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반도는 극단적인 날씨에 시달렸다. 평균기온은 14.5도로, 평년보다 2.0도 높았고 역대 가장 더웠던 2023년보다 0.8도 높았다. 보통 한 해 6.6일 발생하던 열대야도 24.5일이나 나타났다. 기상청도 113년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라고 공식 인정했다. 이런 극한 날씨는 당장 밥상 물가에 영향을 줬다. 배춧값은 특히 변동 폭이 매우 컸다. 배추는 15~20도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여름철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면 노지(露地) 재배가 어렵다. 지난해 배추 한 포기 소매가격은 6월까지 포기당 3000원이었는데, 7월에는 4000원을 넘었고, 추석 연휴 무렵 9000원을 돌파했다. 배춧값 폭등에 김치 가격이 오르는 연쇄 효과도 나타났다.

과학계는 최근 극단적 기상 현상의 영향을 받은 대표 식품으로 영국 감자, 서아프리카 코코아와 함께 한국 배추를 꼽았다. 극한 기상이 밥상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 머지않아 일부 식품은 우리 식탁에서 영영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지구촌을 엄습했다. 

지난해 8월 한반도를 강타한 극단적인 폭염으로 배춧값이 7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북평면 앞 배추밭에서 농민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해 8월 한반도를 강타한 극단적인 폭염으로 배춧값이 7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전남 해남군 북평면 앞 배추밭에서 농민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뉴스1

가격 껑충 뛴 감자와 코코아, 배추

스페인 바르셀로나슈퍼컴퓨팅센터와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영국 애버딘대와영국식품재단 연구진은 7월 21일(현지시각)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과 가뭄, 폭우가 전 세계적으로 식품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다고 국제 학술지 ‘인바이런먼털 리서치 레터스(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밝혔다.

최근 급격히 오른 밥상 물가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현지 생산 비용 상승,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국 관세전쟁으로 세계 식료품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기후변화는 식품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로 떠올랐다. 실제로 2024년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이 처음 1.5도를 넘어섰고 세계 곳곳에서 기온 기록이 깨졌다. 

폭우와 폭염, 가뭄은 세계 곳곳에서 식품 가격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연구진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보고된 식품 가격 급등 사례에서 극단적 기후 현상이 영향을 미친 16가지 사례를 찾아냈다. 유럽중기예보센터가 1940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기온· 바람·습도 관측 자료를 수집해 구축한 5세대 중기기상예보(ERA5) 모델과 언론 매체 보도, 정부와 산업 단체의 식품 가격 데이터가 분석에 활용됐다.

지난해 아시아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염으로 한국에선 배춧값이 70%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에선 지난해 5월 폭염으로 양팟값이 89%나 급등했다. 일본에선 8월 폭염 이후 9월에 쌀값이 48%, 중국에서도 채솟값이 3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과 2023년 스페인 남부와 이탈리아에서 장기간 가뭄이 발생했는데, 그 결과 유럽산 올리브유 가격이 지난해 50% 급등했다. 미국에선 2022년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가뭄으로 채솟값이 80% 급등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3년 발생한 영국의 겨울 폭풍, 2022년 파키스탄 홍수, 2022년 에티오피아 가뭄도 식품 가격 급등을 불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주도한 막시밀리안 코츠 바르셀로나슈퍼컴퓨팅센터 수석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식품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 기상 현상 중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기온이 배출 가스에 영향받지 않는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했다.

무역 통해 가격 상승 연쇄 효과

연구진은 몇 가지 분명한 패턴을 발견했다. 극한의 기상 현상이 발생한 지 불과 몇 달 뒤면 식품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또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심화한다면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이란 사실이다. 코츠 수석 연구원도 “극단적 현상이 30~40년 전보다 더 강렬하고 빈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만약 식량 시스템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대응한다면, 식품 가격에도 더 극단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품 가격 급등 현상은 무역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번져 나간다. 지난해 2월 이례적인 습한 더위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강타했다. 두 나라는 카카오(코코아 원두) 생산의 43%와 20%를 각각 차지하는 주요 산지다. 그 결과 코코아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세 배 올랐고 주요 소비지인 영국의 초콜릿 가격이 급등하는 연쇄 효과가 나타났다. 비슷한 현상은 커피에서도 나타났다. 2023년 브라질 가뭄과 2024년 베트남 폭염 이후 커피값도 큰 폭으로 올랐다. 

연구진은 코코아와 커피 같은 상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두 상품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는데, 대부분 생산지가 기후 위기에 취약한 지역에 몰려 있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발생하면 서울이나 뉴욕, 런던 한복판에도 가격 폭등의 방아쇠가 언제든 당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전문가는 신흥 경제권일수록 이런 상황에 더 취약하다고 본다. 신흥 경제권은 소비자물가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만큼 식품 가격 상승이 미치는 여파가 크다.

문제는 식품 가격이 오르면 빈곤층 가구에 영양가 있는 음식 공급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식품 가격이 오르면 신선한 과일과 채소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부자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영국식품재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영국에서도 가구 절반 이상이 식료품 구매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식량 자급률이 낮은 편이다. 2022년 32%에 불과하며 곡물 자급률은 23%에 머물고 있다. 한국 소비자물가에서 식품 물가 상승률은 높은 편이다. 영국식품재단도 “기후변화로 인해 가격 충격이 점점 더 빈번해지면서 식량 불안과 건강 불평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태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