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협상을 타결한 이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백악관 엑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한국 정부 협상단과 무역 협상을 타결한 이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백악관 엑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상호 관세 부과 유예 시한(8월 1일·이하 현지시각)을 이틀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은 주요 대미 교역국인 일본, 유럽연합(EU)처럼 상호 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모두 15%로 내리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30일 오후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한국이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선정한 투자에 3500억달러(약 486조원)를 제공하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나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합의했다”며 “미국과 한국이 부족함이 없고 완벽한 무역 협상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은 추가로 대미 투자 목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2주 뒤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할 때 구체적인 액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이 미국과 무역에 완전히 개방적이며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미국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한국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데 합의했다”고 썼다.


이날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을 만난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 대표단은 이날 오후 4시 30분쯤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후 한국 대표단과 만나 관세 인하에 관한 한국 측 최종 제안을 듣겠다고 공개하며 한국과 협상 타결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트럼프 진두지휘 협상 1시간 반 합의

이번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타결된 일본, EU와 협상에서도 최종 합의를 이끌었다. 실제로 합의 기준인 상호 관세율과 대미 투자 규모는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 대표의 면담 자리에서 즉석에서 결정되고 있다. 7월 23일 SNS에 공개된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의 면담 사진을 보면, 즉석에서 일본의 대미 투자액을 4000억달러에서 5000억달러로 수정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이 금액은 발표 과정에서 5500억달러(약 761조원)로 다시 수정됐다.


한국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통보한 25%의 상호 관세율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었다. 정부는 원래 상호 관세 25%를 면제받아 0%로 만들고 현재 자동차(25%), 철강·알루미늄(50%)에 붙어 있는 품목 관세를 면제받는 것을 ‘베스트 시나리오’로, 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앞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한 일본과 EU가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까지 15% 관세율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15% 관세율 확보가 협상 타결의 우선 기준이 됐다. 일본과 EU는 미국과 협상에서 거액의 투자를 약속하고 관세를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도 결과적으로 같은 방법을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와 철강 등 한국의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의 품목 관세에 대해선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일본과 합의에서 자동차 관세를 15%, 철강과 알루미늄 50%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EU와는 항공기와 관련 부품, 특정 화학제품과 복제약, 반도체 장비, 특정 농산물과 천연자원, 핵심 원자재 등 ‘전략적 품목’에 대해선 상호 무관세에 합의했다. 하지만 철강·알루미늄에는 관세 50%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국산 의약품에 대해서도 추후 별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 타결 직후 브리핑을 열어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는 15%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으며, 추후 발표될 반도체·의약품 등의 품목별 관세에서는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미 조선 협력 펀드와 대미 투자 펀드로 구성되는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어디에 사용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앞서 일본이 투자하기로 한 5500억달러의 투자금을 에너지, 반도체, 핵심 광물, 의약품, 조선 등 전략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해도 일본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닿은 분야라는 점에서 일본이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대미 투자도 한국 기업의 이해와 맞는 쪽으로 투자하도록 미국 측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1500억달러(약 209조원) 규모로 조성될 한미 조선 협력 펀드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데 사용된다”며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 펀드도 2000억달러가 조성될 예정인데 우리 기업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애초 ‘1000억달러 + α(알파)’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준비했다. 하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 장관이 네 배인 4000억달러의 투자를 한국에 요구했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양측의 시각차는 처음부터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만큼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15%’를 조건으로 미국 측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 실장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퍼준 게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듯 “2024년 기준, 한국이 대미 무역에서 660억달러 흑자, 일본은 685억달러 흑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달러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조선업 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한국의 투자 펀드 규모는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2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도 대출과 보증이 대부분이고 직접투자 비중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LNG와 다른 에너지 제품 1000억달러 상당 구매 합의 부분에 대해서도 “통상적으로 우리 경제 규모에서 필요로 하는 수입액이기 때문에 무리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선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알래스카 LNG 가스전 사업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게 될지가 ‘우려 사항’이었다. 하지만 가스전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구매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투자에 대해 수익 배분 비율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트닉 장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협상 타결을 발표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이 상호 관세 인하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에서 발생한 투자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수익 배분은 앞서 일본과 무역 합의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비율과 같다. 김 실장은 이와 관련해 “우리 내부적으로는 (수익을 미국에) 재투자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는 애초 예상되던 방위비와 무기 수입,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김 실장은 “온라인 플랫폼법, 인공지능(AI) 칩과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 요구 등도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산 수입 소고기 월령 제한 해제 문제나 쌀 수입 문제로 양국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농축산물 수입과 관련해 미국의 강한 개방 요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식량 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서 한국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정치 지도자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협상을 책임진 각료 대화에서 그 부분의 합의는 없었다”고 미 측과 견해차를 보였다.

