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미국이 부과한 ‘50% 관세 폭탄’ 압박 속에서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모디는 8월 31일(이하 현지시각) 시작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톈진을 방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손을 맞잡고 친밀한 모습을 과시했다. 2020년 히말라야 라다크 국경에서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숨지는 유혈 충돌 이후 양국 관계는 경색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이 두 나라를 협력 관계로 변모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과 코끼리 함께 춤추자”
미국은 8월 27일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기존 상호 관세 25%에 더해 총 50% 세율을 부과했다. 인도가 러시아산(産) 원유를 수입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돕는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관세 책사’로 불리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은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거의 구입하지 않았다”면서 “푸틴은 모디에게 원유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고, 인도는 그 원유를 정제해 유럽·아프리카·아시아에 높은 가격으로 팔아 큰 이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모디의 전쟁’으로, 인도를 ‘크렘린의 자금 세탁소’로 표현했다. 50% 관세는 미국이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부과한 세율 중 가장 높다. 모디는 미국의 50% 관세 부과를 앞두고 “큰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나는 준비가 돼 있다”고 공언했다. 또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앞두고 무역협정을 위해 모디에게 네 차례 전화했으나, 화가 난 모디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이 보도했다. SCO는 2001년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출범한 다자 안보 협의체로, 중앙아시아 4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 벨라루스 등 10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시진핑은 모디를 만나 “선린 우호의 친구이자 파트너가 돼 용상공무(龍象共舞·용과 코끼리의 춤)를 실현하는 것이 양국의 올바른 선택”이라며 양국 간 불편한 관계 해소를 희망했고, 모디는 “인도와 중국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 라고 화답했다. 모디는 푸틴과 양자 회담을 한 뒤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푸틴과 함께 차를 타고 회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시하고, “그와의 대화는 항상 통찰력이 있다”고 적었다. 트럼프 관세 압박 이후 보란 듯이 중국·러시아와 유대를 과시한 것이다.
곧이어 SCO 10개국 정상은 9월 1일 미국의 관세 압박을 겨냥한 ‘톈진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회원국은 직접적으로 ‘미국’ 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규칙과 원칙을 위반하는 경제적 조치를 포함한 일방적이고 강압적 조치에 반대한다”며 트럼프를 겨냥했다. 또 “지난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에 가한 군사적 침략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中 열병식은 불참하고 일본 방문
그렇다고 모디가 서방과 완전히 등을 진 것은 아니다. 모디는 9월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80주년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불참했다. 이번 열병식에는 시진핑, 푸틴, 김정은을 비롯해 미국과 적대 관계인 이란의 마수드 페제쉬키안 대통령, 러시아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서방 국가는 대부분 불참한 가운데, 모디 역시 열병식 전 먼저 중국을 떠나 이번 행사에 불참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인도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고, 인도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ET)는 ‘줄타기 외교’라고 평가했다. ET는 “모디는 일본이 매우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행동(열병식 참석)을 피하고자 했다”면서 “열병식 전에 귀국하기로 한 모디의 신중한 결정은 그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맞추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실제로 모디는 중국을 방문하기 앞선 8월 29~30일 양일간 일본을 방문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모디는 “인도와 일본은 단순히 긴밀한 파트너가 아니며 전략적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구성된 안보 협력체) 회원국으로서 일본과 파트너십을 중시하고 긴밀한 협력을 기대할 것”이라고 했다. 인도가 중국 쪽으로 확연하게 기운 것은 아닌 셈이다. ET는 “일본의 투자, 기술이전, 공급망 다각화에 의존하는 인도가 일본과 파트너십을 훼손하면 자멸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면서 “달라이 라마 논란, 파키스탄의 중국 전투기 사용, 국경분쟁 등을 보면 중국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일본은 무역·인프라·국방 분야에서 인도의 꾸준한 파트너였다”고 했다.
트럼프 “인도, 무관세 제안했지만 너무 늦어”
트럼프는 9월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인도가 이제서야 관세를 무관세로 낮추겠다고 제안했지만, 너무 늦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인도 양국 간 진행될 향후 무역 협상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인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너무 높은 관세를 부과해 우리 기업이 인도에 팔 수가 없었다. 완전히 일방적인 재앙이었다”면서 “인도는 원유와 군사 제품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사고, 아주 조금만 미국에서 산다”고 했다.
트럼프 관세로 인도와 중국 관계가 가까워진 데 대해 유력 언론들은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스위크는 “트럼프 관세로 인해 인도가 미국 적대국이 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면서 “미국과 인도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은 여러 면에서 중국에 선물과도 같다”고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중국은 인도보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훨씬 더 많이 수입하지만, 베이징에는 추가 관세나 제재가 부과되지 않았다”면서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한 국가 중 인도만을 관세 부과 대상으로 결정한 것은 혼란스럽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도는 세계 3대 경제 대국 중 하나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으며, 곧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국이 돕지 않거나 방해한다면, 인도는 거대 이웃 국가인 중국에 맞서는 강력한 제조 경쟁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고수하면서도 베이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백악관은 인도가 고개를 숙이길 바랐지만, 모디는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과 악수하고 워싱턴을 외면했다”면서 “모디, 시진핑, 푸틴이 서로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워싱턴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