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산업용 전기 요금은 2023년 가정용 요금을 넘어섰다. 2021년 100원대에 머물던 산업용 요금은 2023년 150원 수준까지 급등했고, 이로 인해 전체 산업의 연간 전력비 지출은 2015년 약 25조원에서 35조원으로 12.5% 증가했다. 제조원가 중 경비로 분류되는 전력비 비중은 전 산업 평균이 총제조 비용의 1%대, 경비의 3% 수준에 불과하지만,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등 기초 소재 산업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전 산업 평균의 2~4배에 달한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 부문의 전력 의존도는 매우 높아 전체 운영비 중 전력비가 절반 이상 차지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일반 기업용 데이터센터는 운영비의 약 50%, 클라우드·인공지능(AI) 서비스 제공자용 데이터센터는 운영비의 60% 이상이 전력비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이라는 전환 흐름 속에서 산업 전반의 ‘전기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열에너지 기반 공정의 전기화와 동시에 글로벌 RE100 수요 충족을 위한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산업계의 전력과 관련된 구조적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산업용 전기 요금 급등으로 기업은 도매시장을 통한 전력 직접 구매와 재생에너지 구매(PPA) 계약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도매 전력 시장가격(SMP)의 변동성과 재생에너지 물량 확보의 어려움, 제도적 한계로 인해 실질적인 대응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비정상적인 전기 요금 체계
한국전력(한전)은 지난 1분기 3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전의 2021년 이후 누적 영업 적자는 여전히 30조9000억원에 달하며, 부채 총액은 2020년 말 132조원에서 2025년 3월 말 기준 207조원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단기 성과에 가려진 이러한 구조적 리스크는 전기 요금 체계의 비정상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이처럼 산업계의 전력비 부담이 커지고, 한전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며, 동시에 전력망 고도화와 분산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 구조적 투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전기 요금 결정은 여전히 단기적인 정치적 판단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기 요금 조정 필요성과 실제 결정 간 간극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요금은 생산원가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의 명확한 요금 결정 원칙도 일관되게 적용되지 못한 채 제도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가격이 시장 참여자에게 명확한 신호를 제공하지 못하면, 민간의 효율 투자와 전환 기술 도입은 지연될 수 있다. 가격은 에너지 시스템에서 투자 방향과 수요 조정의 좌표 역할을 하며, 산업의 구조 전환과 기술혁신을 유도하는 핵심 수단이다. 유럽연합(EU)과 북유럽(핀란드·스웨덴)의 시간대별 요금제, 미국 텍사스의 실시간 수요 반응(DR) 프로그램은 모두 시장가격 신호를 활용해 고비용 시간대의 수요를 줄이고 저비용 시간대의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에너지 효율화와 수요 분산을 동시에 달성했다. 물론 시장 기반 모델이 항상 사회 전체 효용 증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 가격이 급등하면 산업계의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가계의 전력 접근성 저하 등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도 에너지 위기 시기에는 일정 수준의 가격 상한제, 취약 계층 보호 프로그램, 에너지세 감면 등의 조치를 병행해 시장 기능과 공공성을 조화시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가격 신호를 통한 수요 조절 및 투자 유도 기능을 회복하되, 그 전제는 기술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을 담보할 수 있는 완충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특히 아직 수요 반응을 가능케 하는 스마트 계량기, 자동제어 시스템, 분산형 에너지 인프라 등이 충분히 확산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적 가격 신호만 강화할 경우,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과도한 불확실성을 전가할 위험이 있다.

전기 요금 개편 네 가지 핵심 과제
결국 중요한 것은 가격 기능의 회복 여부가 아니라, 가격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사회적 보호 장치와 병행되는가다. 전기 요금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전환, 산업 경쟁력 그리고 사회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종합적인 정책 신호체계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첫째, 연료비 연동제, 총괄 원가 기준 등 미리 설정된 요금 결정 원칙을 규제 기관의 독립성 아래 일관되게 적용해 정치적 변동성을 배제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이는 전기 요금이 시장 기반 조정 체계로 정상 작동하기 위한 전제이자,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요금 환경 조성의 핵심이다.
둘째, 산업별 수요 특성과 유연성에 기반한 맞춤형 요금제 설계와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업종·시간대별 탄력 요금제, 수요 반응 요금제를 도입하면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 전력 조달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소비자는 부하 분산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시장 기능 회복과 에너지 접근성 보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차등 요금제, 에너지 바우처 등 사회적 완충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때는 해당 제도를 통해 산업과 가계의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
넷째, 민간이 분산형 전원에 적극 투자하도록, 수요 효율화 인센티브와 전력망 안정 기여 보상을 결합한 요금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간대별 수요 반응 요금제는 피크 시간대 요금을 높이고, 비피크 시간대 요금을 낮춰 소비·충전을 유도하며, 분산형 전원 운영자에게는 그 기여도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설계된 요금은 전력 이용 방식과 공급 구조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 도구로 기능한다.
전기 요금은 더 이상 가격 인상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원칙과 절차로 요금을 결정하고, 산업·소비자·투자자에게 보내는 신호가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전력 산업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민간의 기술 투자 및 분산형 전원 확산을 촉진하며, 사회적 형평성도 함께 지켜야 한다. 이제 전기 요금을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보고, 논의된 과제를 시급한 정책 과제로 인식해 신속히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