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블랙핑크 ‘데드라인’ 월드 투어 시작과 함께 공개된, 디지털 싱글 ‘뛰어(Jump)’. /사진 YG엔터테인먼트
<2> 2016년 8월 8일에 데뷔하며 K-팝 걸 그룹의 새 시대를 연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1> 블랙핑크 ‘데드라인’ 월드 투어 시작과 함께 공개된, 디지털 싱글 ‘뛰어(Jump)’. /사진 YG엔터테인먼트
<2> 2016년 8월 8일에 데뷔하며 K-팝 걸 그룹의 새 시대를 연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 유니버스의 탄생! 그 세계관이 처음 열린 2016년 8월 8일, 지수·제니·로제· 리사, 네 소녀의 데뷔 날은 K-팝 걸 그룹의 역사적 기념일이 됐다. 그리고 2025년 8월 현재, 데뷔 9주년을 맞아 완전체로 귀환한 블랙핑크는 월드 투어 '데드라인(Deadline)'을 통해 다시 장대한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블랙핑크는 글로벌 패션, 뷰티, 문화 그리고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군림해 왔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곧 트렌드가 되고, 그들의 선택은 곧 전 세계인의 워너비 스타일이 된다. 스타일 아이콘 그 이상의 영역에 오른 블랙핑크. 지난 9년간 ‘블랙핑크 유니버스’는 어떻게 세계를 점령해 왔을까?

블랙핑크는 K-팝 걸 그룹이 통일된 스타일을 추구해 왔던 이전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각 멤버의 고유한 아이덴티티와 취향을 강조하며 패션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블랙핑크의 패션은 매 순간 ‘와우 모멘트(Wow Moment·감탄을 일으키는 인상적인 장면)’를 연출했다.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쿠튀르를 과감하게 혼합해 K-팝 스타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리사는 하이 패션과 힙합 요소를 결합한 대담한 의상, 제니는 클래식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스타일, 로제는 로맨틱하고 몽환적인 아티스트 스타일, 지수는 세련되고 우아하게 한국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미학을 선보였다. 이들의 스타일은 점차 세련되고 개별화된 앙상블로 진화하며, 각각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이자 브랜드가 돼 갔다.

김의향 -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블랙핑크는 콧대 높은 럭셔리 하우스가 앞다퉈 뮤즈로 선택한 최초의 걸 그룹이다. 샤넬, 디올, 생로랑, 셀린느 등 럭셔리 하우스는 각 멤버에게 브랜드의 ‘얼굴’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고, 광고 모델과 브랜드 앰배서더를 뛰어넘어 패션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했다.

제니는 샤넬에 젊음을 선물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옷장에서 빈티지 샤넬을 꺼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입은 제니는 샤넬 하우스에 놀라운 영감을 줬다. 어떻게 어머니 세대에서 딸 세대로 샤넬의 헤리티지를 물려줘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완벽한 레퍼런스였기에, ‘인간 샤넬’로 불렸다. 

물론 제니의 패션 기여도는 샤넬뿐이 아니다. 2021년 캘빈클라인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로 발탁됐고, 2023년에 캡슐 컬렉션을 출시했다. 런치메트릭스에 따르면, 캘빈클라인의 ‘제니 캡슐 컬렉션’은 860만달러(약 119억3680만원)의 미디어 임팩트 가치(MIV· Media Impact Value, 게시물, 기사 언급, 소셜미디어의 금전적 가치를 계산하는 지표)를 창출하며 완판됐다. 제니의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컬래버레이션 컬렉션 또한 매진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2025년 3월 제니를 전면에 내세운 ‘샤넬 25 핸드백’ 광고 캠페인은 샤넬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총 930만 뷰와 46만 개의 ‘좋아요’를 받아 화제성에서 단연 톱을 달렸다.

‘디올 공주’ 지수는 매번 MIV 1위를 기록해 왔다. 2024년 가을·겨울 시즌 미스 디올을 테마로 한 쇼에 대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세 번 게시했는데, 1180만달러(약 163억7840만원)의 MIV를 창출했다. 2024년 레프티(Lefty)는 지수를 헤일리 비버, 카일리 제너,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럭셔리 부문 최고의 뷰티 인플루언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2025년 봄·여름 시즌 뉴욕패션위크 시즌 타미힐피거와 협업을 통해선 800만달러(약 111억400만원)의 획득 미디어 가치(EMV· Earned Media Value)를 기록했다.

