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관 전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 회장(CEO) - 홍익대 화학공학, 고려대 국제 경영학 석사, 홍익대 경영학 박사, 현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 홍익 총동문회 28대 회장
이영관 전 도레이첨단소재 대표이사 회장(CEO) - 홍익대 화학공학, 고려대 국제 경영학 석사, 홍익대 경영학 박사, 현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 홍익 총동문회 28대 회장

비결이 궁금했다. 어떻게 ‘문무(文武)를 겸비한’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했을까? 

지난 4월 퇴임한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전 회장(현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은 일반 사원으로 출발해 52년간 직장 생활 절반인 26년을 대표이사, 회장 등 CEO로 지낸 ‘샐러리맨의 신화’다. 1973년 삼성과 일본 도레이가 합작 투자한 제일합섬에 입사해, 회사 이름이 새한(1997년)과 도레이첨단소재(1999년)로 바뀐 한 회사를 다녔다. 

이 전 회장은 수입에 의존하던 폴리에스터필름을 국산화해 삼성그룹 기술상 금상을 받았고, 탄소섬유와 PPS 같은 첨단 소재 기술을 도입해 한국의 소재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필름 가공사업을 통해 한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에서 세계 최고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으며, 비즈니스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 및 경제협력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회사와 한국 소재 산업 발전을 위한 성장 동력을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소재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전기·전자, 모빌리티,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의 기초다. 활성화된 조직력, 선견력으로 미래를 예측하여 10~2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각 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회장의 말이다. 

이러한 열정과 소재에 대한 집념으로 1999년 도레이첨단소재 초대 사장을 맡아 320억원 적자였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재직 기간 중 한 번도 적자가 난 적이 없다. 도레이첨단소재는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일만 잘하는 것도 아니다. 임원이 되면서 배우기 시작한 골프에서 업계 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72세 나이에 ‘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인 72타 이븐파를 치면서 매년 자기 나이와 같거나 그보다 적은 타수를 기록하는 에이지 슈트(Age Shoot)에 성공했다. 평범한 체격에 운동부 출신도 아니고 어려서 골프 실력을 쌓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라운드를 걸어서 소화하는 그는 무더위에도 주 1~2회 골프로 여름을 이기고 있다. 골프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이 회장은 “골프가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기본이고, 우정을 쌓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취미다”라며 “개인으로나 회사 일로 보나 큰 도움이 된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이영관 전 회장이 아내(윤남숙씨)와 함께 라운드 도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영관
이영관 전 회장이 아내(윤남숙씨)와 함께 라운드 도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영관

골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내 덕분이다. 1994년 제일합섬 임원이 되면서 골프를 시작했다. 구미 3공장 건설 본부장으로 재직하던,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시절이었다. 선배 네 명이 모여서 골프를 쳤는데, 어쩌다 빈자리가 나면 불러주곤 했다. 보기 플레이어쯤 되는 이들이었는데, 같이 골프를 치면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어느 토요일 안 좋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갔더니 아내가 ‘실컷 골프 잘 치고 와서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아내가 차를 타고 함께 연습장으로 가자고 했다.한 달 연습장 이용료 10만원에 레슨비 13만원이라고 하자, 아내는 그 자리에서 3개월치 비용을 한꺼번에 다 냈다. 12월 1일부터 추운 겨울인데도 오전 6시 연습하고 회사에 출근 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자 7번 아이언으로 공 맞아 나가는 소리가 달라졌다. 150m 거리 그물망의 동그라미 과녁 한가운데에 팡팡 꽂혔다. 체육학 전공인 아내는 ‘훈련 중에 동계 훈련만 한 게 없다’고 했다.”

바로 ‘복수전’에 성공했겠다.

