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디지털 세금, 디지털 서비스·시장 규제는 전부 미국 기술에 피해를 주거나 차별하기 위해 설계됐다”면서 “이런 차별적인 조치를 없애지 않으면 해당 국가의 대미 수출품에 상당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아마존·애플 등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주로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DMA),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 중인 유럽연합(EU)을 겨냥한 메시지지만 한국도 유사한 온라인 플랫폼 경쟁 촉진법(온플법)을 추진 중인 데다 지도 정보 반출 금지(구글), 외국 기술 기업에대한 망 사용료 부과(메타 등) 등의 규제를시행 중이어서 타깃이 될 수 있다.
# 주한외국기업연합회(KFA)는 하청기업 노조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노사 협상을 할 수 있는 길을 튼 노란 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8월 24일 해당 법 개정 영향을 묻는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외국계 기업 100곳의 대표 및 인사 담당자 대상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35.6%가 “한국 내 투자 축소 또는 지사 철수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대표는 8월 21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노란 봉투법 시행 시 본사가 한국 사업장에 대한 재평가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해외 비관세장벽 허물기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공세에 노조와 소액주주를 중시하는 입법 러시까지 겹치면서 국내 기업이규제 비용 급증이라는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7월 3일과 8월 25일 1, 2차 상법 개정에 이어 9월 3차 상법 개정 추진으로 경영계는소액주주로 위장한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여기에 노란 봉투법 통과로 기업은 투기 자본과 노조의 협공을 받게 됐다. 기업 외형이 커질수록 규제가 늘어나고, 원격의료와 공유 경제 같은 혁신사업을 포지티브 규제로 제한하는 국내 경영환경 탓에 기업을 해외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이코노미조선’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자문을 받아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K-규제를 △노동 △지배구조 △대기업집단 △플랫폼 △포지티브(허용 항목만 명시) 규제 등 5개 키워드로 정리해 문제점을 짚어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6000달러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이지만 해외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인 중국보다 반기업적인 갈라파고스형 K-규제 환경을 점검했다.
1 노동│노란 봉투법, 무기한 파업에도 기업 대응 어려워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됐지만, 법상 사용자의 정의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 범위가 불분명하다. 기업 경영과 산업 경쟁력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6단체가 노란 봉투법이 통과한 8월 24일 내놓은 공동성명 내용이다. 수백, 수천 업체를 하청으로 둔 자동차·조선 같은 산업에선 원청이 사실상 무한 교섭 의무를 지게 됐고, 구조조정, 인수합병(M&A), 해외 공장 건설 같은 경영 결정까지 노조의 쟁의 대상이 될 길이 열렸다. 불법 파업 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폭넓게 허용하는 판례를 내고 있는 독일·프랑스·영국 등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은 “(노란 봉투법은) 글로벌 기업에 불확실성을 준다”고 지적했다.
2 지배구조│3% 룰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경영경 방어 부담 급증
대주주와 가족 등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3% 룰’을 사내이사뿐 아니라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도 적용하는 1차 개정 상법에 이어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감사위원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린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도입한 2차 개정 상법으로 투기 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차 개정 상법에 포함된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대주주 경영권 방어력을 약화시킨다. 3% 룰 적용 확대 조항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주주총회 시즌부터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선진국에서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특정 비율로 제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장한다. 예컨대 정부 또는 공공기관 등 특정 주주에게 중요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부여하는 ‘황금주’, 일정한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장치인 ‘차등 의결권’, 적대적 M&A 상황에서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 등을 부여하는 ‘포이즌필’ 제도를 통해 경영권을 보장한다.
3 대기업집단│ 성장 억제 '피터팬 증후군' 심화
국내 기업은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적용받는 규제 건수가 늘어난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자산 500억원 미만 기업 대비 274건의 규제를 추가로 적용받는다. 자산 총액 2조원 이상~5조원 미만의 기업보다 규제가 65건 더 많다. 또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특별세액감면은 물론, 신규 고용 공제도 줄어든다.
반면 한경협이 지난해 6월 발표한 ‘G5 국가(미국·일본·프랑스·영국·독일)의 지주회사 체제 기업집단 사례 연구’에 따르면, 해당국가는 특정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해 규제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리는 ‘피터팬증후군’ 심화 현상이 한국에서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2023년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은 574개에 달한다. 이는 직전 연도(208개)에 비해 2.7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4 플랫폼│ 공정거래 규제, 한미 통상 마찰 불씨
정부는 EU의 DMA를 벤치마킹한 온플법 추진이 통상 마찰의 빌미가 될 조짐을 보이자 2024년 2월 전면 재검토로 방향을 틀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독과점 폐해 방지를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플랫폼과 입점 업체 관계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으로 대응하고자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미국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특정 디지털 서비스 공급자를 규제하는 한국의 공정거래 관련 법안에 대해 한국 기업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대기업이 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7월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플랫폼 규제법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서한을 보냈고,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43명은 “한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디지털 무역 장벽을 해소해야 한다”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 주요 빅테크가 정식 회원사로 있는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도 8월 20일 한국의 디지털 무역 장벽 완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5 포지티브 규제│모빌리티, 의료, 숙박 혁신 제동
공유 자동차, 자율주행차, 자율주행 로봇, 원격의료, 공유 숙박 등 혁신 산업은 한국에서 여전히 법적 제약에 묶여 있다. 한국은 2020년 3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타다 금지법)으로 모빌리티 혁신을 좌초시킨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기 시범 허용된 원격의료는 지금도 제한된 수준으로만 서비스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등에서는 모두 규제가 풀린 사업이다. 원격의료의 경우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 닥터’ 사업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상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할 수 없다. KT도 베트남·몽골 등 해외에서 원격의료 사업을 확장했지만, 국내에서는 발이 묶였다. 특정 사업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 대신 ‘허용된 것만 가능하다’는 포지티브 규제를 고집하는 경영 환경은 미래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도한 규제가 미국의 10대 기업(시총 기준) 중 9곳이 교체된 지난 20년간 한국 10대 기업의 경우(자산 기준) 두 곳만 바뀔 만큼 역동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란 봉투법 통과하자마자 공격적 행동에 나선 노조
노란 봉투법 통과 사흘 만인 8월 27일 현대제철 하도급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1892명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이사 등 임원진을 대상으로 파견법 위반 혐의 고소장을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이들은 “현대제철이 파견법을 위반해 하도급 비정규직을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네이버 산하 6개 자회사 노조도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네이버가 자회사의 경영 방향과 임금·복지 수준을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며 네이버 본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정부는 6개월의 유예기간에 노사 의견을 수렴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의 연착륙을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가이드라인의 법적 구속력이 약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