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2024년 10월 도쿄 시내 대형 서점에 한강 특별 코너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2024년 10월 도쿄 시내 대형 서점에 한강 특별 코너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요즘 일본에 가면 기분 좋은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식당이나 쇼핑센터에서 직원이 먼저 ‘한국어’로 설명을 해주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 또는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 음악이나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공부 중이라며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일본에서 한국어와 K-문학(한국문학)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나 아이돌에 대한 인기로 한류(韓流) 붐이 불기는 했지만,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한류 붐이다. 

정통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본인이 크게 늘면서 일본 내 한국어 학교(학원)는 한국인 선생이 부족해 한국에서 채용 설명회까지 열고 있다. 도쿄, 오사카 등 대형 서점은 한국 책 판매에 적극적이다. 2025년 여름, 일본의 ‘한류 붐’ 실태를 짚고, 전망해 본다. 

일본 대학, 한국어 전공 늘고 한국 연수 인기

올여름 서울 시내를 다니면 일본 젊은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 대학이나 민간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학생이다.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은 어학당에서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단기 어학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민간 외국어 교육기관인 시사아카데미 등도 한국어 강좌를 열고 있다. 일본에서도 외국어 전공으로 유명한 간다외국어대, 도쿄외국어대 학생이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많이 온다. 

간다외대의 경우 4년 재학 기간 중 절반 이상을 교환학생이나 단기 연수로 한국에서 어학 실습을 할 정도다. 간다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히하라 마코(日原真子)는 홍익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중급 문법과 한국어능력시험 수업을 듣고 있다. 틈틈이 한국 대학생과도 교류 중이며, K-뷰티 체험, 맥주 공장 견학도 다녀왔다. 히하라는 “BTS 노래 가사나 한국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 전공을 결정했다”라며 “한국어 수준이 올라가면서 한국인과 외국인 유학생 친구가 더 많이 생기고 깊이 교류할 수 있게 돼 좋다”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오오키 하루나(大木遙月)는 영남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해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 유학까지 왔다.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한국어를 공부한 이유다. 오오키는 영남대 국어국문과에서 ‘미디어로 배우는 한국어’ ‘방언의 이해’ 등을 듣고, 다양한 한국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 기업으로 인턴사원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 일본 대학 내 외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은 감소하는 추세다. 소규모 지방 대학은 독일어, 프랑스어 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할 정도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권 대학도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학과 정원을 대폭 줄이고 있다. 반면 한국어 학과의 정원이 늘어나는 대학은 많다. 간다외대는 한국어 지원자가 늘어나자, 2021년 한국어 전공 정원을 30명에서 60명으로 두 배로 늘렸다. 한국어 전공 입학생의 경쟁률과 커트라인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한국어 전공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오는 유학생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민간 한국어 학교도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문을 열고 있다.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K-문학 관심

일본에서 K-팝, K-뷰티에 이어 ‘K-문학’ 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2024년 가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한 후 K-문학을 찾는 이들이 급증했다. 대형 서점은 한국문학 코너를 별도로 만들었다. 서점가로 유명한 도쿄 진보초의 한국 책 전문점에는 연일 고객이 몰려든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겸 서점을 운영하는김승복 쿠온 대표는 일본 내 한국문학 붐을 일으킨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2007년 출판사 쿠온을 설립했고, 당시 일본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번역 및 출간했다. 2011년 ‘K-BOOK 진흥회’를 설립한 뒤 전국의 출판사 편집자 등을 대상으로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NHK 인터뷰에서 “2018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이 처음으로 히트하면서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됐다”라며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한국문학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좋은 문학 작품을 고르는 감수성이 비슷하다”라며 “앞으로 일본 출판 시장에서 훌륭한 한국문학이 더 많이 보급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일본 유명 소설가인 히라노 게이치도 한국문학을 높게 평가한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민주화를 이뤄낸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양국의 독자 모두 현대인이 안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라며 “일본 독자 입장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일본 젊은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민주화 운동 시기를 겪은 ‘한국적 특수성’도 있어 일본인이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한류 붐, 구조적으로 정착시켜야

일본인 사이에 한국어와 K-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 및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다. 한국어에 관심 있는 일본인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양국을 상호 이해하고 연결하는 인적 네트워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현재 한류 붐을 일시적 현상이 아닌 장기 트렌드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류 붐의 지속적인 확산을 위해선 불필요한 ‘반한(反韓) 감정’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00년 이후에도 달아올랐던 한류 붐이 한일 간 정치·외교적 갈등으로 순식간에 사그라진 사례가 수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류재광 간다외대 외국어학부 교수는 “이번 한류 붐이 일본인의 한국 여행이나 한국 유학 확대로 이어지도록 보다 세심한 한국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한국 정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한류 붐 확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

[Interview] 다나카 스미레 간다외대 한국어 전공 3학년

“고급 한국어 익혀 ‘한국 전문가’로 일하고 싶어”

다나카 스미레 - 간다외대 한국어 전공 3학년
다나카 스미레 - 간다외대 한국어 전공 3학년

일본 간다외대 아시아언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 중인 다나카 스미레(田中澄玲∙3학년)는 올해 여름 폭염과 폭우를 뚫고 서울에서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강남에 있는 시사아카데미를 오가며 고급 한국어를 익혔다. 오전에는 한국 신문을 읽고, 오후에는 일본인이 강사인 일본어 회화 수업에 들어가 한국 학생과 교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중고등학교 때 K-팝을 즐겨 들으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한국 노래를 좋아하다가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외국어대의 한국어 전공으로 진로를 정했다. 대학 입학 후 한국문학에도 관심이 커져 다양한 한국 소설을 즐겨 읽는다. 장강명 소설가의 ‘한국이 싫어서’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한국에서 공부해 보니 어떤가.

“간다외대에서 3년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생활해 보니 한국어가 짧은 기간에 훨씬 능숙해진 것 같다. 주중에는 학원에서 한국어 읽기와 회화 공부를 했고 주말에는 홍익대, 건국대, 이화여대 등 대학가에 가서 공연을 보고 카페도 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지 체류 경험이 외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서울에 머물면서 공부하려면 비용이 꽤 들 텐데.

“약 20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항공료를 포함해 25만엔(약 235만원)가량 들었다. 한국에서 연수하기 위해 지난 1학기 내내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경제적 여력이 생기면 또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고 싶다.”

대학 졸업 후 장래 계획은.

“졸업까지 아직 1년 이상 남아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비즈니스 전문가로 일하길 희망한다. 한국 기업의 일본 지사 또는 한국에 있는 일본 대사관 및 일본계 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방향으로 취업 준비를 할 계획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