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동혁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최근 공개됐다. 5년에 걸친 대서사의 마지막 장인 이번 시즌은 공간과 인간 그리고 사유의 경계를 강하게 뒤흔들며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관객은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따라 섬과 육지, 선박을 오가며, 연합과 배신, 착취를 반복하는 인간 군상을 마주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예기치 못한 생명의 탄생은 이 잔혹극에 역설적인 균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핵심 장치는 시리즈의 제목이자 본질인 ‘살인 게임’ 그 자체다. 이번 시즌에는 숨바꼭질, 줄넘기, 공중 오징어 게임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감독은 이 게임을 점차 공간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배열하면서, 생존자가종착점을 향해 좁혀 들어가는 압박감과 관객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킨다.
첫 번째 게임인 숨바꼭질은 칼자루를 쥔 ‘술래 팀’이 미로처럼 얽힌 마을 골목을 누비며 제한 시간 안에 상대를 찾아 제거해야 하는 추격전이다. 반면 마지막 게임인 공중 오징어 게임은 절벽처럼 솟은 정사각형, 삼각형, 원형의 협소한 플랫폼 위에서 상대를 밀어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두 게임 사이에 배치된 줄넘기 게임은 말 그대로 다리 위에서 펼쳐진다.

살인 게임을 위한 다리
생존자를 맞이하며 길게 뻗은 다리는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곧장 추락할 듯 폭이 아슬아슬하고 좁다. 참가자는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기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선형의 통과 구조에 또 다른 차원의 운동이 요구되면서, ‘건넌다’라는 행위는 곧 복잡한 생존 기술로 전환된다.
다리 양 끝에는 동심의 상징인 철수와 영희가 기괴한 표정으로 서서 거대한 줄을 회전시키고 있다. 참가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수평적 운동에 더해, 매 순간 수직으로 뛰어오르는 반응을 반복해야 한다. 마치 x-y 좌표축의 이동에 z축의 긴장감이 이중으로 겹치는 형국이다. 특히 다리 한가운데에 끊어진 구간이 있어, 참가자는 공간의 단절을 뛰어넘는 동시에 줄의 회전도 피해야 한다.
겉보기에 이 게임은 상대를 직접 제거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다른 게임에 비해 덜 잔혹해 보인다. 그러나 다리라는 공간 형식 그리고 통과자가 희생자의 상금을 독식하는 게임 규칙은 예상치 못한 폭력을 유발한다. 먼저 건넌 생존자가 종착지에 도달하려는 이를 방해하고, 다리 위에서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다리는 순식간에 안도와 추락, 전진과 후퇴가 뒤엉키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한다. 여기서 다리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이 폭발하고 욕망이 격돌하는 극적인 무대로 변모한다.
인간과 관계를 회복하는 다리
이처럼 다리가 생존 경쟁의 무대가 될 수 있다면, 반대로 도시의 역동적인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2024년 프랑스 보르도의 가론강에 개통된 ‘시몬 베유 브리지’가 그 사례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가 설계한 이 급진적인 구조물은 기능 중심의 도시 기반 시설이 어떻게 인간 중심의 공공 공간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도시의 다리는 본질적으로 단절된 지역을 하나의 연속된 체계로 엮는 장치다. 그러나 그 연결 방식은 오랫동안 차량 중심의 도시 계획에 종속되어, 인간보다는 차량 이동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한강의 수많은 다리에서 자동차 차선에 비해 초라할 만큼 좁은 인도 폭에 익숙해져 있다. 사진을 찍거나 잠시 걸음을 멈추는 순간을 제외하면, 강이라는 이 특별한 장소에서 향유할 수 있는 다른 문화적 행위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의 자유주의 정치인 시몬 베유의 이름을 딴 이 다리는 차량 중심의 구조를 전복하고, 사람에게 동등한 공간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러한 전환은 공간 배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르도와 교외 지역인 베글, 플로락을 연결하는 다리는 길이 549m, 폭 44m 규모로 설계되었다. 그중 절반 가까운 폭이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할당돼 있다. 마포대교의 보행 및 자전거 도로 폭이 4m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시몬 베유 브리지의 약 20m 시민 공간은 도시 인프라의 무게중심이 차량에서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연하고 중성적인 21세기 랜드마크
가론강에 낮게 펼쳐진 시몬 베유 브리지는 수면을 따라 길게 이어지며, 선형 광장을 연상케 한다. 이 구조물은 조형미나 구조적 위용보다 ‘평평하고 중성적인 판’이라는 개념을 정체성으로 삼는다. 기존 다리가 시각적 기념비로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면, 이 다리는 가능성의 무대로 자리 잡는다. 건축가는 이를 상징적 디자인의 집착에서 벗어나, 퍼포먼스와 시민의 자율적 사용 가능성에 주목한 결과물로 설명한다.
넓게 비워진 보행 공간은 특정 프로그램을 강제하지 않는다. 백지의 캔버스나 터치 이전의 아이패드처럼, 사용자의 상상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도록 설계되었다. 이 열린 판은 농산물 시장, 아트 페어, 자전거 행진, 자동차 동호회, 음악과 와인이 어우러진 축제까지 도시의 다양한 활동을 유연하게 수용하며,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만들어낸다.
나무 하나 없이 비워낸 중성적인 공간은 언뜻 보기엔 햇빛과 자동차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된 공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바닥 아래의 전기·수도 인입 지점과 가로등과 연계된 그늘막 설치용 고리 등 대규모 공공 행사를 위한 장치가 치밀하게 숨겨져 있다.
‘문화 플랫폼으로서 다리’ 실험의 성패는 결국 시민이 이 공간을 어떻게 상상하고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건축가는 보르도시와 협력해 정기적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누구나 다리를 무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전기함 사용 방식 등을 담은 운영 매뉴얼까지 마련했다. ‘중성적인 판’은 특정 주체가 아닌 다수의 자율적 개입을 전제로 작동하며, 공공 공간의 개방성과 민주성을 구현한다.
유사한 실험은 2024년 서울에서도 하나의 질문으로 떠올랐다. 바로 잠수교의 전면 보행화 계획이다. 당시 국제 설계 공모 당선안은 다리에 핑크색 공중 보행로를 덧대는 방식이었지만, 구조 안정성과 현실성 논란 끝에 철회됐다. 현재는 기존 데크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조정된 상태다.
그러나 우리는 잠수교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공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길이 795m, 폭 18m의 이 다리는 수위 상승에 따라 주기적으로 잠기는 인공의 습지이자, 강과 인간의 관계를 독특하게 매개하는 제3의 지형이다. 상부의 반포대교는 자연스러운 그늘을 제공하며, 기후를 완충하는 도시적 차양으로 기능한다.
시몬 베유 브리지는 잠수교가 21세기형 도시 랜드마크로 전환될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을 제안한다. 그것은 화려한 디자인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시민의 개입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기능적이고 중성적인 매트릭스 체계로서의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