‘생로랑 여신’ 로제는 2021년 생로랑과 함께 멧 갈라(MET Gala)에 참석한 최초의 K-팝 아이돌로, 생로랑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티파니 글로벌 앰배서더로서의 영향력도 대단하다. 로제는 티파니의 ‘비전 & 버추오시티’ 전시회에서 3640만달러(약 505억2320만원)의 매출을 창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레프티와 칼라 오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티파니 브랜드 EMV의 13%를 차지했다. 티파니는 이례적으로 로제와 성공적인 협업을 기념해 2023년 9월 ‘티파니 락 로제 에디션’을 공개했다. 2023년 10월 출시 단 몇 분 만에 3만300달러(약 4206만원) 상당의 컬렉션이 온라인과 매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사는 2024년 6월 셀린느와 3년간의 앰배서더십을 끝내고, 2024년 7월부터 루이비통 하우스 앰배서더로, 2020년부터 불가리의 글로벌 앰배서더로도 활약하고 있다.

<3> 샤넬 25 핸드백 캠페인의 제니. / 사진 샤넬 
<4> ‘데드라인’ 월드 투어 파리에서 조나선 앤더슨이 디자인한 디올을 입은 지수. / 사진 지수 인스타그램
<5> 2025 멧 갈라에서 생로랑의 슈트와 케이프, 티파니 목걸이를 한 로제. 생로랑 6 루이비통 앰버서더로 시작된 리사의 첫 광고 캠페인. /사진 루이비통
<3> 샤넬 25 핸드백 캠페인의 제니. / 사진 샤넬
<4> ‘데드라인’ 월드 투어 파리에서 조나선 앤더슨이 디자인한 디올을 입은 지수. / 사진 지수 인스타그램
<5> 2025 멧 갈라에서 생로랑의 슈트와 케이프, 티파니 목걸이를 한 로제. 생로랑 6 루이비통 앰버서더로 시작된 리사의 첫 광고 캠페인. /사진 루이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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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와 럭셔리 하우스 협업은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의 새 시대를 열게 했다. 블랙핑크의 막대한 팬덤을 통해, 젊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소비자층에 다가서며, 브랜드에 신선하고 활기찬 영(young)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패션쇼장 앞에 K-팝 팬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전에 없던 패션쇼 장면이 창조됐고, 블랙핑크 이후 K-팝 그룹이 없는 패션위크는 상상할 수 없게 됐다.

블랙핑크는 뷰티계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글로벌 트렌드를 리드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펼쳐 왔다. 제니의 피부 표현, 컬러 립글로스, 생기 있는 볼 그리고 눈매를 강조하는 부드러운 아이라이너부터 로제의 그레이디언트 립(gradient lip·입술 중앙을 진하게 바르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연하게 블렌딩 하는 립 메이크업)과 헤이즐 아이 메이크업(hazel eye makeup·골드 빛 브라운 섀도로 은은한 깊이감을 주는 아이 메이크업), 리사의 드라마틱한 아이 라인, 지수의 내추럴 메이크업 등, 각 멤버의 시그니처 메이크업은 전 세계 팬이 따라 하고자 하는 주요 뷰티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블랙핑크는 각자의 스킨케어 루틴, 메이크업 팁을 공유해 팬과 밀착도를 높여 왔다. 

그만큼 블랙핑크의 경제적 효과는 하나의 기업 가치에 이를 정도다. 2025년 7월, 국내 브랜드 평판 분석 기관인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아이돌 그룹 브랜드 평판 지수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완전체로 귀환한 데드라인 월드 투어와 신곡 ‘뛰어(Jump)’의 신드롬급 인기가 블랙핑크의 브랜드 파워를 다시 정점에 오르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블랙핑크는 K-팝의 미래를 재구성했고, 한국의 소프트 파워 성장에 크게 기여하며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기까지 했다. 삼성, LG 못지않은 수출 기여도가 높다는 평가가 과장이 아닌 듯하다.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서 그들만의 유니버스를 이룬 블랙핑크는 엔터테이너를 뛰어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스타일 아이콘이자 문화적 현상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김의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