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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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분기 자동차 산업의 수익성 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2020년 이후 17개 분기 연속 부품 업체보다 높은 수익성을 기록해 왔는데, 올 들어 부품 업체 평균 영업이익률(EBIT)이 완성차 업체를 앞질렀다. 베인앤드컴퍼니 분석에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완성차 업계 평균 마진은 5.4%에 그쳤지만 부품 업체는 6% 수준을 기록했다. 언뜻 보면 부품 업체 수익이 선방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여실히 나타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직후, 완성차 업계는 고수익 차종 중심의 생산 전환과 공격적인 가격 인상 전략으로 일시적 위기를 비교적 잘 넘긴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업황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고금리, 전기차 수요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 내연기관·전기차 이중 생산 체계라는 구조적 부담이 겹치면서, 이제는 완성차와 부품 업계 모두 마진 압박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자동차 업계는 최근 전례 없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그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를 지탱하던 세액공제가 사라지면서, 테슬라·제너럴모터스(GM)·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는 물론 한국·일본·유럽의 부품 업체까지도 수요 위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북미 공장 투자 일정을 재조정하며 전기차 사업 속도 조절에 나섰고, GM 역시 최근 일부 신모델 출시 시점을 연기했다. 탄소 중립 전략은 강화되고 있지만, 수요는 정체되고 마진은 쪼그라드는 이중고가 반복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더 이상 ‘제조 최적화’만으로 버틸 수 없는 국면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설계·생산·공급망까지 기업 운영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전사적 운영 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박지호 -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박지호 -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디자인 투 코스트’로 바뀌는 개발 공식, 디자인부터 원가 본다

최근 부품 업체가 운영 혁신의 첫걸음으로 삼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 투 코스트(Design-to-Cost)’다. 단어 그대로 제품을 먼저 설계한 뒤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 원가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 설계 방향을 전면 조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사양과 성능에 맞춰 부품을 개발하고, 개발 후 원가를 추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복잡한 전장 부품, 고가의 배터리 시스템, 글로벌 공급 불안정성이 겹치는 상황에 이런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 설계가 끝나고 나면 이미 비용이 돌이킬 수 없게 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투 코스트 전략을 적용하면, 설계 단계에서부터 제품이 어떤 기능을 충족해야 하며, 그 기능에 어느 정도 자원을 배정할지 명확하게 설정된다. ‘과잉 설계’를 원천 차단하고, 대체 가능한 소재나 공정을 초기에 검토해 불필요한 비용을 구조적으로 없애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글로벌 전장 부품 업체는 고전압 배터리 모듈 개발에 이 전략을 적용해, 자재 구성 항목을 25% 줄였다. 그 결과, 부품당 원가를 3%포인트 이상 낮췄고, 공정 수를 줄이며 품질 불량률도 함께 개선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설계, 연구개발(R&D), 품질, 구매, 생산 등 기능 간 설비를 허물고 조직 전체가 하나의 원가 목표에 맞춰 움직이게 된 점이다. 디자인 투 코스트는 단기 절감이 아니라 △납기 안정화 △설계 변경 최소화 △ 리스크 조기 차단 등 중장기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완성차 업체 역시 이 전략을 채택한 부품사를 더욱 신뢰하는 분위기다.

‘납품사’에서 ‘개발 파트너’로 위상 바뀐 부품사

제품 구조뿐 아니라 완성차 업계와 부품 업체 간 관계 구조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완성차 업체가 최종 사양을 정하고, 부품 업체는 이를 충실히 납품하는 일방향 구조였다면, 지금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협업하는 ‘공동 설계’ 사례도 늘고 있다. 공급망 공동 설계는 △기능 단위로 사양을 정의하고 과잉 스펙을 제거하며 △현장 제조 가능성(제조 용이성)을 반영해 불필요한 공정 변경을 줄이고 △비용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완성차 업계와 사전 리스크 분담 구조를 설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유럽의 한 선도 부품 업체는 완성차 파트너와 조기 설계 협업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재비 상승분 70% 이상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공동 설계 없이 사양만 수동적으로 따라간 업체는 30~40% 수준의 부분 반영에 그쳤다. 설계 역량과 협업 주도권이 수익성 방어력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완성차 업계 입장에서도 공동 설계는 리스크를 줄이고 출시 일정을 안정화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전기차 전환기처럼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선, 제조 파트너의 설계 투명성과 조기 개입 역량이 더욱 중요해진다.

공장, 인력, ESG까지 ‘전사적 재설계’ 본격화

설계와 공급망을 넘어, 생산과 공장 운영도 운영 혁신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다. 일본의 부품 업체 모리로쿠는 ‘비전(Vision) 2030’ 프로젝트를 통해 전 공장 데이터를 실시간 통합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설비 단위의 가동률, 품질 이상 발생 패턴 등을 인공지능(AI)이 감지하고, 예지 정비로 연결해 불필요한 가동 중단을 줄이고 있다. 핀란드의 발멧 오토모티브는 설비 간 공정 연동 자동화, 생산 이력 기반 품질 예측 알고리즘을 도입해, 설비 가동률을 30% 향상시키고, 제조원가를 10% 절감했다. 품질 불량률도 20% 이상 줄였다. 이처럼 운영 혁신은 더 이상 단순한 MES(생산 관리 시스템) 업그레이드 수준이 아니라, 공장 단위 ‘디지털 재설계’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대응도 운영 혁신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의 공급망 ESG 평가 강화 등 제도적 요인이 커지면서, 부품 업체도 재생 소재 사용, 공정 탄소 저감, 에너지전환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공장 전력 50% 이상을 태양광발전으로 대체했고, 제품 단위 탄소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고객사에 제공하는 시스템도 운용 중이다.

이처럼 운영 혁신은 부서 단위 비용 관리가 아닌, 기업 전반의 ‘전략적 리디자인’으로확장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단순한 친환경 전환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수요 기반 구조 변화라는 이중 전선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불안정한 전환기에 자동차 산업 질서는 다시 재편되고 있다. 기술력과 비용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 제품 구조, 설계 프로세스, 공급 전략, 생산 체계를 동시에 다시 그리는 ‘전사적 리디자인’이 필요하다. 운영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지금 이 구조를 먼저 바꾸지 않으면, 다음 변화는 기회가 아닌 생존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박지호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