 자금 지급 및 계약 종료 관리까지 한 묶음으로 여겨 운영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각 단계가 개별 부서에서 제각각 처리되던 구조였는데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운영 단위로 보고, AI를 활용해 자동화·최적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업무 속도를 높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업무 흐름 전반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 결정 정확성과 일관성이 향상된다. 고객 경험 역시 더 매끄럽고 빠르게 개선된다. 실제로 흐름 중심으로 업무를 재설계한 금융기관은 개별 기술 도입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성과의 구조적 향상을 달성하고 있다.
BoA, 금융 상품 50%를 디지털 채널로 판매
대출 심사 같은 내부 업무뿐 아니라 고객과 직접적인 접점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영업 부문으로도 운영 혁신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Bank of America)는 상품 추천, 판매 전략, 고객 대응 체계 전반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설계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은행은 기존에 대면 채널과 상담사 기반으로 운영되던 업셀링(up-selling·고부가 상품 권유) 및 크로스셀링(cross selling·다른 금융 상품 제안)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이를 모바일·웹 기반의 디지털 접점 중심으로 구조화했다. 금융 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전략적 전환 이후 이 은행은 금융 상품 판매 약 50%를 디지털 채널을 통해 달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 채널을 늘린 것이 아니라 채널 전략, 고객 대응 방식 등 전사적 운영 모델 리디자인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채널 효율화를 넘어, 성과 중심의 데이터 기반 영업 구조로 조직 전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전환이 가능했던 핵심 요인은 기술 도입 이전에 운영 모델을 먼저 재설계한 덕분이다. 고객군 정의, 상품 분류 체계, 판매 채널 전략, 고객 데이터 흐름, 프런트엔드 시스템까지 포괄하는 설계가 선행된 덕분에 AI가 실제로 성과를 견인할 수 있었다.
재무·준법 등 내부 관리 업무도 자동화
운영 혁신은 외부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 대출 부서뿐 아니라 관리·지원 기능인 재무와 준법 감시 부문에서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반복적이면서도 정교한 문서 작성이 필요한 재무 보고서, 리스크 분석 자료, 규제 대응 문서는 생성 AI(Gen-erative AI)를 적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업무로 분류된다. 이러한 관리 부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많은 조직이 택하고 있는 접근 방식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반복 업무 각 단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일부만 자동화하면 제한된 효과만 나타난다. 대신, 업무 흐름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제로베이스 접근법이 적용되고 있다.
보고 및 분석 업무를 재설계한 조직은 먼저, 어떤 목적의 보고서에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를 기준으로 업무 범위와 정보 구조를 재정의한다. 그런 다음, 각 보고 유형에 적합한 구조를 설계하고, 생성 AI가 그에 따라 초안을 자동으로 작성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한다.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운영 모델을 바꿀 경우 기존 업무에 투입되던 업무 부담이 40% 이상 줄어드는 성과를 얻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구조는 특히 내부 통제, 자금 세탁 방지, 감사 대응 문서 작성 등 고정된 서식과 규칙 기반 작성이 필요한 업무에 효과적이다. 반복성과 형식 표준화가 높은 업무일수록 생성 AI 활용 범위가 넓고, 속도와 품질이 모두 향상될 수 있다.

운영 혁신이 금융사 미래를 결정짓는다
운영 혁신은 이제 정보기술(IT) 부서의 실행 과제가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와 리더십이 주도해야 하는 전사적 전략 과제로 격상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기업 약 33%는 연간 500만달러(약 68억2400만원) 이상을 생성 AI에 투자하고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은 AI 도입과 동시에 조직 혁신까지 함께 추진하고 있다.
금융 업계는 더 이상 정체된 산업이 아니다. 기술 변화는 빠르고, 고객 요구는 정밀하며, 규제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AI는 이제 그 변화의 총체적 인프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응하는 조직의 전략은 더 이상 기능별이 아닌 성과 흐름 중심의 운영 혁신이 될 수밖에 없다. AI를 도입했는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조직이 AI를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는가’이다. 운영 혁신은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한 실질적 도구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선도 금융사는 그 전환을 실행 중이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기업은 빠르게 따라잡아야 한다. 전통 금융사에 남은 ‘골든 타임’ 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