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선 박사는 프로게이머 페이커와 배드민턴 안세영 등 금메달리스트, 국가대표를 포함해 운동선수 3000여 명의 심리 상담을 지원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는 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결과가나빠지고, 노력하는데 자신감은 더 떨어지는 스포츠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어떻게 빚어지는지 운동선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사례가 많다. 그는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친 완벽주의적 사고로 무의식을 점령당한 선수의 이야기를 통해 완벽을 새로 정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다. 

D 선수는 청소년 대표를 목표로 최선을 다해 훈련하는 체조 선수다. 훈련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사람과 대화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르면 어떡하지?’ ‘내가 말실수해서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등등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자신이 완벽하게 보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완벽이라는 압박 속에서 고된 훈련을 하던 D 선수는 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진단받는다. 

그럼 D 선수에게는 어떤 처방을 했을까? 김 박사는 “D 선수에게는 새로운 걸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했다”며 “그의 회복을 위해 ①시각화 훈련 ②호흡 ③마음 일기 등 세 가지 훈련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시각화 훈련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그리며, 마주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모습을 세세하게 상상하는 훈련이다. 호흡에 집중하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고, 잡념이나 부정적인 생각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한 번에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다. 5초 이상 숨을 들이쉬고, 10초 이상 숨을 내쉬며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마음 일기는 자신의 감정, 생각, 반응을 기록하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분석하는 과정이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김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미선 스포츠심리학 박사-숙명여대 스포츠심리학 박사,  케이스포츠심리상담소 대표,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의원,  서울시 체육회 인권심리상담사,  전 숙명여대 체육교육과 겸임교수,  전 숙명여대 농구 선수
김미선 스포츠심리학 박사-숙명여대 스포츠심리학 박사, 케이스포츠심리상담소 대표,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의원, 서울시 체육회 인권심리상담사, 전 숙명여대 체육교육과 겸임교수, 전 숙명여대 농구 선수

'걱정해서 걱정할 게 없어진다면, 걱정할 게 없겠네'라는 티베트 격언도 있다.

“한 유명 프로야구 선수는 늘 ‘홈런을 쳐야 한다’는 기대 속에 살았다.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클수록 스윙 리듬이 무너졌고, 평소 훈련 때 하던 동작마저 흔들렸다. 그는 마음을 다시 자기 감각과 루틴으로 돌려세우며, ‘좋은 결과는 결과를 잊을 때 나온다’는 경험을 하게 됐고, 실제로 다시 홈런 수가 늘기 시작했다. 한 아이스하키 선수는 반복된 부상 이후 다시 빙판에 서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는 스케이트화 대신 일기장을 들고 감정과 몸의 신호를 기록했고, 점차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는 루틴을 통해 회복에 성공했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가 불안, 긴장, 슬럼프, 기대감, 실패 후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다시 회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공통된 회복의 원칙을 조언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가.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 배드민턴 선수는 경기 전 불안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발이 무겁고 팔에 힘이 들어가는 신체 반응을 반복 경험했다. 그는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몸이 풀려야 한다’는 원리를 받아들이고, 경기 전 호흡과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부드럽게 푸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렇게 몸이 유연해지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따라 풀리며 경기 시작과 동시에 더 편안하고 유연한 자세로 몰입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들 수 있었다. 어린 펜싱 선수는 경기 초반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긴장과 경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초반을 ‘탐색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을 연습하며, 실수 자체에 대한 해석을 바꾸고 경기력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한 청소년 바둑 선수는 슬럼프에 빠진 뒤 바둑판을 떠나 달리기를 시작했다. ‘10㎞를 완주하기 전까진 바둑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는 자기 호흡, 리듬, 회복의 의미를 되찾았고, 자연스럽게 바둑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처럼 회복은 각자에게 다른 형태로 찾아오고,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루틴이나 태도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자기 이해와 감각 회복의 시간이 담겨 있다.”

스포츠를 포함해 세상일이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는 것 아닐까.

“많은 선수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무너진다. 완벽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과 자기 리듬을 지키는 힘이다. ‘실수해도 괜찮아. 나는 계속할 거야’라는 마음은 결국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하기’는 이렇게 중요하다. 그리고 ‘마음보다 몸부터 풀기’도 중요하다. 불안감이 클수록, 머리는 복잡해지고 몸은 굳어진다. 스트레칭, 호흡, 리듬 있는 동작을 통해 몸을 풀어주면 마음도 따라 풀린다.”

마음먹어도 되지 않는 일도 많다.

“’내 통제 범위에 집중하기’를 기억하자. 결과나 상대는 통제할 수 없지만, 준비, 루틴, 집중,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통제 가능한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회복력의 핵심이다.” 

1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기아타이거즈에 입단한 김태형(왼쪽) 선수와 김미선 박사가 사진을 찍고 있다. /김미선 2 그린 공략 고심하는 박현경. /KLPGA 3 로리 맥길로이가 2025년 6월 19일 코네티컷주 크롬웰의 TPC 리버 하이랜즈에서 열린 2025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1라운드 중 3번 그린에서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AFP연합
1 2025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기아타이거즈에 입단한 김태형(왼쪽) 선수와 김미선 박사가 사진을 찍고 있다. /김미선 2 그린 공략 고심하는 박현경. /KLPGA 3 로리 맥길로이가 2025년 6월 19일 코네티컷주 크롬웰의 TPC 리버 하이랜즈에서 열린 2025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1라운드 중 3번 그린에서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AFP연합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불안해지지 않나.

“‘자기만의 언어와 루틴 만들기’를 해야 한다. 경기 전 자신을 안정시키는 한 문장, 긴장될 때 꺼내는 나만의 이미지, 실수 후 다시 중심을 잡아주는 동작 등등 이런 ‘심리적 루틴’ 이 반복되면 그 자체가 회복의 힘이 된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생각-말-행동 하나로 잇기를 훈련해 보자. 먼저 스스로 정한 목표를 입 밖으로 말한다. 그 말에 책임지는 행동을 끝까지 실천하고, 위기의 순간에도 생각을 다시 떠올려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말-행동이 일치될 때 선수는 가장 강하고 안정된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어느 선수는 ‘나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고, 그 말을 책임지기 위해 끝까지 자기 행동을 일치시켰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목표를 다시 되새기고, 생각을 행동으로 지켜내려는 끈질긴 태도를 통해 결국 금메달을 따며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회복이란 단어를 강조한다.

“회복은 단순히 멈추는 것이 아니다. 삶의 감각과 리듬을 되찾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운동선수는 기록보다 더 깊은 이야기로, 성적보다 더 위대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선수는 단지 이기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존재다.”

어떻게 스포츠 심리 전문가가 됐나.

“나는 농구 선수 출신이다. 코트 위에서 ‘기술’보다 더 복잡하고 다루기 어려웠던 건 늘 ‘마음’이었다. 흔들리는 자신감,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 지고 나서도 잠들 수 없던 날들⋯. 그런 시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심리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공부를 시작했고 수많은 운동선수와 함께 마음을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상담할수록 선수의 삶과 도전의 깊이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