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사진 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 이후 가계 부채 억제를 위한 강도 높은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6월 27일 발표된 6·27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이상 과열과 급증하는 가계 대출에 대응한 종합 대책으로 주목받았다. 이 대책에는 다주택자 추가 주택 담보대출 금지, 수도권 주택 담보대출 한도 6억원 상한 도입,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축소(80→70%) 및 6개월 내 전입 의무 부과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갭 투자로 불리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투기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소유권 이전 전에 전세 보증금을 매매 자금으로 활용하는 조건부 전세 대출을 수도권·규제 지역에서 전면 금지했다. 이처럼 정부는 실수요가 아닌 투기성 주택 매입에 정책·금융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구조적 허점을 막고자, 긴급 조치를 내놓았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가격 폭등의 주원인은 전세 대출로 인한 갭 투자 환경 조성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주택 정책금융(정책 모기지, 전세 자금 대출 등)의 급격한 팽창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이 6월 발표한 ‘우리나라 주택 정책금융 현황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 정책금융 잔액은 2024년 말 기준 정책 대출 315조6000억원, 공적 보증 598조8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5년 말 대비 정책 대출 잔액만 200조원 이상 불어난 수준이다. 

가계 신용에서 정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9.0%에서 16.4%로 급등했다. 주택 담보대출 중 정책 모기지 비중은 28%까지 확대되며 가계 부채의 4분의 1 이상을 정책금융이 차지하게 됐다. 정책금융은 애초에 서민 주거 안정을 돕고 고정금리, 분할 상환 대출을 늘리는 등 가계 부채 구조 개선에 기여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그 규모와 범위가 커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 또한 “정책 대출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정책 대출 비중 증가는 가계 부채 관리에 어려움을 주고, 과도한 정책금융 공급은 주택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정책금융의 두 얼굴(혜택과 위험)이 부각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 주택 정책금융은 크게 정책 대출(저리의 주택 구입 자금 대출)과 공적 보증(전세 자금 대출 보증 등)으로 구성된다. 대표적인 정책 대출 상품으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과 주택도시기금의 디딤돌대출(주택 구입용)이 있으며, 전세 보증금 대출로는 버팀목대출 등이 있다. 정부 재원과 보증을 통해 시중금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되는 이러한 정책금융은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나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 경감을 목표로 도입됐다. 실제로 과거 변동금리 이자 부담이 클 때 정책금융이 갈아탈 기회를 제공하는 등 순기능이 있었다. 문제는 정책금융이 시장 수요를 자극하는 정도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정책 대출 상품과 지원 대상을 지속 확대한 결과, 정책 대출 잔액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18~2019년 전세 자금 정책 대출, 보증 공급이 많이 늘어난 여파로 2020~2021년 전셋값이 급등했고, 2023년에는 주택 구입용 정책 대출 공급 증가가 주택 매매가격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금융이 오히려 주택 가격 불안을 심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특히 DSR 규제 사각지대였다는 점은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시중은행 대출은 차주의 모든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소득 대비 제한하는 DSR 규제를 받지만, 그간 정책 대출은 이 규제에서 제외돼 왔다. 이로 인해 차주는 DSR 한도를 채운 뒤에도 정책 모기지나 보증부 전세 대출을 추가로 받아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예컨대 시중은행에서 한도가 막힌 차주가 보금자리론 같은 정책 모기지를 통해 추가 대출을 받거나 세입자가 보증 기관의 90% 보증을 앞세워 과도한 전세 대출을 받는 식이다. 정책금융이 우회 통로로 활용되면서 가계 부채 총량 관리가 어렵게 되고, 금융기관도 정부 보증에 기대 대출 심사나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할 여지가 생겼다.

무엇보다 이번 6·27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의 핵심인 갭 투자 문제와 정책금융 연계는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갭 투자가 성행할 수 있었던 데는 정책금융 구조의 허점도 한몫했다. 우선, 일부 정책 모기지에 실거주 의무가 없었던 탓에 무주택자가 집을 사도 직접 거주하지 않고 기존 세입자를 둔 채로 저리 정책 대출을 이용하는 일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디딤돌대출의 경우 대출 후 1개월 내 전입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보금자리론에는 전입 의무가 없었다. 이는 사실상 정책 대출을 받아 갭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규제 허점이었던 셈이다. 

한편, 세입자 측면에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 등이 전세 대출의 90%를 보증해 주다 보니 은행이 큰 위험 부담 없이 세입자에게 대출해 줄 수 있었다. 그 결과 시중 유동성이 전셋값으로 쏠려 전셋값이 뛰고, 높아진 전셋값을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더 확산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일부 악성 임대인은 수십 채의 집을 전세 끼고 돌려가며 사들이다가 가격 하락 시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 사기 사태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정책금융의 선의가 투기적 수요에 이용될 경우, 시장 안정뿐 아니라 서민 세입자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최근 사례는 보여준다.

가계 부채 문제가 거대한 뇌관으로 부상한 지금, 정책 당국은 주택 정책금융의 역할과 한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6·27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은 정책금융의 구조적 허점을 직시하고 갭 투자 같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제는 일시적 조치를 넘어, 정책금융이 실수요자 지원이라는 본래 취지에 맞게 지속 가능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면밀한 설계 보완이 필요하다. △DSR 규제 확대를 통한 거시건전성 확보 △지원 대상 합리화를 통한 재원 효율적 사용 △전세 보증 제도 개선을 통한 임차인 보호와 시장 안정,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정책금융은 혜택과 위험의 두 얼굴을 극복하고, 가계 부채와 부동산 시장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든든한 디딤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