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Jeep)는 단단하게 험로(오프로드)를 달리는 이미지가 강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브랜드로, 국내에선 랭글러, 그랜드 체로키 등이 대표 제품이다. 아메리칸 정통 SUV로,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끈다. 그간 지프는 내연기관(엔진) 위주로 제품을 구성해 왔으나, 몇 년 전부터는 ‘4xe’라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Plug-in Hybrid Vehicle)로 험로 주행차(오프로더)의 전동화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2024년 9월 국내 처음 출시된 지프 어벤저는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다.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를 상징한다. 지프 특유의 강인함과 험로에 특화된 정체성(시그니처) 역시 잃지 않았다. 지프 브랜드의 첫 전기차 어벤저를 시승했다. 

작아도 지프, 디자인에 재미 요소 넣어

외관은 크기만 작아졌을 뿐, 강인한 지프 그대로다. 헤드램프는 5세대 체로키에서 시작된 분할형 디자인이 적용됐는데, 위쪽 LED 램프는 주간주행등(DRL)과 방향지시등 역할을 하고, 아래는 전조등이다. 

소형 SUV라는 젊은 소비자를 고려한 제품답게 곳곳에 재미 요소도 녹아냈다. 앞 유리창 하단 운전석 쪽 구석에는 망원경을 보는 모험가가, 그 대각선 반대편에는 별이 새겨져 있다. 또 뒤 유리창 아래쪽에는 험준한 산맥 지형을, 위쪽으로는 어벤저 그래픽을 넣었다. 

지프의 정체성 디자인인 ‘세븐 슬롯 그릴’ 은 전기차 특성에 맞게 변화했다. 전면 하단 센서에는 어떤 길에서도 방향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 나침반을 그려 넣었는데, 나침반 바늘은 어벤저가 디자인된 이탈리아 토리노를 가리킨다고 한다. 

어벤저는 길이 4085㎜, 너비 1775㎜, 높이 1560㎜, 휠베이스(축간거리) 2560㎜, 이전 지프에서 가장 작았던 레니게이드보다 크기가 더 작아졌다. 지프가 속한 스텔란티스그룹의 푸조 eCMP 플랫폼을 사용한다. 자동차는 휠베이스의 길이가 실내 거주성을 결정하는데, 어벤저는 레니게이드보다 길이가 110㎜ 짧지만, 휠베이스는 1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제원보다 차가 커 보인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프 어벤저 후면과 내부/스텔란티스
지프 어벤저 후면과 내부/스텔란티스

전기 충전구는 운전석 뒤쪽에 마련돼 있다.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 등 미국 전기차는 대부분 충전구를 전면에 설치하지만, 유럽에 기반을 둔 프랑스 차 플랫폼을 사용해 충전구가 기본이다. 후면 주차가 일반적인 국내 상황과 잘 맞는다. 아쉬운 건 충전구를 비추는 조명이 없다는 점으로, 어두울 때 충전하면 어디에 케이블을 꽂아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 

실내도 강인한 외관의 기조를 따른다. 수평 디자인을 대거 활용했다. 10.25인치 계기판·중앙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대부분의 기능은 중앙 디스플레이로 조작이 가능하나, 공조 장치 조작을 위한 물리 버튼을 따로 빼놨다. 실내 소재는 차급을 고려하면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다. 

수납공간 역시 여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한 흔적은 눈에 띈다. 전면 송풍구 아래로 자동차 키나 잡다한 것을 넣을 수 있는 트레이가 있고, 기어 버튼 아래로도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여기엔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USB-A 타입 및 C 타입 포트가 하나씩 들어가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컵홀더 두 개가 있다. 

운전석 시트는 전동 조절이 가능하고, 마사지 기능까지 있다. 소형 전기 SUV로서 마사지 기능은 흔치 않은데, 등허리가 시원할 정도로 꾹꾹 눌러주는 건 아니지만, 장거리 이동 시 운전 피로를 낮추거나 졸음을 쫓을 때 유용해 보인다. 

