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하루 뒤인 7월 21일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하루 뒤인 7월 21일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7월 20일 실시된 제27회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크게 패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열린 7월 21~23일 일본 금융시장은 의외로 차분한 반응이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선거 직전보다 1엔 이상 오른 달러당 147엔 선에 거래됐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미·일 관세 협상 타결 덕분에 7월 23일 심리적 저항선으로 꼽히는 4만엔을 돌파하는 등 안정된 흐름을 보였다. 국내외 기관 투자자 사이에선 여당이 과반수를 지키지 못했으나 우려할 수준의 대패가 아니고, 당장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에도 2024년 10월 중의원에 이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소수 여당으로 쪼그라든 것은 ‘일본 정치사’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세계적인 우경화 흐름을 타고 일본에서도 신자유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극우 성향 우파 정당이 세력을 크게 키웠다. 참의원 선거를 계기로 자민당 1당 주도 정치가 끝나고, 본격적인 다당제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온 일본의 정치 지형 변화는 앞으로 한일 관계는 물론,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일본 정치, 다당제 막 오르고 '혼미의 시대'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은 총 47석을 얻어 목표(50석) 달성에 실패했다. 자민당은 32개 1인 선거구에서 14승 18패로 대패했다. 지난 선거 당시 28승에 크게 못 미친다. 연립 정권을 담당하는 공명당은 겨우 8석을 얻었다. 양당 의석수는 선거 대상이 아닌 기존 의석(75석)을 더해 122석에 그쳐, 참의원 과반인 125석에 미치지 못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자민당 총재)는 2024년 중의원에 이어 대형 선거에서 연달아 패했다. 자민당 중심 정권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과반을 지키지 못한 것은 1955년 자민당 출범 이후 처음이다. 반면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22석을 획득해 기존 의석을 유지했고, 국민민주당은 17석, 참정당은 14석으로 대약진했다. 국민민주당은 선거구 10인, 비례대표 7인 등 총 17석을 획득해 기존 4석에서 네 배 이상 증가했다. 참정당은 14석으로 존재감을 크게 키웠다. ‘일본인 퍼스트’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건 참정당은 도쿄 등 지역구에서 7석, 비례대표로 7석을 확보했다. 비례대표 기준으론 자민당, 국민민주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야당계 전체 의석은 126석에 달해 과반수(125석)를 넘어섰다. 10여 개에 달하는 이들 야당은 극우에서 사민당·공산당까지, 지향하는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 함께 뭉쳐 정권 교체를 위한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국 불안정 이어질 듯, 후임 총리에 관심

이시바 총리는 선거 직후인 7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은 엄격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라며 “어려운 가운데 많은 지지를 받아 제1당이라는 의석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기자 질문에 대해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소파’를 중심으로 여당 안팎에서 선거의 최고 책임자가 선거 대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난이 거세지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7월 23일 기시다 후미오 등 전직 총리 3인과 회동 후 “일본의 미래가 걸린 시급한 현안이 너무 많다”며 일부 언론에 나온 ‘퇴진설’을 일축했다.

이시바 총리가 총리 직에서 내려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민당은 야당의 일부 우파 정당과 연립을 확대해 정권을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합쳐도 중의원, 참의원 모두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자민당 의도대로 새로운 연립 여당 구성이 제대로 될지가 관건이다.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면 총리 선출 권한이 있는 중의원에서 새 총리를 뽑을 경우 야당에 정권을 내줄 가능성도 있다. 이시바 총리가 퇴진할 경우 한 달 안에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실시되고, 신임 총재가 총리 지명 선거에 나서야 한다. 2024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에는 역대 최대인 9명의 후보자가 출마했다. 이시바 내각에선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등이 출마했다.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상 등도 차기 총재 후보로 거론된다. 

패인은 경제난, 극우 정당 세력 키워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2연패한 것은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이다. 올해 들어 쌀값을 비롯해 각종 소비재 가격이 동반 급등하며 서민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 일본 기업의 실적 회복 덕분에 올 들어 샐러리맨의 임금이 오르고 있지만, 물가 상승 폭이 더 커 일반인 사이에선 살기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경제정책 실패가 자민당을 소수 여당으로 끌어내렸다. 극우 성향 참정당과 보수당이 세력을 크게 키운 것도 이런 경제 현실에 기인한다. 기존 1석에서 14석을 늘리며 15석을 확보한 참정당은 일본인 퍼스트를 내세운 극우 정당이다. 참정당은 외국인 규제 외에 사회보험 부담액 완화와 재정 확대 등 포퓰리즘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소득이 적은 경제적 약자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일 관계, 당분간 현상 유지 예상

한일 협력을 중시한 이시바 총리가 물러나고, 후임 총리가 누가 될지에 따라 한일 관계도 상당한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일본의 신임 총리 앞에는 산더미 같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선거 기간 확인된 유권자의 불만인 높은 물가를 해결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공세에도 계속 대처해야 한다. 시급히 풀어야 할 국내외 현안이 많아 한일 관계 개선에 힘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다.그동안 한일 간 추진해 온 ‘셔틀 외교’ 등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울 듯하다. 

제2, 3 야당인 입헌민주당이나 국민민주당 도 한일 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당분간 현상 유지가 전망되는 이유다. 다만 우익 성향 신생 야당인 참정당과 보수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세력을 대폭 확대한 것은 한일 관계에 난기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장기 집권해 온 자민당이 대형 선거에서 연거푸 패한 것은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보수 자민당의 연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본적 배경은 일본 경제의 저성장이다. 장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다수 국민의 실질소득이 쪼그라들었고, 일본의 국제 위상이 떨어지면서 일반인의 불만이 커졌다. 우리나라도 경제 저성장 추세가 이어질지, 아니면 회복세로 돌아설지가 관건이다. 물가 상승세가 어떻게 될지도 향후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한국에서 극우 성향 신흥 정치 세력이 출현할지, 다당제 시대가 열릴지, 지켜볼 일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