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챗GPT 출시로 시작된 생성 AI(Generative AI) 혁명은 일상의 많은 것을 빠른 속도로 바꿔놓고 있다. 여행·관광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식음료·레저·컨벤션 등이 한데 얽혀 인생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데다 돈이 많이 몰리는 산업이라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리서치네스터는 전 세계 관광산업 규모가 2024년 6863억2000만달러(약 946조원)에서 올해 7262억6000만달러(약 100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기반 알고리즘은 항공·호텔 예약 서비스의 핵심 기술이 된 지 오래다. 챗GPT로 동선과 일정을 짜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업계 종사자는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변화의 물결에 올라탄 ‘여행의 고수’ 4인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 불러 모았다.
4인 4색 대담에는 여행·관광 분야의 160여 개 기업을 회원사로 거느린 한국스마트관광협회(KOSTA) 김바다 회장과 일간지 레저· 여행 기자로 17년 동안 활약한 이우석 먹고놀랩 대표, AI 기반 공간(지도) 정보 전문 업체 스페이셜코어의 이종훈 대표, 문화·예술을 통해 관광 활성화를 돕는 컬처테크 기업 필더필의 신다혜 대표가 함께했다.

AI 기술 접목으로 여행 경험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
이우석 “계획을 세우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MBTI로 따지면, ‘극단적인 P(즉흥형)’다. 예전엔 밤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를 찾는 수고가 만만치 않았는데 요즘엔 예약이 안 된 저렴한 호텔 객실을 AI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추천하는 서비스가 많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이종훈 “항공편과 호텔 객실 같은 관광 상품 중에는 시간이 지나면 팔 수 없는 것이 많다. 예전에는 못 팔고 남는 항공편과 객실을 일일이 사람이 검색해 찾아야 했는데, 지금은 기계학습(머신러닝)을 마친 알고리즘이 척척 찾아준다. 호텔·항공사와 여행자 모두 AI 생태계에서 ‘윈윈(win-win)’하는 모델이 만들어진 셈이다.”
신다혜 “난 MBTI로 따지면, 극단적 J(계획형)다(웃음). 플랜 B, 플랜 C까지 꼼꼼하게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 생성 AI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층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편리해진 것 같다.
김바다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 사진 등 기존의 많은 정보에 생성 AI 엔진이 장착되면서 단기간에 취사선택할 수 있는 생생한 여행 정보가 폭증했다. 예전엔 자유여행을 가면 목적지에서 잘 알려진 곳 주변에만 머물렀다. 이제는 AI에 프롬프트(명령어)만 잘 입력하면 ‘색다른 명소’ 리스트를 만들어 준다. 다양한 여행지, 맛집과 숙소 간 비교도 가능해졌다. 길거리 쌀국숫집 맛과 분위기까지 비교해 알려준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다. 검색과 예약은 물론 일정 조정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시대도 머지않았다. 다만 업계의 인식은 아쉬운 점이 있다.”
AI 에이전트는 일일이 할 일을 지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의 순서와 흐름을 짜고, 활용 가능한 도구를 써서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AI 시스템을 뜻한다. 특정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의사 결정을 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어떤 부분이 그런가.
김바다 “여행·관광 업계에서도 AI 활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업계 종사자 중에는 아직도 ‘AI가 여행·관광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삐삐(무선호출기) 회사에서 ‘휴대폰 확산으로 통신 산업이 망가진다’고 하는 격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여행사와 그러지 않는 여행사의 경쟁력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이다.”
이종훈 “식당 리뷰와 관련 사진을 가져와 분석하고,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추천하는 등 감성적이고 개별화 정보 활용이 앞으로는 대세가 될 것이다. (카페 테이블에 놓인 메뉴 사진을 가리키며) 망고 빙수 사진을 3D로 판독해 어떤 재료가 들어갔고,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한식은 판독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된장찌개와 청국장 구분도 잘 안된다.”
이우석 “AI 덕분에 여행이 편해진 건 부인할 수 없다. 공급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 편해졌는데 소비자가 훨씬 편해진 것 같다. 공급자의 상당수는 이제 막 업무에 접목하는 수준인데, AI를 잘 활용하는 소비자는 어느 정도 여행을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듯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업계 입장에서는 위기다.”
신다혜 “건강한 식단을 짤 때도 생성 AI를 활용하는데, 여행지에서도 쓸모가 있다. 먼저 건강검진 정보와 원하는 근력 데이터 등을 입력한다. 그런 다음 지금 있는 지역의 지도 기반 음식점 데이터를 주면, 조건에 맞게 식단을 짜준다. ‘포케(하와이식 샐러드) 토핑을 매일 다르게 해줘’ ‘가능하면 식물단백질 비율을 높게 해줘’ 등 프롬프트를 상세히 입력할수록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