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천구에 사는 45세 A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이 갱신을 거부해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인근 전세 매물은 씨가 말랐다. 돌려받은 보증금에 은행 대출을 더해 집을 마련하려 했지만, 주택 담보대출(주담대) 규제에 막혀 계획은 무산됐다. 그렇다고 전세를 구하려 해도 보증금 규모가 커진 데다 전세 대출까지 제한돼 결국 월세를 알아보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매달 나갈 돈을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할 따름이다.
이 사례는 오늘날 서민 주거 현실의 축소판이다. 표면적으로는 집값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는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옥죄는 이중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주담대 한도를 낮추고 실거주 의무를 강화해 매수 수요를 억제하는 한편, 전세 대출 한도와 보증 비율까지 줄여 임차 수요마저 틀어막았다. 하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고급 주택 시장은 끄떡없고, 서민 주거만 전방위적으로 압박받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저가 아파트 시장 얼어붙게 한 ‘6억원 이상 주담대 금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부동산 대책 효과에 대해 금융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치하했다. 하지만 이는 실적이라기보다는 눈앞의 지표만 가리고 아웅 하는 성과를 칭찬한 것에 불과하다. 대출 총량을 줄이고 전세 대출을 억제하면 단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세가 꺾인 듯 보인다. 언론 헤드라인은 잠잠해지고, 당장의 정책 효과처럼 보이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서민 주거 현실은 더욱 옥죄어 들어가고, 시장 왜곡은 장기적으로 심화한다.
어쩌면 대통령과 국무위원 입장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어차피 임기는 수년에 불과하고, 이후 발생할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은 그들의 관심사 바깥에 있다. 정책의 후폭풍은 차기 정권과 국민이 감당할 문제일 뿐이다. 이처럼 임기 정치가 만들어내는 단기 성과 집착은 주거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정작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이고 일관된 원칙인데, 오늘의 칭찬은 그와 정반대의 현실을 드러낸다.
정부가 강조한 대출 규제의 목적은 강남· 서초·용산 등 고급 아파트 가격 급등을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매수자의 상당수는 애초에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부자이다. 이들에게 ‘주담대 한도 6억원’은 무의미한 장치일 뿐이다.
실제로 고급 주택 거래는 여전히 활발하다. 서울에서 거래된 50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는 올해 들어 작년의 두 배를 넘어섰다. 세금·대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은 더 뚜렷해지고, 자산가는 더 비싼 주택을 현금으로 사들이고 있다. 결국 규제는 고급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기는 했지만, 이것이 국민 경제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급 주택 거주는 사실 죄악시할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소유했으니 반겨야 할 일이다.
반면 서민이 주로 찾는 중저가 아파트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주담대 한도 축소와 정책 대출 축소로 인해 대출 의존도가 높은 무주택 서민의 진입 문턱은 높아졌다. 집을 사고 싶어도 필요한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자, 거래량은 급감하고, 주거 사다리를 오를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더구나 주담대 규제로 매수를 포기한 수요는 전세 시장으로 쏠린다. 그런데 전세 대출마저 보증 비율이 낮아지고 조건이 까다로워져 전세 진입조차 힘들어졌다. 보증금은 높아지고 대출은 줄어들다 보니 결국 전세 수요가 월세로 밀려난다. 최근 서울 전세수급지수가 150을 넘어서며 수급 불균형이 심화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월세 비중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서민 가계의 고정 지출을 늘리며 자산 형성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대출 규제는 서민 자산 축적 막는 덫
경제학적으로 대출 규제는 자금 조달 능력에 따라 계층별로 차등적 충격을 준다. 현금 부자에게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고, 대출이 절실한 서민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 문제는 주담대 규제와 전세 대출 규제가 동시에 작동할 때 이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다.
주담대 규제가 매매 수요를 전세 시장으로 떠밀면, 전세 대출은 그 길을 봉쇄한다. 그 결과 서민은 집을 살 수도, 전세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결국 선택지는 고액 월세뿐이고, 이는 장기적 자산 축적을 더 어렵게 한다. 대출 규제가 버팀목이 아니라 덫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짚어야 할 대목은 규제의 주체와 정책 일관성이다. 주담대는 원래 금융의 영역이다. 은행은 차주의 상환 능력과 담보 가치를 바탕으로 대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일괄적으로 한도를 정하고, 만기를 제한하며, 심지어 전입 의무까지 부과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무력화하는 처사다. 이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세 대출의 존재 자체다. 전세는 원래 민간 임대차 계약의 금융적 장치였는데, 국가가 개입해 대규모 전세 대출을 공급하면서 시장을 왜곡했다. 이는 서민의 주거 안정이 아니라 전세가 상승과 매매가 연쇄적 거품을 초래한 주범이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전세 대출은 정책 수단으로 설계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책, 앞뒤 없는 규제와 완화의 반복은 시장을 더 불안정하게 한다. 주담대 규제는 은행의 위험 관리 영역으로 돌려놓고, 전세 대출은 근본적으로 축소·폐지하는 일관된 원칙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정책은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정권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일관된 정책 기조일 것이다.
정부가 진정 주거 안정을 원한다면, 이제라도 규제 일변도의 접근을 멈추고 주택 시장과는 별도로 공공부조(국가와 지자체가 생활 유지 능력이 없는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제도) 정책의 일환으로 주택 정책을 다뤄야 한다. 이를 통해 서민 실수요자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번 대책 역시, 부동산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서민만 희생시키는 전형적 실패 정책으로 기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