시한 앞두고 조선 협력 승부수 '마스가'

협상 시한을 앞두고 쫓기는 상황에 몰렸던 한국은 일본과 EU가 미국과 각각 25%와 30%로 예정된 상호 관세를 15%로 내리는 데 합의하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일본과 EU가 관세율을 낮추는 조건으로 자국 시장을 일정 부분 개방하는 한편, 대규모 대미 투자와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는 식으로 양보한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여기에 협상을 요리조리 회피하는 전략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 장관이 7월 25일 약속한 면담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면서 구 부총리는 워싱턴 D.C.행 항공편을 취소해야 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마르코 루비오 국무 장관을 만나기로 했다가 트럼프 대통령 호출로 결국 만나지 못했다. 미국의 이런 전략은 내부 여론의 압박이 큰 아시아 국가의 정치·문화를 활용한 협상 전술로 보인다.

한국도 경제·산업·통상 분야 최고위 당국자 3인방이 워싱턴 D.C.에 총출동해 협상에 나섰다. 먼저 7월 21일과 23일 여 본부장과 김 장관이 미국으로 급히 파견됐다. 두 사람은 7월 24∼25일 러트닉 장관과 두 차례 만난 데 이어 스코틀랜드 출장까지 따라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하던 러트닉 장관을 만나 협상을 벌이는 성의를 보였다. 러트닉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 관료들이 출장지까지 따라왔다. 그들은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7월 29일에는 구 부총리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구 부총리는 이날 오후 워싱턴 D.C.에서 러트닉 장관을 만나 2시간 동안 통상 협상을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던 7월 30일에도 러트닉 장관과 협상을 이어갔다. 30일에는 조현 외교부 장관도 마코 루비오 미 국무 장관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 급파됐다. 말 그대로 ‘전방위 협상전’에 나선 것이다.


대미 투자를 실행할 기업인도 협상 기간에 미국을 방문해 정부 협상에 힘을 실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7월 29일 워싱턴 D.C.로 건너가 이번 협상에서 최대 지렛대로 활용된 한미 조선 협력과 관련해 미국 측 주요 인사를 만나 협상을 지원했다. 한화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현재 운영 중이다. 김 회장은 한미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필리조선소 추가 투자와 기술이전 등 대미 투자 계획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7월 29일 워싱턴 D.C.에 도착해 미국의 주요 파트너사와 글로벌 비즈니스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을 포함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겠다는 신호를 미국 측에 전해 협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7월 30일에는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돕기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4년간 21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내리는 데 성공한 것과 관련해 미국과 협상에 정 회장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란 평가가 있다.


정부는 마지막으로 전략적인 승부수도 띄웠다. 미국에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수십조원 규모의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구호인 마가(MAGA)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더해 이름이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민간 조선사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대출·보증 등 금융 지원을 포괄하는 패키지로 구성됐다. 한국은 미국 조선업 생태계 복원을 위해 수백억달러, 한화로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7월 25일 러트닉 장관을 그의 뉴욕 자택에서 만나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를 처음 제안했는데, 당시 러트닉 장관이 크게 호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총리는 협상 직후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 무역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1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패키지, 즉 마스가 프로젝트”라며 “한미 무역 협상 타결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이 결렬됐다면 수출 주도형 구조인 한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당장 8월 1일부터 모든 대미 수출품에 25%의 상호 관세가 부과되면서 수출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타격이 가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에 부과되는 품목 관세 25%가 유지되면 한국 자동차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15%로 관세를 낮춘 일본·유럽 차와 경쟁이 격화하면서 현대차·기아 등 주력 업체가 고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IBK기업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율이 1%포인트 올라가면 12개월 후 대미 수출 0.45%, 미국 외 수출 0.15%가 줄고 연간 총수출이 2024년보다 12억5000만달러 감소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에 한국에 부과된 관세율 15%를 적용하면 수출이 연간 187억5000만달러(26조7000억원)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에 앞서 무역 협상을 타결한 일본과 EU에선 벌써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은 불확실성이 해소됐지만 서면 합의가 되지 않았고 의약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율과 구매 목록과 관련해 미국 측과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EU에서도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이 일방적 합의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미국과 무역 합의가 깨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협상 타결로 당분간 대미 수출 여건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타결 소식을 접한 직후 페이스북에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여건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