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동그룹 경영진이 9년간에 걸친 긴 법적 위협의 터널 끝에 전원 무죄 판결을 받게 됐다. 그동안 삼성은 인공지능(AI) 붐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한때 글로벌 시가총액 11위에서 현재 30위권으로 추락했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절대적 우위도 흔들렸고, 신규 사업은 부진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던 이 국민기업은 500만이 넘는 소액 투자자에게 실망을 안기며 애물단지가 됐다. 삼성의 성공을 이끌던 컨트롤 타워는 와해됐고, 준법감시단이라는 초법적 기구가 경영을 감시하는 기형적 지배구조가 들어섰다. 그간 긴 세월의 사법 리스크와 삼성 부진이 무관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애초부터 정치적 사건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기존 합법 판단을 뒤집고, 글로벌 합작 투자에서 흔한 옵션 계약에 따라 자회사 주식이 재평가된 사안을 검찰은국정 농단 수사의 일환으로 ‘불법 승계’라는 프레임에 끼워 넣었다.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 고발 이후, 검찰은 삼성전자 임직원 약 300명을 860여 차례 소환 조사하고, 2270만 건의 디지털 자료를 확보하며, 53곳을 압수수색하는 집요한 수사를 벌였다. 이런 무차별한 수사는 사법부에 의해 제지되지 않았다. 정상적 회계 처리라는 전문가 의견이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도 무시됐다.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금융감독원은 같은 입장을 고수했으며, 검찰은 항소를 통해 삼성의 사법 리스크를 연장했다.

이 수사 배경에는 검찰과 규제 기관 지휘부의 사적인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수사의 주역들이 그간 어떤 경로를 걸어왔는지를 보면 왜 그렇게 광범위하고 집요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실무 지휘 검사는 금융감독원장이 되었다. 재벌 수사가 검찰 인사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정치적 출세의 길로 인식된 것은 아닌지 되짚어야 한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기소에 대해 검찰이나 수사를 의뢰한 규제 기관은 어떤 책임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정치권력 앞에 굴종해야 하는 숙명은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의 원인은 대주주가 아니다. 정치적이고 무분별한 검찰 수사, 이를 견제하지 않는 사법부 그리고 규제 기관의 권력 남용이 원인이다. 이러한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와 과도한 권력 집중은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에 대한 무고한 ‘사법 학살’ 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기업이 재산권과 자유를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받고 경영에 집중할 수 있을까. 우선, 검찰의 기업 수사와 기소에 대해 수사심의위원회 및 기소심의위원회 승인을 의무화해야 한다. 미국의 대배심 제도처럼 검찰권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와 금융감독원 등 규제 기관 권한도 분산과 견제를 통해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진국처럼 공정위는 수사권만 보유하고, 기소는 검찰이, 처벌은 사법부가 맡아야 한다. 현재 공정위는 수사· 기소·제재 결정을 모두 수행해 법인의 무죄 추정 원칙이 무력화되고 있다.
또한 금융감독원도 사법부의 확정판결 이전에는 기업에 대한 행정처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삼성 사태는 규제 기관과 검찰 권력의 개혁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사건이다.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이 지금처럼 규제 권력에 의해 무책임하게 침해당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와 ‘K-밸류업’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