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 AI(Generative AI)의 이미지·오디오· 비디오 생성 능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전보다 더 몰입감 있고 창의적일 뿐 아니라 러닝타임마저 길어진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영화 및 TV쇼 제작사는 발 빠르게 콘텐츠 제작에 생성 AI를 실험적으로 활용해 보았을 수 있지만, 제작 과정 전반에 생성 AI를 도입하는 것은 여전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생성 AI 툴의 발전이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한 데다, 현재 제공되는 퍼블릭 생성 AI 모델로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고, 지식재산권(IP)을 주장하기도 애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타 사업 전반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생성 AI가 유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현재 주요 제작사는 비용 압박이 커 수익을 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매출은 크지만, 운영비와 제작·마케팅·광고 비용이 더 많아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제작사의 스트리밍 사업이 수익은 올리지 못하고 출혈만 내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 TV 가입자와 광고 매출도 줄어 수익이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금리 인상,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여파로 제작 비용 상승 폭이 커졌다. 제작사는 이제 소비자의 관심과 지갑을 두고 소셜미디어(SNS),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 비디오 게임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딜로이트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5년 대형 TV 및 영화 제작사가 콘텐츠 제작에 생성 AI를 도입하는 데 있어 신중을 기하면서, 제작 예산에서 생성 AI 툴이 차지하는 비율은 3%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운영비 지출에서 생성 AI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7%로 이보다 높아, 계약 및 인재 관리, 각종 인가 및 제작 계획 수립, 마케팅 및 광고, 글로벌 진출을 위한 콘텐츠의 현지화 및 더빙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처럼 ‘콘텐츠 제작은 신중하게, 운영은 신속하게’ 같은 투 트랙 전략으로 생성 AI를 도입하면, 섣부른 변화로 인력 관리와 콘텐츠 창작에 야기할 수 있는 혼란은 막으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비즈니스 전반의 성과를 더욱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생성 AI로 인해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경쟁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제작사와는 다르게, 독립 콘텐츠 제작자와 SNS 플랫폼은 업무 프로세스와 콘텐츠 제작 전반에 걸쳐 생성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기존 제작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등장할 수 있다.

생성 AI, 할리우드 수준의 콘텐츠를 창작하기에는 역부족
거대 언어 모델(LLM)과 디퓨전 모델(dif-fusion model)이 싼 가격에 범용화하면서, 제작사가 각본과 대사·스토리라인을 더욱 빠르게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시각화 초기 단계와 캐릭터 설정 및 세트 디자인 등을 더욱 손쉽게 진행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생성 AI를 활용하고 있다.
일부 제작사는 생성 AI 툴을 활용해 유명 배우를 더 젊어 보이게 하거나 세트장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실제 건축물이나 공장과 동일한 디지털 모델)을 제작해 광고 촬영 및 사후 제작에 활용하기도 한다. 제작사는 그러한 경우 배우와 계약 내용에 보호 조항을 직접 추가해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2025년에는 제작사에 생성 AI 툴뿐 아니라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제3의 프로덕션 업체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콘텐츠 창작에 생성 AI를 활용하면 사전 제작 단계에서 창의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아직 생성 AI 독자적으로는 할리우드 수준의 콘텐츠 제작이 불가능하다. 최첨단 디퓨전 모델은 사진과 흡사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초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실제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주요 비디오 생성 툴은 짧은 영상은 만들 수 있지만,유기적인 스토리로 구성된 긴 영상은 아직 창작하지 못한다. 비디오 생성 모델이 빠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기존 영화 제작 툴과 과정에 통합되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창작물을 빨리 게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SNS 창작자는 생성 AI의 이러한 한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단기간의 트렌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매우 짧은 영상인 이른바 ‘쇼츠(shorts)’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고, SNS 콘텐츠는 저작권 침해 우려도 상대적으로 적다. 생성 AI 툴의 얼리어답터인 일부 창작자는 실험 삼아 제작한 영상을 SNS에 주기적으로 게시해, 다양한 비디오 생성 툴의 빠른 발전 양상을 대중에게 시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25년에는 이처럼 독립 창작자가 생성 AI를 활용한 콘텐츠 창작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는 동안 제작사는 생성 AI 발전 양상을 관전하면서 당장의 리스크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미디어의 콘텐츠는 갈수록 강해지는 UGC 플랫폼에 소비자 ‘주의 집중 시간(attention time)’ 을 뺏길 수 있다.
제작사 사업 운영 최적화에 더 쓸모 있는 생성 AI
제작사는 2025년 한 해 생성 AI를 콘텐츠 제작에 실험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사업 운영 최적화에 이를 더 빠르게 본격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성 AI는 계약 협상, 인재 및 인력 관리, 재무회계, 현지화 등 미디어 운영, 마케팅 및 프로모션, 콘텐츠 스토리지 및 배급 등을 자동화 또는 보완할 수 있다.
제작사는 이미 사용 중인 소프트웨어나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이러한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사전 제작 과정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규모 업체도 나타났다. 생성 AI를 활용해 대본 평가, 대본 분석 및 제작 일정 수립, 촬영 장소 물색까지 더욱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생성 AI가 옛날 영화를 시청한 후 배우, 테마, 무드별로 태그를 지정하면, 방치됐던 콘텐츠 아카이브를 다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스트리밍 업체는 맞춤형 방식 또는 최신 트렌드에 맞춘 마케팅 방식으로 오래된 콘텐츠를 다시 내세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많은 소비자에게 더욱 빠르게 콘텐츠를 배급하기 위해 일부 제작사는 언어 및 음성 모델을 활용해 번역과 더빙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생성 AI 모델을 활용하면 감정 표현이 풍부한 고품질의 음성 생성 및 재현이 가능하고 사용자가 본인의 취향에 맞춰 세부 조정할 수도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 콘텐츠를 수출할 때는 물론이고 수입할 때도 매우 유용하므로, 콘텐츠 제작사와 배급사 모두에 도움이 된다. 주요 UGC 플랫폼은 이미 창작자에게 이러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생성 AI로 더빙과 번역이 한층 용이해지면 문화도 한층 활발하게 공유돼, 특정 지역에서만 잠시 인기를 끌고 사라졌을 작품이 글로벌 히트작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딜로이트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66%는 이질적 문화를 배울 수 있는 TV쇼나 영화를 즐겨 본다고 답했다. 생성 AI는 미디어 기업의 마진과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