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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개편안 발표 직후 한국 증시가 급락했다. 6월 3일 대선 직후 국내 증시는 일제히 주가가 상승하며 ‘코스피 5000’ 공약에 화답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이 무색하게도 7월 말 발표된 세제 개편안은 시장 눈높이에 못 미치는 모양새다. 물론 취지는 좋다. 세제 개편안은 지난 정부의 감세 기조를 되돌려 세 부담을 정상화하고 인공지능(AI) 관련 기술 및 사업화 시설 지원 등 미래 전략산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은 세제 개편안이 가져올 수급 불안정과 일시적 주가 하락을 예견하고 선제적인 대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단연 주식 양도소득세(이하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강화다. 기존 종목당 50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 보유로 양도세 부과 대상이 크게 확대되는 것이다. 과거 정책을 살펴보면, 주식 양도세 대주주 부과 기준은 2018년(25억원→15억원)과 2020년(15억원→10억원) 두 차례 더 강화되면서 10억원 이상으로 낮아졌다가 2023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대폭 완화됐다. 그래서 이번 개편안은 2023년 수준으로의 환원 조치라고는 하나 그 파급효과를 따져보면 단순히 증세 차원을 넘어선다. 사실상 정책의 원상 복귀 이상일 수 있다.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연말 대주주 양도세 회피 매도 커질 듯

우선 시장에서 가장 많이 우려되는 연말 과세 회피 물량부터 짚어보자. 한국 주식시장에선 연말이 되면 개인 투자자가 과세를 피하기 위해 매도 물량을 대거 출회하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대주주 양도세 강화가 이를 더 유도할 것인지, 이 효과가 장기적인 주가 하락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국내증시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12월의 특이 현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주식시장의 전반적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정책 변화는 연말뿐만 아니라 평소 투자자의 매매 패턴까지도 바꾸게 돼, 결국에는 한국 증시 구조를 서서히 바꾸게 될 것이다.

국내 증시의 고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서 투자자의 심리적 편향이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기적 매매와 과세 회피적 매매가 유난히 두드러지며 펀더멘털은 뒷전이고 테마주만 요동치기도 한다. 대주주 양도세 강화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며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안정성을 해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투자자는 오르는 주식은 성급하게 팔고 떨어지는 주식은 질질 끌며 보유한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이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아지면 이런 비합리적 행동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 시장의 자연스러운 주가 흐름이 세제에 의해 인위적으로 꺾일 수 있다. 투자자는 과세 기준선에 가까워질 때마다 수익 난 주식부터 서둘러 정리한다. ‘내 판단이 옳았다’ 라는 확신을 얻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반면 손실 난 주식은 쉽게 손절매하지 못한다. 실패를 인정하기 싫은 후회 회피 본능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손실 회피 성향이다. 인간은 이득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손실이 커질수록 추가 손실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고 한다. ‘이미 많이 잃었는데 조금 더 잃어도 별 차이 없어’라는 자포자기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승하는 대장주는 급격한 조정기가 쉽게 오게 되는 한편, 상승기에 주가가 오른 적도 없이 시장에서 소외된 주식은 더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자료= 기획재정부·‘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 기획재정부·‘이코노미조선’ 정리

단기 테마주 매매까지 조장

단기 테마주 매매 패턴도 강화될 수 있다. 양도세는 이익에만 부과되지만, 투자자의 심리적 편향을 자극해 자본의 비효율적 배분을 부추긴다. 과세 기준을 피하려는 투자자가 일정 수익이 나면 성급하게 매도하기 때문에 대형주를 장기적으로 보유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연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는 보유 금액이 과세 기준에 근접할 때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결국 시장 전반에 단기 주의가 만연하게 되고 건전한 가격 발견 기능이 왜곡된다. 이처럼 과세 기준 강화는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하게 해 장기적 관점의 펀더멘털 투자보다는 단기 테마주 매매를 조장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모의 함정이다. 소수가 움직이는 자금이라고 해서 그 파급력이작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10억원 이상 보유자가 투자자의 0.35%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자산 규모와 시장에서 영향력은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소수 대형 투자자의 동시적 행동은 시장 심리에 연쇄반응을 일으켜 훨씬 큰 매도 압력을 만들어낸다.

더욱이 이들의 매매 패턴은 다른 투자자에게 부정적 신호를 준다. 큰손들이 팔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일반 투자자도 덩달아 매도에 나서는 심리적 전염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실제 세금 대상자보다 훨씬 많은 투자자가 영향받게 되는 것이다.

세제 정책의 톱니바퀴 효과를 고려해 보면, 대주주 양도세는 증권거래세·배당소득세 등과 맞물려 시장에 복합적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는 이런 세제 조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투자 결정을 한다. 그래서 과거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정책 방향성에 모순이 생기게 된다.

즉, 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키우는 정책으로는 증시 상승세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코스피 5000에 대한 기대감에 비해 정책 일관성이 부족하다면, 국내시장은 신뢰를 잃는다. 

특히 글로벌 투자자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제가 뒤바뀌는 모습은 부정적인 투자 환경으로 보일 수 있다. 이는 단기적 세수 증대를 위해 장기적인 시장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장기 투자 문화 정착시킬 때

기업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정부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전체 주주로 확대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고자 하는데, 대주주 양도세 강화는 이러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시장 투명성 확보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분이 상당한 개인 주주가 과세 회피를 위해 중도에 주식을 매도하면 주주총회에서 견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지배주주의 의결권만 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는 단순한 세수 확보 차원을 넘어 시장 전반을 뒤흔드는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투자자의 심리적 편향을 증폭시키고 한국 증시의 고질적 문제를 심화시키며 장기 투자 문화 정착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부작용이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문제가 서로 맞물려 악순환을 만든다는 점이다. 단기 주의가 만연할수록 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변동성이 클수록 투자자는 더욱 단기적 관점에 매몰된다. 세제가 이런 악순환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세제 개편 논의에서 중요한 건 단기적 세수 효과가 아니라 시장의 건전한 발전 방향이어야 한다. 투자자가 펀더멘털에 기반해 장기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본시장 선진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은 시장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