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장거리 여행 대신 홈캉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땡볕과 인파를 피해 집 안에서 보내는 느긋한 시간은 오히려 진정한 휴식이라는 만족감을 안겨준다. 홈캉스를 겨냥해 다양한 상품이 쏟아지는 가운데 와인 애호가의 눈길을 끄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맛있는 와인이다. 그중에서도 스파클링은 무더운 날씨에 제격이다. 톡 쏘는 기포와 상큼한 산미는 지친 입맛을 되살려주고 낮은 알코올 도수는 낮술로 즐기기에도 부담이 없다. 스파클링이라 하면 흔히 샴페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세상에는 그에 버금가는 와인이 얼마든지 있다. 개성 넘치는 스파클링 와인과 손쉽게 준비할 수 있는 음식으로 홈캉스를 특별하게 만들어보자.

싱그러운 과일 향과 경쾌한 기포의 조합, 프로세코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생산되는 프로세코(Prosecco)는 청사과, 배, 복숭아 등 신선한 과일 향과 화사한 꽃 향이 매력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짧은 시간에 발효와 숙성을 마치기 때문에 와인에 생동감이 가득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프로세코는 당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단맛이 없는 브뤼(Brut), 옅은 단맛이 감도는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 조금 더 달콤한 드라이(Dry)로 구분되니 취향에 맞춰 선택이 가능하다.
프로세코의 산뜻함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겨자 소스로 맛을 낸 닭가슴살 냉채를 추천한다. 와인의 은은한 꽃 향이 매콤한 겨자 향과 어울리고 싱그러운 과일 향이 소스의 새콤함과 맛있는 조화를 이룬다.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스파클링, 프란치아코르타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생산되는 프란치아코르타(Franciacorta)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급 스파클링이다. 샴페인처럼 베이스 와인을 병에 담아 기포를 발생시키고 긴 숙성을 거치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입안을 감싸는 섬세한 기포와 깊은 풍미가 인상적이다. 주로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블랑으로 만들어 아로마가 풍부하고 오랜 숙성에서 발현된 구수한 효모 향이 와인에 개성을 더한다.

좀 더 부드러운 스타일을 원하면 프란치아코르타 중에서도 사텐(Satèn)을 골라보자. 사텐은 숙성 기간이 더 길고 기포의 압력이 낮아 질감이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프란치아코르타는 카프레제나 리소토에 곁들여도 좋지만, 명란 버터 비빔밥과도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다. 깔끔한 기포와 감미로운 과일 향이 명란의 짭짤함을 세련되게 감싸며 간단한한 끼를 특별한 식사로 만들어준다.
샴페인의 합리적인 대안, 크레망
프랑스에서는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지방에서 생산된 것은 뭐라고 할까? 바로 크레망(Crémant)이다. 크레망은 프랑스 전역에서 생산되며, 지역마다 사용하는 포도 품종, 기후, 토질이 다르기 때문에 스타일이 다채로운 것이 장점이다.
피노 블랑으로 만든 알자스 크레망은 가볍고 청량한 아로마가 특징이고,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로 만든 부르고뉴 크레망은 과일 향이 깊고 우아한 구조감을 지니며, 슈냉블랑으로 만든 루아르 크레망에서는 신선한 산미와 미네랄리티가 돋보인다. 휴가 중에 마침 비가 온다면 바삭하게 해물파전을 부쳐 크레망과 즐겨 보자. 와인의 섬세한 풍미가 파전의 감칠맛을 한층 끌어올리고 상쾌한 산미가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씻어준다.
카탈루냐의 시원한 바람, 카바
카바는 스페인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스페인 각지에서 생산되며 주산지는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이다. 카바는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어 상당히 친숙하지만 아쉽게도 시중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은 부담 없이 사 마시는 보급형이 대부분이다.
이번 휴가에는 그란 레제르바(Gran Res-erva)나 카바 데 파라헤 칼리피카도(Cava de Paraje Calificado) 같은 프리미엄급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면 어떨까? 고급 카바는 30개월 이상 긴 숙성을 거치기 때문에 과일 향이 풍부하고, 토스트, 브리오슈, 견과류 등 복합미도 탁월하다. 짭조름한 올리브나 하몽과 함께해도 좋지만 매콤한 한식과도 궁합이 일품이다. 김치볶음밥이나 낙지볶음에 곁들이면 자극적인 양념 맛이 중화되고 상큼한 과일 향이 산뜻한 뒷맛을 선사한다.
떠오르는 샛별, 잉글리시 스파클링
지구온난화로 인해 포도 재배지가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영국 남부 잉글랜드 지방이 스파클링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예전에는 기온이 낮아 재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등 샴페인 주 품종의 완숙이 가능해졌고, 토양도 샹파뉴 지역과 유사해 우수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잉글리시 스파클링은 대부분 전통 방식으로 생산되며 샴페인 못지않은 정교한 기포와 풍성한 아로마를 자랑한다. 바삭하게 튀긴 감자나 새우와 잘 어울리지만 번거롭다면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지진 두부만 준비해도 충분하다. 두부의 담백함이 와인의 복합미를 한껏 살려주고 경쾌한 산미가 음식의 기름진 맛을 개운하게 마무리해 준다.
스파클링 와인 즐기는 방법은
스파클링 와인이 가장 맛있는 온도는 6~8도다. 실온에 둔 와인은 냉장고에 3~4시간 넣어 차갑게 식힌 뒤 물과 얼음을 반반씩 넣은 아이스 버킷에 담아두면 마시는 내내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잔의 모양도 맛을 좌우한다. 가늘고 긴 플루트 잔은 기포를 오래 유지하게 하지만 향을 충분히 펼쳐주지는 못한다. 대신 폭이 넓은 튤립 잔에 와인을 절반 정도 따르면 남은 공간에 아로마가 가득 차서 보다 입체적인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올여름 홈캉스를 계획한다면 냉장고에 스파클링 와인을 몇 병 준비해 두자. 끝없이 피어오르는 고운 기포가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모처럼 맞이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작은 축제로 바꿔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