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가벼운 배탈로 동네 병원을 다녀온 뒤 고민에 빠졌다. 치료비가 1만2000원 나왔는데,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면 1만원이 공제돼 2000원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평소 실손보험금을 자주 청구하면 보험료가 인상되거나, 다른 보험에 가입할 때 불리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보험금 2000원을 받느니 자비로 부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는 실손보험금을 소액으로 자주 청구한다고 해서 보험료가 인상되는 구조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만, 4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비급여 치료비에 한해 보험금 청구가 많으면 할증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보험 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은 특정 보험사의 같은 나이대 가입자가 청구해 받은 보험금 총액을 합산해 평균을 낸 후 보험료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본 구조다. 30대 남성이 한 보험사 실손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출에 대한 계산 등은 이 보험사 실손보험에 가입한 유사한 유형의 30대 남성 집단에 한정된다. 이 집단 안에서 여러 계산이 이뤄지는 만큼, 개인이 보험금을 자주 청구한다고 개인 보험료만 인상되지는 않는 것이다. 개인의 교통사고 유무에 따라 보험료 할증을 판단하는 자동차보험과는 구조가 다르다.
전문가는 실손보험금 소액 청구가 많다고 다른 보험 상품 가입 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보험사는 새로운 가입자를 받을 때 고지의무를 통해 가입자의 질병·상해 위험성을 가늠한다. 고지의무란 고객이 자기 질병 유무를 비롯해 치료 이력 등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지의무에서 알려야 할 사안은 보험 가입 시점을 기준으로 자신이 치료받은 이력이기 때문에 과거 보험금 청구 건수와는 무관하다.
일각에서는 보험금을 청구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기록이 남아 새로운 보험 가입 시 보험사가 전산을 확인해 보험료를 비싸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지의무는 보험금 청구 여부와 무관하게 가입자가 보험사에 자신의 치료 이력을 알려야 할 의무다. 치료받은 이력이 있다면, 보험금 수령 여부와 무관하게 통보해야 할 내용이다. 이러한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다만, 동일한 질환으로 여러 번 치료받으면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실손보험 등 표준형 상품은 통상 최근 5년 동안 동일한 질병으로 계속해서 7일 이상 통원 치료를 받았거나, 30일 이상 투약한 기록이 있으면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동일한 질환에 한정된 치료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보험금을 여러 번 청구한 것과는 무관하다.
손해사정사 무료 선임 서비스 ‘올받음’을 운영하는 어슈런스의 염선무 대표는 “소액 보험금 청구 자체가 나의 직접적인 보험료 인상과 추후 보험 가입에 미치는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동일한 질환으로 도수 치료를 받거나 반복해서 내원하는 경우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라면 6회 이하로 치료받는 것이 추후 보험 가입 시 제한을 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또 4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치료비에 대해 할증·할인이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연간 비급여 사용액이 0원이라면, 이듬해 보험료는 50% 할인된다. 100만원 미만인 경우 보험료가 변동되지 않는다. 100만~150만원이면 100% 할증, 150만~300만원이면 200% 할증, 300만원 이상이면 300% 할증된다.
올받음은 손해사정사와 상담·업무 의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어슈런스가 운영하고 있다. ‘손해사정사 선임권’ 서비스를 운영하며 실손보험을 비롯한 배상 책임, 교통사고 등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병원 16%만 실손 간편 청구…참여 저조
한편 보험 업계 등에 따르면, 8월 초 기준 병원(상급종합·종합병원·병원급) 4238곳 중 16%(677곳)만 실손24와 연계돼 가입자가 보험금을 손쉽게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원회는 의료기관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참여율이 59%라고 최근 밝히기도했지만, 이는 전국 3500여 보건소를 모조리 끼워 넣은 통계이므로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병상 30개 미만의 의원급 병원(이른바 ‘동네 병원’)은 아직 단 1%만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10월부터 동네 병원과 약국으로 청구 전산화 대상이 확대되며, 그전에라도 원하는 동네 병원이나 약국은 얼마든지 청구 전산화를 할 수 있게 열어뒀지만, 동네 병원 참여율은 저조하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서류를 일일이 떼야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시작됐다. 소비자가 병원에 실손보험금을 타고 싶다고 요청하면 보험사로 서류가 전송돼 병원에서 ‘원스톱’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출범 당시에는 병상 30개 이상 병원과 전국 보건소를 대상으로 우선 도입됐다.
도입 당시에도 우선 제도부터 시작하고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개문발차(開門發車·차 문을 열고 출발한다는 뜻) 상황이었는데, 10개월이 지난 현재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 당국이 병원과 보험사 등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의견 조율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손24 전산 서비스, 10월부터 확대
오는 10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2단계 확대 시행을 앞두고 디지털 청구 시스템 ‘실손24’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손24는 병원 진료 후 별도 서류발급 없이 진료 기록 데이터를 전산으로 보험사에 전달해 간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험개발원이 개발해 제공하며, 현재 가입자는 약 172만 명에 이른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실손24는 2024년 10월부터 병원급 의료기관과 보건소 약 7800곳을 대상으로 우선 제공됐고, 10월 25일 개정 보험업법 시행과 함께 의원 및 약국 9만6000여 곳까지 확대 제공될 예정이다. 8월 5일 기준 6757개 요양기관(병원 1045개, 보건소 3564개, 의원 861개, 약국 1287개)이 참여했다.
실손24 서비스 확대 결정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가 이용자 5116명 및 참여 의료기관 200곳을 대상으로 3월 24일∼4월 9일 설문한 결과, 응답자 88.6%는 기존 청구 방식보다 실손24 청구가 더 편리하다고 답했다. 향후에도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94%에 달했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 부분은 병원에서 종이 서류 발급 없이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는 점(85.6%)이었다. ‘병원 재방문 등 시간·거리상 비용 감소(49.8%)’ ‘편리한 소액 보험금 청구(40.1%)’ 등을 꼽기도 했다.
의료기관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응답한 의료기관 66.5%는 환자의 보험 청구 서류 발급과 관련된 원무 행정 부담이 10~50%까지 감소했다고 답했다. 62%는 실손24 서비스 확대 시행이 원무 행정 부담 및 효율화에 도움 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실손24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계된 의료기관의 참여 확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실제로 설문 결과를 보면, 가장 많은 응답자가 참여 병원 확대(81.5%)를 최우선 개선 사항으로 꼽았다. 미참여 기관의 경우 사진 첨부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도 42.4%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