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독립형 ‘스트리밍 온디맨드(주문형) 비디오 서비스(SVOD)’를 동시에 구독하는 소비자 방식인 ‘스태킹(stacking)’이 2025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SVOD는 월 단위 정기 결제를 하고 결제 기간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 미국 소비자는 평균 네 개, 유럽 주요국 소비자는 평균 두 개의 SVOD를 구독하며 정점에 이르렀고, 머잖아 감소세로 전환할 전망이다. 구독료 인상, 비밀번호 공유 단속, 묶음형 서비스에 힘입어 SVOD 부문 수익은 계속 증가하겠지만, 각국 시장별로 소비자 스태킹 개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스태킹 개수가 하락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 직접 판매(DTC·Direct–to-Consumer) 형태로 비디오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수십 개로 구성된 비디오산업 생존 가능성을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가정이 단일 유료 TV 구독 대신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디오 콘텐츠 업계의 서비스는 서로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업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비디오 스트리밍 시대 도래 이전 유료 TV 업체의 서비스 방식과 유사하다.


유료 TV 모델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기적으로 비디오 콘텐츠 산업은 ‘비디오 애그리게이터(파편화된 OTT 앱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가입과 결제가 원스톱으로 가능한 플랫폼)’와 두세 개의 독립형 SVOD 제공 업체로 재편될 것이다. 이 가운데 기존 유료 TV 회사, 통신사, 기술 플랫폼 또는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최대 규모의 SVOD 업체가 비디오 애그리게이터로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2024년 9월 영국의 한 설문 조사에 참여한 SVOD 가입자 43%는 DTC 형태가 아닌 제삼자 업체(유료 TV 제공 업체, 통신사 또는 기술 플랫폼 등)를 통해 서비스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소규모 SVOD 제공 업체는 구독의 거의 절반, 대형 제공 업체는 약 25%가 애그리게이터를 통해 이뤄졌다고 각각 답했다.
2010년대에는 SVOD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구 수와 서비스 이용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두 가지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딜로이트 연구에 따르면, 유럽 가구당 SVOD 서비스 구독 개수는 2018년 1.31개에서 2023년 2.35개로 늘었으나 2024년에는 동일한 개수를 유지하며 정체 양상을 보였다. 미국은 2020년부터 약 네 개에 머물렀다.
독립형 SVOD 서비스는 소비자가 콘텐츠와 계약 기간을 선택할 수 있고 콘텐츠 제공자가 배급자를 우회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유료 TV 형태처럼 선택권이 더 적고, 규모가 더 크고, 더 비싸고, 장기적인 묶음형 서비스로 되돌아가는 것은 과거로의 후퇴처럼 느껴질 수 있다. 지속적인 구독료 상승과 비밀번호 공유 단속, 넘쳐나는 콘텐츠, 완성도가 제각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으로 인해 소비자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독립형 SVOD 서비스를 완벽히 구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콘텐츠 제공 업체가 수십 년간 콘텐츠를 제작해 다년 계약으로 배급사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설정하거나 광고 지원형 주문 비디오(AVOD) 서비스 규제 사항을 관리하는 등 종합적으로 DTC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부족할 수 있다.

다시 진화하는 TV 영상 산업
TV 산업은 수십 년에 걸쳐 방송 중심에서 콘텐츠 지식재산(IP) 기반으로 전환하고 있다. 2010년대 독립형 SVOD 시장의 탄생과 성장으로 전환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독립형 SVOD의 구독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SVOD 서비스가 새로운 형태였고, 경쟁자가 적었으며, 구독료가 비교적 저렴했고, 소비자 간 계정 공유가 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장 환경이 SVOD 업계에 덜 우호적으로 변했다. 해지율은 높아졌고, 지속적인 성장은 기대만큼 쉽지 않다. 특히 영국같이 상대적으로 성숙한 시장에서는 SVOD 시청 점유율이 2023년 15.8%에서 2024년 16.4%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방송사 콘텐츠와 동영상 공유 사이트는 점유율이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독립형 SVOD가 시장에서 다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은 작아 보이며, 전통적 유료 TV와 유사한 형태의 ‘애그리게이션 모델’이 앞으로 몇 년 동안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립형 SVOD 기업은 새로운 애그리게이션 모델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숙고해야 한다. 구독료 청구부터 유저 인터페이스 설계, 비디오 컴프레션(영상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압축해 저장하거나 전송하기 쉽게 만드는 기술)까지 모두 처리할 수 있는 규모와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콘텐츠 제작부터 광고 판매, 고객 관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완전한 독립형 SVOD 모델에 주력할 수 있다. 단, 일부 시장에서는 제삼자 배급을 활용하는 방식이 이익 창출에 더효과적일 수 있다. 일부 SVOD 업체는 자사 콘텐츠에 더해 다른 플레이어 콘텐츠를 통합해 애그리게이션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이들은 자사 콘텐츠를 중심으로 묶음형 서비스를 구성하거나 과거 유료 TV처럼 다른 SVOD 채널을 마케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업체는 자사 콘텐츠를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하는 검증된 성공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DTC’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실행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부분 기업은 새로운 역량을 확보하고 기업 문화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콘텐츠 배급을 외부에 맡겼던 기업이 DTC로 즉각적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단독 비즈니스 모델로서 DTC를 이행하는 것은 비디오산업뿐 아니라 대부분 다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규모가 큰 기업조차도 완전한 DTC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주요 소비자 브랜드에서 배급·유통사는 가치 사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 기본 원칙은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립형 SVOD가 비디오산업의 주류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송사가 안일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다수 시장에서 방송사는 여전히 소비자의 콘텐츠 시청 시간을 크게 점유하고 있다.
2023년 유럽(42개 시장 기준)에서 TV 방송 평균 시청 시간은 하루 3시간 16분에 달했다. 다만, 젊은 층의 TV 방송 평균 시청 시간은 단 1시간 12분에 불과했다. 방송사는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TV 방송을 즐겨 보는 장년 시청자뿐만 아니라 더욱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젊은 시청자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