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업은 미션을 실현하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경영전략을 수립해 추진한다. 경영전략은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해 자원과 역량을 구축하고, 고유의 경영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기업은 끊임없이 시장을 탐색하고, 고객 가치를 향상하며,프로세스를 효율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공지능(AI)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의 움직임은 기업에 외부의 파괴적 위협인 동시에 경영 혁신을 통해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할 기회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인터넷, 2010년대 모바일이 사회·경제적 변혁을 가져왔을 때, 많은 기업의 운명이 갈리는 장면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그렇다면 AI 시대 기업이 전략적 차원에서 고려할 점은 무엇일까.
AI 기회 통해 사업 모델 재점검하라
글로벌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전 세계 약 1800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2024년 하반기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5%는 AI를 2025년 3대 우선 사항으로 골랐다. 이처럼 AI에 대한 기대가 높은 건 AI가 성과를 입증하고 있어서다.
AI를 기업 성과에 직결할 수 있느냐 측면에서, 구글·텐센트·에어비앤비·네이버 등과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digital native enterprise·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탄생·성장한 기업)은 유리하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데이터 기업’이기 때문에 자사 온라인 영역에 쌓인 방대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고객을 유치하고, 붙들어둬 소비하게 한다. 데이터와 AI로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구축할 여건을 갖춘 것이다. 전통적 기업에 이는 불리한 게임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망하기는 이르다.
가구를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는 이케아(IKEA)는 고객이 대형 오프라인 매장에 오래 머물며 더 많은 제품을 사게 하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업체 아마존이 2017년에 가구 시장에 진출하고, 웨이페어(WayFair) 같은 온라인 직판 업체가 급부상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이케아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부터 디지털 전환에 나섰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전 세계 400개 이상의 이케아 매장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서 이케아는 13개 지역으로 나눠 관리하던 웹사이트를 하나의 클라우드로 모아 데이터를 통합하고, 온라인 쇼핑 경험을높이는 데 집중했다. 이에 따라 고객은 온라인 이케아에서 AI 추천으로 상품을 주문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비대면 수령이 가능해졌다. 이케아의 2020 회계연도(2019년 9월 1일~2020년 8월 31일) 당시 오프라인 매장 사용자는 직전 회계연도(2018년 9월 1일~2019년 8월 31일) 대비 줄었으나, 온라인 사용자는 이 기간 10억 명이 증가해 36억 명에 달했다.
농기계 브랜드 존 디어(John Deere)도 흥미로운 변신을 했다. 1960년대부터 세계 1위를 유지한 존 디어는 2014년 농기계 수요가 급감하자,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 여정에 나섰다. 데이터와 AI를 이용, ‘농사를 더 잘 짓게 돕는 솔루션’ 판매 회사로 정체성을 바꾼 것이다. 농기계에 부착된 센서가 수집한 운행 당시 주행 데이터와 기후·토양 정보 등을 AI로 종합 분석해 농기계를 어떻게 운용해야 수확량이 높아지는지, 언제 어디에 작물을 심으면 좋은지 등을 고객에게 제공했다. 이어 2022년 존 디어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에서 최초의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였다. 이 트랙터는 약 1800만 개의 이미지 데이터를 학습해 개발됐다.
독일 엔지니어링 기업 지멘스(Siemens)는 더 전략적인 접근을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읽은 지멘스는 기술 도입 이전에 사업 구조 자체의 미래 변화에 집중했다. 기존 9개 사업을 분석해 디지털화 잠재력이 크고 내부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제조·헬스케어· 에너지 세 개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단행했다. 분야별로 ‘디지털 트윈, 개인 맞춤 예방 의료, 지능형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라는 디지털 지향점을 설정한 뒤, 130억유로(약 21조원)를 투입해 AI·디지털 기술 회사를 인수해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였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는 점은 AI를 단순 효율성 개선 도구가 아닌 사업 모델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여전히 많은 기업이 AI를 소규모 생산성 향상 프로젝트에만 적용하고 있고, 또 너무 많은 실험을 동시에 진행해 노력과 역량을 분산시키고 있다. 기술 검증 과정은 필요하나, 무엇보다 전략적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기업 유전자(DNA) 차원에서 AI 역할을 정의하는 것이 급선무다.
AI의 네트워크 효과 극대화하라
인터넷과 모바일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연결성 혁신’이었다. 인터넷은 거리 제약을, 모바일은 장소 제약을 없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원하는 제품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다른 사람의 구매 후기와 최저가 제공 업체를 확인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사이트에 들어가 주문한다.
모바일 시대 초기에 빠른 대응으로 시장 호응을 얻은 기업은 더 많은 사용자와 파트너사를 확보해 트래픽을 늘렸다. 증가한 트래픽은 외부 자금 유치와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추가 투자 여력을 만들었다. 투자를 통해 고객 경험이 향상하자, 트래픽은 더 늘었다. 증가한 고객 기반은 다른 사업으로 영역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이 같은 선순환이 네트워크 효과다.
생성 AI(Generative AI)가 만들어내는 신(新)경제 생태계도 모바일 앱 경제와 비슷한 패턴이다.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 출시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다양한 생성 AI 서비스가 쏟아졌다. 2024년 초 오픈AI는 AI 서비스 거래 플랫폼 ‘GPT 스토어’를 오픈했고, 오픈 반년도 안 된 2024년 4월 기준, 15만9000개의 AI 서비스가 등록됐다. 모바일 앱 경제가 그랬듯 생성 AI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혁신 아이디어와 편의성을 갖춘 AI 서비스를 선보이는 업체가 네트워크 효과의 혜택을 얻을 것이다.
기존 디지털 플랫폼은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은 모든 서비스 영역에 AI를 결합해 고객 경험을 향상하고 있다. 디지털·데이터·AI 상호 간 플라이휠(flywheel)을 고려할 때 네트워크 효과는 가속되고, 그들의 생태계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네트워크 효과가 디지털 기업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통적 건설 회사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2023년 주거용 플랫폼 홈닉(Homeniq) 앱을 출시했다. 입주민은 앱에서 관리비 납부, 주차 관리, 수리 신청,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하고 커뮤니티 활동으로 정보를 나눈다. 물리적 세상과 가상 세계를 연결해 입주민의 거주 경험을 높이는 동시에 활동 데이터를 축적해 주거 서비스 개선과 향후 건축 설계·시공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 모바일에 이어 AI 시대에도 네트워크 효과의 중요성은 크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속 진화하는 AI 특성을 고려할 때 네트워크에 성공적으로 올라탄 기업과 그러지 못한 기업은 그 격차를 좁히기 어려울 것이다. 디지털 기반이 없는 기업은 업(業)의 본질 차원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기회 요소를 찾아 이를 전략적 옵션에 올려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