2열 좌석은 다소 좁은 편이다. 성인 남자는 무릎이 조금 불편할 수 있다. 게다가 2열 밑바닥의 중앙 부분이 돌출돼 있다. 이는 푸조 eCMP의 한계로 보인다.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설계된 ‘반쪽 전기차 플랫폼’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트렁크는 321L의 기본 적재량을 제공하고, 밑바닥에도 추가 공간이 있어 자잘한 물건 넣기에 좋다. 적재 공간이 부족하면 시트를 접어 짐을 실으면 된다. 

지프 어벤저./스텔란티스
지프 어벤저./스텔란티스

잘 달리지만, 승차감은 통통 튀어

어벤저의 국내 인증 거리는 292㎞, 효율적으로 운전하면 400㎞ 주행도 가능하다는 게 제조사 설명이다. 54 (킬로와트시)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장착했다. 소박한 배터리 크기다. 연료 효율은 당 5㎞다. 무게는 1585㎏(알티튜드 트림)으로, 기아 EV3 (1835㎏), 볼보차 EX30(1775㎏)보다 200㎏가량 가볍다. 

가속페달을 밟자, 차가 경쾌하게 튀어나가는 게 전기차의 즉각적인 반응답다. 최고 출력은 156마력, 최대 토크는 270 (뉴턴엠·1 은 1m 떨어진 곳에 1뉴턴의 힘을 줬을 때 생기는 회전력)을 내는 전기모터를 앞바퀴 쪽에 장착했다. 

주행 모드는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스포츠, 노멀(보통), 에코(효율) 모드에 더해 지형 특화 주행 모드인 셀렉-터레인(Selec-Ter-rain)을 지원한다. 샌드(모래), 머드(진흙), 스노(눈길) 등의 모드를 추가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스포츠에서 노멀, 다시 에코로 주행 모드를 바꾸면 10㎞씩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거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효율적인 주행을 하는 에코 모드에서는 가속페달을 50% 이상 밟아야 전기모터의 출력이 발생한다. 공조 장치도 일부 제한된다. 전기를 아껴 쓰기 위한 방편이다. 

산길을 2㎞쯤 짧게 주행해 봤다. 예상처럼 달리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셀렉-터레인 기능을 샌드에 맞추고 달렸는데, 전기모터 출력을 세밀하게 조정해 타이어 노면 간 접지력을 최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지 세밀하게 느끼기는 어려웠으나, 꽤 안정적인 거동을 보인 건 사실이다. 

브레이크 페달은 강하게 밟아야 하는데, 랭글러와 비슷한 느낌이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느낌이 가볍다는 점도 약간 아쉽다. 발밑에서 덜그럭대는 느낌이 있다. 이건 미국 차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 차(푸조) 플랫폼이 가지는 단점으로 보인다.

승차감도 적당히 프랑스 감성으로, 적당히 탄탄하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푸조나 시트로엥과 엇비슷하다. 한국처럼 과속방지턱이 많은 나라에서 이런 승차감은 차가 튄다고 느끼기 쉽다. 빠른 속도보다 저속에서 이런 특성이 두드러진다. 속도를 내면 크게 불만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스티어링휠(운전대)을 돌리는 느낌은 지프에 가깝다. 도심형 SUV보다 정통 SUV를 표방해서다. 반응이 느린 것 같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차간거리 조절, 차로 중앙 유지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의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요즘 차와는 다르게 소극적이다. 그래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고 달릴 때 불안하다. 고속도로 등에서 손을 놓고 달리는 게 어렵다. 안전을 위해 무엇이 더 맞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지프는 정통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브랜드지만, 어벤저에는 사륜구동(4WD) 시스템이 제외돼 있다. 비용과 설계의 문제 탓이다. 

한국에서 어벤저는 론지튜드와 알티튜드 두 가지 트림으로 판매된다. 가격은 5290만~ 5640만원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 등을 활용하면 4000만원 초반대에도 구입할 수 있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