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악 사중주는 지휘자가 필요 없지만 오케스트라 연주는 지휘자가 필수다. 협업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협업 즉 ‘초(超)협업’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유능한 ‘협업 코디네이터(collaboration coordinator)’가 필수적이다. 초협업이란 단순히 기업 간 강점을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국경, 언어, 문화, 산업 영역까지 뛰어넘는 협력 방식을 말한다. 요즘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대표적인 초협업 작품이다. 스토리도 제작 방식도 초협업의 성공 모델이다.
케데헌은 세계적 걸 그룹이자 퇴마사인 ‘헌트릭스’가 저승사자인 보이 그룹 ‘사자보이스’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판타지 액션 애니메이션이다. 이야기 자체가 이종 결합이다. 제작 또한 철저한 글로벌 초협업이다. 소니픽처스가 제작을 주도했고,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이 감독을 맡았다. 음악은 트와이스 멤버와 한국·미국의 K-팝 제작진이 만들었다. 성우진은 이병헌, 안효섭 등 한국 배우가 참여했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은 여러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곡을 발전시키는 K-팝 집단 창작 방식을 따랐다. 지금 미국 빌보드 ‘핫100 1위’ 등 글로벌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수록곡 ‘골든’도 이렇게 탄생한 곡이다.
이러한 초국가적 프로젝트에는 수십 개의 조직과 수백 명의 인력이 동시에 움직인다. 제작사, 유통사, 마케팅 조직, 촬영팀, OST 제작진, 성우, 번역가 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 이들의 방향을 조정하고 속도를 맞추고 충돌을 방지하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협업 코디네이터다. 협업 코디네이터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웅장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영어와 파트너 국가의 언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해당 국가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갈등을 중재하는 능력, 문화 충돌을 해결하는 협상력도 있어야 한다. 전략적 안목과 리스크 관리 역량도 갖춰야 한다.
케데헌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 공신은 감독이자 협업 코디네이터인 매기 강이었다. 그는 전통적 감독 역할을 뛰어넘어 협업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담당했다. 매기 강은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주했고, 토론토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활동했다.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 동양과 서양을 모두 이해하는 안목을 지녔다. 캐나다 셰리던대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드림웍스, 워너브라더스, 일루미네이션 등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스토리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를 모두 알고 이를 융합할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서양음악 그리고 K-팝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이를 창의적으로 융합할 수 있었다. 또한 각 분야 전문가를 알고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을 미리 쌓아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을 설득하고 하나의 목표에 따라 힘을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매기 강은 최근 한류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확산하는 것을 감지하고,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하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에 도전해 성공했다. 이미 많은 제작사가 K-팝이나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한 것은 매기 강 같은 협업 코디네이터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케데헌에는 곳곳에 K-팝 문화와 한국 문화의 단서가 들어있다. K-팝과 관련된 팬덤 현상, 떼창, 응원 문화, 이벤트 등이 들어있고 한글 간판, 한국 음식이 곳곳에 배치돼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매기 강은 한국인 스태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이런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고 이를 작품에 적절히 녹여 넣었다.
협업은 서로 다른 강점을 연결하고 융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인류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로 ‘제1차 협업 경제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초협업으로 ‘제2차 협업 경제 시대’에 접어들었다. 케데헌은 초협업의 성공적 작품이자 협업 코디네이터의 중요성을 일깨운 기념비적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