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이란 무엇인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쪽이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누가 더 전략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중소기업이라서 힘들다”라는 말은 고민을 멈추는 변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서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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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소기업 수가 대기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필자 역시 특강이나 프로젝트, 자문 등으로 현장에서 많은 중소기업 리더를 만난다.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그들의 큰 고민은 거의 ‘사람과 조직’, 즉 HR(Human Resources·인적자원) 문제다. 그래서 컨설팅도 받고, 대기업 출신의 인사 책임자를 영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생각만큼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회사가 성장 궤도에 오르면 많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성장통처럼 HR 시스템의 부재를 호소하는 동시에 “이제 우리 회사도 제대로 된 인사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라며,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의 성공 사례를 찾기 시작한다.

이러한 고민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구글, 넷플릭스 같은 선진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모범 사례)’를 조직에 이식하려는 시도다. 또 다른 하나는 선진 기업의 사례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며 ‘중소기업에 딱 맞는’ 마법 같은 성공 사례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두 가지 접근 모두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비슷한 실패로 끝난다. 우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질문을 잘못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히 불편한 명제를 던지고자 한다. 바로 ‘중소기업을 위한 HR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되는 이유

몇 해 전, 한 중견기업의 요청으로 ‘애자일 조직(수평·자율적 조직)’에 대한 조찬 특강을 진행했다. CEO는 실리콘밸리처럼 민첩하고 혁신적인 조직으로의 변신을 꿈꾸며 큰 기대를 보였다. 강의 후 임원은 만족했지만, 익명으로 받은 직원의 피드백은 전혀 달랐다. “사장님과 경영진의 마인드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런 프로그램은 무의미하다”라는 쓴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이는 외부 우수 사례를 섣불리 도입했을 때 마주하는 냉정한 현실이다. 선진 사례의 씨앗을 가져와도 우리 조직의 토양이 척박하면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 수직적 위계질서와 경직된 보고 체계가 굳건한 상태에서 애자일이나 ‘수평 문화’를 외치는 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리더의 언행 불일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입으로는 혁신과 자율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표면적으로 가장 늦게까지 근무하는 직원을 최고로 인정하는 오랜 관성이 조직을 지배한다면, 어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결국 다른 기업의성공 사례를 좇는 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것과 같다. 시간과 비용의 낭비는 물론, 조직에 깊은 냉소와 불신만을 남길 뿐이다.

창고에서 시작한 그 회사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됐나

위대한 기업은 처음부터 완벽한 HR 시스템을 갖췄을까. 많은 리더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성공을 보며 그들의 제도를 부러워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다. 그들의 HR 철학과 핵심 제도는 회사가 거대해진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아이콘 구글은 그 유명한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을 창업 초창기부터 도입, 조직의 원대한 꿈을 향한 도전의 도구로 삼았다. 구글이 OKR의 원조는 아니다. 그러나 구글은 그것을 가장 크게 성공시키며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다. 오늘날 구글을 탄생시킨 성장 동력으로 활용한 셈이다.

MS의 빌 게이츠는 회사가 작았을 때부터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고 유치하는 것에 한 치의 타협도 하지 않았다. 시애틀의 작은 차고에서 온라인 서점을 오픈할 때 제프 베이조스의 내면에는 이미 훗날 전 세계 기업이 배우려 하는 ‘아마존 리더십 원칙(Amazon Leadership Principles)’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HR 철학과 시스템은 회사가 성장한 후에 장착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시작과 함께 구축해야 할 핵심 엔진이라는 것이다.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항변에 답하며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현장 경영자가 하는 볼멘소리가 있다. “당신은 우리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원도, 인력도, 브랜드도,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 우리만의 철학을 고민하고 제도를 만드냐는 항변이다. 충분히 이해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좀 더 전략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략(strategy)’이란 무엇인가. 본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강자와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쪽이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누가 더 전략적이어야 하는가는 자명하다. 자원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모든 총알을 가장 효과적인 곳에 써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소기업이라서”라는 말은 고민을 멈추는 변명이 아니라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가 돼야 한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우리만의 길, 전략적으로 만들어갈 때

과거에는 우리만의 제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대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클라우드 기반의 저렴한 HR 솔루션, AI를 활용한 조직 진단 및 구성원 감정 분석 툴, 각종 협업 소프트웨어 등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넘친다. 이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우리 조직에 맞는 HR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과를 측정하며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기술이 중소기업에 강력한 무기를 쥐여준 것이다. 기민하게 움직여서 거대한 대기업을 교란하는 작은 기업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제언하고 싶다. 바로 ‘전략적 연대’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은 거대한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교류하고, 심지어 경쟁사끼리도 적절한 수준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협업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서로 힘을 합쳐야 할 중소기업은 오히려 대부분 ‘각자도생’하면서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중소기업용 HR’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중소기업 리더와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제휴해야 한다. 기업끼리, 리더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 수도 있고, 중소기업만을 위한 시장 인재 풀(pool) 확보나 브랜드 전략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비용을낮출 수도 있다. 서로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우리만의 ‘오픈소스 베스트 프랙티스’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결국 답은 외부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은 더 이상 외롭고 고독한 길이 아니다. 우리 기업의 창업 철학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 손에 잡히는 기술이라는 무기를 들고, 마음 맞는 동료 기업과 연대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집을 짓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