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과 투자자, 분석가는 공통으로 AI가 여러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설령 그렇게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해도,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는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여러 사례 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초기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AI 기능이 빠르게 확장되고 AI 모델을 학습하고 활용하는 비용이 줄어들고 있으며, 오픈소스 도구와 시스템의 활용도 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AI는 사실상 모든 산업과 직군에 의미 있게 쓰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AI를 효과적으로 도입하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단기간에 가능한 일도 아니다. 접근성, 확산 속도, 학습 곡선 같은 여러 문제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장벽을 넘는다해도,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고용이나 소득 전반의 증가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 결과는 AI를 어떤 방식으로 도구화하느냐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AI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간 능력을 흉내 내거나 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오히려 사회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 ① 안드레아스 하우프트(Andreas Haupt)와 에릭 브린뇰프슨(Erik Brynjolfsson)이 최근 지적했듯이 최신 머신러닝 시스템의 많은 벤치마크는 자동화에 치우쳐 있다.
AI가 인간을 단순히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우프트와 브린뇰프슨은 개발자에게 인간과 AI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평가하는 ② ‘센토 평가(Centaur eval-uation)’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방식은 머신러닝 개발의 초점을 자동화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가 서로를 보완하며 협업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AI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고르게 퍼지려면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노동자 약 20%가 제조업(40%)과 서비스업(60%)으로 구성된 ‘교역 가능한 산업’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나머지 80%는 정부, 교육, 숙박, 전통적인 소매업, 건설업 등 ‘교역이 어려운 서비스 산업’에 종사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교역 가능한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사이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교역 가능한 산업은 생산성이 높고 성장 속도도 빠르며, 소득 증가율 역시 더 높다. 여기에 다국적기업 경영, 반도체·컴퓨터 설계, 연구개발(R&D) 같은 직무가 포함된다. 그 결과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든 뒤 낮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생산 즉, 부가가치는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
AI가 교역 가능한 산업과 그렇지 않은 서비스 산업 사이의 격차를 더 벌린다면, 앞으로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을 폭넓게 끌어올리려면 AI가 이 두 산업 분야는 물론, 여기에 포함된 중·저소득 직종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AI는 다양한 직종과 소득수준의 사람과 협력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인간과 로봇의 협업을 주제로 경연 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로봇이 인간 신체 능력을보조하거나, 사람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물리적 환경에서 로봇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 지원을 포함한 AI 기초연구는 인간과 협업과 상호 보완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민간 개발자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이외에도 AI의 개발 방향을 결정짓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함으로써, 기존에 노동집약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던 작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알파폴드의 목적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의학 분야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다. 이는 인간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혜택을 주는 사례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AI 기술이 산업 전반과 모든 소득 계층에 걸쳐 보완과 협업을 기반으로 한 혜택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경제 전체의 번영이 자연스럽게 확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③ 일반 균형 효과(gen-eral equilibrium effects)’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많은 일상적이고 코드화할 수 있는 업무가 자동화됐고, 글로벌화로 인해 노동집약적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옮겨지면서 중산층에 속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생산성과 소득수준이 더 낮은, 비정형적인 업무로 옮겨가야 했고, 그 과정은 절대 순조롭지 않았다.

다가올 AI 전환 역시 생산성 향상을 통해 비용 절감을 유도하고, 이는 정상적인 경쟁 압력과 맞물려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해당 산업의 수요 탄력성이 1보다 작다면, 생산량이 늘어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물론 수요 탄력성이 더 높은 산업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산업 간 혹은 직무 간 인력 이동은 상당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일시적으로 노동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노동자의 협상력도 약해질 수 있다.
많은 이가 지적했듯이, AI 전환 과정에서는 소득과 기술 측면에서 지원이 필수적이며, AI 기반 도구는 재교육과 기술 습득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정책 입안자는 대공황 이후처럼 적극적으로 노동 수요를 창출하는 전략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지금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다.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 경제는 인프라 개발과 현대화 측면에서 뒤처져 왔다. 이 흐름을 되돌린다면 양질의 일자리와 새로운 노동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고, 동시에 다가올 AI 전환에 대비하는 완충장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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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안드레아스 하우프트와 에릭 브린뇰프슨 두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AI 전문가다. 하우프트 박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공학·경제 시스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인간 선호 기반 기계 학습, 강화 학습과 경제학을 접목해 추천 시스템, 플랫폼 규제, 소비자 보호 분야를 연구한다.
브린뇰프슨 박사는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 디지털경제랩 디렉터이자 경제정책연구소(SIEPR) 상급 연구원이다. 그는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AI의 불평등 효과와 노동시장 재편에 대해 연구 중이다.
② 센토 평가(Centaur evaluation) 인간과 AI가 협업해 내린 결정이나 분석 결과가 인간 단독 혹은 AI 단독일 때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센토(Centaur·켄타우로스의 영어 이름)’는 신화 속 반인반마에서 따온 개념으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뜻한다. 센토 평가는 AI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닌, 인간의 판단력을 보완하고 향상시키는 협력자로 활용할 때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AI가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증강시키는지, 또한 협업이 어떤 상황에서 최상의 성과를 내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③ 일반 균형 효과(general equilibrium effects) 특정 정책이나 기술 변화가 직접 영향을 주는 특정 시장에 그치지 않고, 연결된 다른 시장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제 전반의 파급효과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