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화가가 파리의 벼룩시장을 거닐다, 오래된 그림 하나에 눈길을 멈춘다. 그리고 약간의 돈으로 그 그림을 샀다. 낯설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여성의 초상. 그 그림엔 정교함도, 유행도 없었지만 뚜렷한 ‘진심’이 있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그림의 주인을 찾아냈다. 그림을 그린 이는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붓을 잡은 당시 64세였던 화가였다. 그림을 산 이는 27세의 나이로 파리 화단에서 ‘아비뇽의 여인들(1907)’ 작품으로 큐비즘(cub-ism·입체파)을 개척하며 예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던 파블로 피카소였다.
그리고 마침내, 1908년 몽마르트르 언덕의 허름한 스튜디오에 파리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모였다. 피카소는 우연히 산 그림의 작가를 위해 저녁 연회를 열었다. 스튜디오 안은 풍선과 천 조각, 등불로 장식되었다. 정중앙에는 그 벼룩시장에서 산 초상이 걸렸다. 제목은 ‘여인의 초상(Portrait de femme· 1895)’. 검은 배경에 머리를 틀어 올린 여성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담아낸 초상화였다. 단순하고 딱딱한 형태, 경직된 자세, 장식 없는 배경. 그러나 그 속에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뚜렷한 존재감이 담겨 있었다.
연회의 주인공은 그림을 그린 당시 노년의 앙리 루소였다. 전통적인 아카데미즘과는 다른, 일견 ‘너무 순수한 어린아이’ 화풍이었던 그의 그림은 초기엔 혹평을 받았지만,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 등 연회에 참석한 당시 쟁쟁한 파리의 전위 예술가로부터는 독창적 감수성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그날 밤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선언이었다. 다소 장난기 어린 조롱과 존경이 교차하는 유쾌한 연회에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 담긴 상상력과 순수성을 누구보다 빨리 간파한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루소는 ‘아마추어’라는 말로는 규정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한 독창적인 예술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47세에 처음 완성한 정글 그림
루소는 우리에게 정글 그림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첫 정글 그림을 그릴 즈음까지 세무 공무원으로 틈틈이 취미 삼아 작업을 한 아마추어 화가였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루소는 관찰과 직관에 의존해 생애 첫 정글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일명 ‘놀람!(Surprised!)’으로 불리는 ‘열대성 폭풍 속의 호랑이(Tiger in a Tropical Storm· 1891)’다. 그가 독립 살롱전에 처음 출품한 작품이다.
번개가 내리치는 폭풍 속에서 호랑이가 긴장감 넘치게 움직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원근법과 해부학적 비례는 무시되었지만, 그 대신 강한 색채와 상상력 그리고 대담한 구성이 돋보인다. 루소는 실제 정글을 경험한 적이 없었으며, 파리 식물원과 박제 박물관, 엽서, 삽화 등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하고 조합했다. 호랑이는 캔버스 밖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구도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번개와 함께 사선으로 내리는 비의 모습은 일본 우키요에(에도 시대 유행한 풍속화)에서 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겉으로 단순하게 보이는 정글 그림은 정글의 빽빽함을 표현하기 위해 꼼꼼하고 겹겹이 많은 녹색 음영을 사용하고 있다. 루소는 이 작품으로 처음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고, 이후 그는 독립 미술전에 매년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다.
처음 주문받은 그림은 '뱀 부리는 주술사'
‘열대성 폭풍 속의 호랑이’ 이후 한동안 정글 그림 대신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던 루소가 다시 큰 작품의 정글 그림으로 돌아온 것은, ‘뱀 부리는 주술사(The Snake Charm-er·1907)’였다.
작품의 주제는 제목처럼 어두운 정글 가장자리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여자다. 둥근 보름달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여자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관람객 누구나 여성의 눈빛에 눈길이 가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음악에 이끌려 나무 사이로 뱀은 춤을 추듯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자와 뱀은 같은 색깔로 표현되어 음악에 따라 하나가 된 것처럼 일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우측의 무성한 정글은 반대편의 공간에 비해 비대칭 수직 구도로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이 작품을 ‘불안한 에덴동산의 검은 이브’라고 평했다. 정글의 긴장과 신비, 음악과 밀림의 교차점을 환상적으로 시각화한 이 작품은 이후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의 주요 모티브로 작용했다. 당시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소비되던 이국의 인물과 풍경을 루소는 자기만의 회화적 감각으로 결합하여 재해석한 것이다.

마지막 작품이 된 대작 '꿈'
‘꿈(The Dream·1910)’은 루소의 마지막 작품이다. 정글을 주제로 한 204.5×298.5㎝ 크기의 대작으로, 이 작품을 1910년 3월 독립 살롱전에 출품한 6개월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꿈’은 그의 정글 그림 중 가장 크며, 어릴 적 첫사랑으로 추정되는 야드비가를 누드로 그려 긴 소파 위에 누운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그녀는 연꽃과 울창한 식물, 동물로 가득한 정글 속을 응시한다. 앞뒤 공간이 거의 구별되지 않는 평면적 구성으로, 중앙 오른쪽에는 정글의 어둠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뱀 부리는 여자가 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사자, 암사자, 코끼리, 원숭이, 뱀 등이 밀림 속 곳곳에 숨어있어 정적인 긴장감을 이루며, 각각의 요소는 강한 윤곽선과 색채로 독립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루소는 관객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직접 짧은 시를 붙였으며, 이 작품은 그의 상상력과 내면세계의 절정으로 평가받는다. 제목처럼 그는 ‘꿈’을 남기고 떠났다.
루소는 정글을 왜 그렸을까
루소는 평범한 세무 공무원으로 살아가던 중년기에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탐색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는 오히려 기존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가 그린 정글은 실제 여행이나 체험의 결과가 아닌, 당시 프랑스 제국주의의 팽창이 가져온 ‘이국적인 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파리의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 신문 삽화, 엽서, 도감을 통해 구축된 상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재현자가 아니었다. 그의 정글은 식민지적 현실의 모사라기보다 내면의 욕망과 심상을 투사한 ‘감각의 정글’이었다. 이런 점에서 루소는 박제된 동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환상을 그렸다.
퇴직을 앞둔 지인의 배우자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 바이올린의 손 감각은 어릴 때 길러야 한다지만, 그도 루소처럼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에 도전하는 순수함이 빛난다. 중년의 시작은 늦은 출발이 아니라, 진심이 다시 깨어나는 순수함의 시간일지 모른다.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