“3월 되자마자 복수심에 불타 내가 그들을 초대했다. 그날 110개를 넘게 쳤다. 그래도 연습 전에 105개는 쳤는데 그간 노력이 어디로 갔는지, 너무 황당했다. 연습장에서는 그렇게 잘 맞던 7번 아이언이 힘이 잔뜩 들어가서 뒤 땅을 치고, 공을 띄우지 못하는 등 정말 울고 싶었다. 동반자들은 내가 동계 훈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10개를 넘게 치니까 골프에 소질이 없는 것 아니냐고 놀려댔다. 분했지만 어차피 평생 해야 할 골프인데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 연습을 했다. 그러고 4월에 마침내 100타를 깼다. 20일 뒤(4월 27일 구미 선산CC)에는 홀인원까지 하면서 88타를 쳤다. 130m 파3홀인 17번홀이었는데 8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쏙 들어갔다. 5월 말에는 70대 타수에 진입했다. 그 뒤로 상황이 완전 역전됐다. 그들이 90타 안팎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나는 싱글 플레이어로 발돋움했다. 매번 핸디를 주고 골프 시합을 했다.” 

지난 26년간 세계 소재 산업 최전선의 사령탑이었다. 골프와 일은 양립 가능한가.

“골프에서 내 목표는 80세까지 매년 에이지 슈트를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반적인 것만 해서는 안 되고 연습장에서 디테일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주에 뭐가 잘못됐고 왜 그런지 연습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더 개선할 것은 없는지 고민하고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가질 때 발전할 수 있다. 그게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양CC에 가면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써놓은 ‘무한탐구(無限探球)’란 글귀를 새긴 바위가 있다. 무한히 탐구하고 연구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사회와 인류에게 기여하라는 의미로 연구소에 내려준 휘호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골프장에는 무한탐구의 구(究)를 공 구(球) 자를 썼다. 무한히 볼을 끝까지 보라는 뜻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성과를 내기 위한 프로세스는 어디에서나 같다. 주인의식, 도전과 혁신, 철저한 자기 관리, 프로 정신을 갖춰야 한다.”

비즈니스 골프는 ‘접대 골프’인가. 견해는.

“비즈니스맨의 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고객과 항상 같이 간다는 자세로 임해야한다. 배려하고 양보하며,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잘한다고, 내 고집대로만 하면 앞뒤 팀에도 민폐고, 동반자에게도 민폐가 될 수 있다. 골프에 대한 애정이 비즈니스와 연결돼 큰 도움을 받은 적도 많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양측 대표가 골프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교환된 정보를 통해 극적인 돌파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골프를 치면서 어떻게 4시간 30분을 보내느냐,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지, 신뢰를 쌓는지에 따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 골프의 최종 목표는 서로가 신뢰를 쌓고 윈윈하는 협력자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골프로 맺어진 인연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52년의 직장 생활, 어떤 좌우명으로 지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정신이다. 회사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일도 즐겁고 성과도 따라온다. 나는 월급쟁이라는 말이 제일 싫었다. 남이 시켜서 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으로는 ‘참는 것’과 ‘배려 정신’ 두 가지다. ‘명심보감’에 ‘순간의 화를 참으면 백일의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그렇더라. 지금까지 회사 생활하면서 한순간 화를 못 참아 일을 그르치는 사례를 숱하게 봤다. 그리고 조직은 여럿이 뜻을 모아 함께 성장하는 곳이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수가 있더라도 바로 지적하기보다 스스로 깨닫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운드가 있다면.

“아내와 144회 디오픈을 참관하고 함께 골프의 발상지 올드코스에서 라운드한 게 기억에 남는다. 우산이 날아갈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아내의 버킷리스트 목표를 함께했기에 정말 즐거웠다. 사업상 갔던 미국 페블비치에서는 기다리던 손주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생애 가장 먼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그리고 72세 되던 해에 골프존 김영찬 회장 등  네 명이 하루에 72홀을 돌기로 의기투합했다. 골프존 카운티 순천에서 오전 4시부터 오후 8시 45분까지 하루 72홀을 돌았다. 네 명 나이를 합하면 무려 300살이었다. ‘그렇게까지 골프를 친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열정이고 도전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