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 한양대 요업공학, 펜실베이니아대 세라믹과학 석사,  워싱턴대 세라믹공학 박사, 한국결정성장학회  창립자 겸 전 회장, 전 한국세라믹학회 회장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 한양대 요업공학, 펜실베이니아대 세라믹과학 석사, 워싱턴대 세라믹공학 박사, 한국결정성장학회 창립자 겸 전 회장, 전 한국세라믹학회 회장

“모든 문명은 조절의 역사다. 불의 발견이 밤을 정복했다면, 에어컨 탄생은 계절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압전 크리스털(결정)과 열 감응 센서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체온을 읽고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며, 고요하게 바람의 방향을 조정한다. 에어컨은 현대 사무실의 지휘자이며, 도서관의 조율자이며, 연구소의 조용한 동업자다.”

60여 년간 크리스털 연구에 매진해 온 오근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명예교수의 신간 ‘크리스탈의 스마일’에 담긴 문장이다. 오 교수는 1990년 한국결정성장학회를 창립하고 한양대 세라믹공정연구센터 소장 등을 지내며 일평생 크리스털을 연구했다.

오 교수가 낸 이번 신간은 에어컨, 냉장고,커피머신, 여권 등 일상의 평범한 물건 속에 숨어 있는 크리스털의 존재를 인문학적 감성으로 풀어낸 에세이다. 오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크리스털이 서로 협업하며 기능하는 과정에서 반응하는 것이 장난치고 웃고 시시덕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그런 현상이 상상의 토대가 돼 에세이를 출간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오 교수와 일문일답.

1 아파타이트(apatite). 2 와그네라이트(wagnerite). 3 석영(quartz). 4 사파이어(sapphire). /셔터스톡
1 아파타이트(apatite). 2 와그네라이트(wagnerite). 3 석영(quartz). 4 사파이어(sapphire).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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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나 루비 같은 장신구 보석이 먼저 떠오른다.

“보석은 옛날부터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러나 현대인은 크리스털을 일상에 매일 가까이에서 유용하게 활용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핸드폰, 컴퓨터, 커피머신 등에 모두 크리스털이 사용된다. 책을 쓰면서 생활 주위에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물품 100여 가지를 마구잡이로 골라 ‘여기에도 크리스털이 장착됐나’ 살펴봤더니, 무작위로 추린 100여 개 물품 모두에 크리스털이 들어가 있더라. 크리스털은 이제 치장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 필수품이 됐다. 천연 보석이나 인공으로 제조된 크리스털은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떠나 상상할 수 없는 전기, 전자, 광학적 특성이 있다. 우리는 매일 크리스털과 함께 산다.현대인은 크리스털 없이 한시도 생활할 수 없다.”

크리스털을 연구한 지 60년이 됐다.

“1965년 미국으로 유학 가면서 본격적으로 크리스털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사람 치아나 뼈에 들어가는 크리스털인 아파타이트(apatite)를 공부했다. 아파타이트는 원소를 넣으면 분홍색, 파란색, 빨간색 등으로 기가 막히게 예쁜 색깔이 나온다. 또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연구 과제로 와그네라이트(wa-gnerite) 크리스털을 공부했다.

한때 물리학에 매료돼 2년 정도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시절이 있었다. 크리스털 연구자로 돌아온 건 사파이어가 계기였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려 했는데,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부터 큰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한 워싱턴대 지도교수가 ‘다른 대학원생 월급의 세 배’ 를 제시하며 나를 크리스털 연구자로 채용했다. 당시는 베트남전쟁을 하던 1970년대였다. 나사의 과제는 헬리콥터나 비행기 계기판 및 유리에 적용된 사파이어가 외부 충격 없이 갈라지는 걸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단단한 물질이 사파이어다. 연구 결과, 사파이어를 폴리싱(연마)하는 방향이 원인이었다는 걸 규명했다. 이후, 크리스털은 나의 인생이 됐다.”

크리스털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크리스털은 정연하게 배열이 된다. 크리스털을 기하학적으로 분석하면, 어떤 크리스털이든 다 7가지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또 크리스털이 없으면 본체가 기능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핵심 부품으로 주로 엔진이 꼽히는데, 자동차에 들어가는 14가지 크리스털이 없으면 자동차가 구동하지 못한다. 갈륨인산(GaPO₄)은 엔진 회전수를 안정시키고, 리튬니오베이트(LN)는 초음파 센서로 장애물을 감지한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결정이 물품의 주인 격인 것이다. 크리스털이 있기 때문에 에어컨이 작동하고, 자동차가 굴러가고, 스마트폰이 기능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크리스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책을 썼다.

고체 재료는 크게 세 가지(금속·세라믹·폴리머)로 분류되는데, 나는 네 번째 분류로 크리스털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털은 금속 크리스털도 있고 세라믹 크리스털도 있고 폴리머 크리스털도 있다. 그런데 모든 크리스털엔 고유의 기능이 있으며, 그 기능은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신간 제목이 ‘크리스탈의 스마일’이다. 크리스털의 미소라니, 무슨 의미인가.

“압전 크리스털은 온도 변화에 따른 미세한 변형을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기계적 운동 과정이 전기로 바뀌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그래서 크리스털로 온도를 측정하면 매우 정확하다. 반대로 크리스털에 전기를 주면, 크리스털이 늘어나거나 수축한다. 1000분의 1초보다 짧은 시간에 팽창 및 수축이 발생해, 크리스털이 미세하게 기계적으로 진동하게 된다. 이것이 나에겐 크리스털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예를 들어 출입국 때 기계에 여권을 올려놓는 그 짧은 찰나, 여권에 있는 실리콘(Si), 갈륨비소(GaAs), 리튬니오베이트 같은 크리스털이 진동해 국가 코드와 개인 정보를 암호화하고, 보안 시스템과 동기화하며, 허가 여부를 연산한다. 크리스털의 미소다.”

어떤 크리스털을 가장 좋아하나.

“좋아하기보다 가장 중요한 크리스털을 얘기하고 싶다. 석영(quartz)이다. 압전 크리스털 중 하나인 석영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보다 더 예민하다. 그래서 스마트폰에서 전령(傳令)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면, 석영이 먼저 깨어나서 디바이스에 전기를 전달하며 기능이 시작된다. 또 비행기의 자동 조종 시스템(오토파일럿)도 석영의 진동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파일럿이 조종간을 놓는 순간, 석영이 기체의 균형을 잡으며 비행기가 수천㎞를 날아가도록 한다.” 

고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