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고추장 콘 쿠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올해의 레시피’로  선정됐다. /사진 트레이더 조
꿀 고추장 콘 쿠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올해의 레시피’로 선정됐다. /사진 트레이더 조

미국 대형 유통 매장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가 ’올해의 레시피’로 ‘꿀 고추장 콘 쿠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선정했다. 서구권에서 고추장을 디저트·베이커리 재료로 활용한 음식이 선정된 건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트레이더 조 올해의 레시피는 이 회사 직원이 매장 판매 재료 등을 이용(5가지 이하)해 만들어낸 레시피 중 최고를 선정하는 행사로, 매년 1회 열린다. 

이번에 선정된 레시피는 옥수수가 들어간 밀가루 반죽 겉면에 고추장을 발라 쿠키를 만들고, 그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워 먹는 요리다. 해당 레시피는 트레이더 조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SNS) 등에 게재돼 있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는 미국 전역에 약 560개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식료품 유통 업체”라며 “고추장 쿠키 레시피대로 만들고자 K-소스를 샀다는 댓글 등 현지 반응이 뜨거울 정도”라고 했다. 

1 2,3 트레이더스 조 홈페이지에 소개된 고추장 활용 레시피. /사진 트레이더 조
1 2,3 트레이더스 조 홈페이지에 소개된 고추장 활용 레시피. /사진 트레이더 조

할리우드 스타도 찾는 K-소스

귀네스 팰트로 같은 유명 할리우드 배우도 고추장을 활용한 요리를 종종 선보인다. 지난 7월 팰트로는 본인 SNS에 한식 스타일의 요리를 직접 만드는 짧은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 요리는 김치와 고추장을 활용한 것이었고, 팰트로는 소고기를 양념장에 재워 굽는 등 전형적인 한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한식 조리 과정을 담은 영상은 약 4주 만에 436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식품 업계는 이들 사례를 ‘K-소스 세계화’ 신호로 해석한다. 한류 영향으로 K-푸드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자연스럽게 K-소스 산업도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에서 고추장을 요리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3년 고추장 수출액은 6192만달러(약 858억원)로 전년 대비 17.8% 늘었다. 아울러 2024년 고추장을 포함한 K-소스류 수출액은 3억9976만달러(약 5540억원)로 나타났다. 2016년 1억8961만달러(약 2627억원) 수준이었던 소스류 수출 규모가 8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2025년 상반기는 2억1189만달러(약 2936억원)를 기록, 올해 4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현지 동포를 대상으로 한 수출이었고, 그만큼 작은 시장이었다. 이젠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불닭 소스·순창 고추장, 수출 이끈다

식품 업계는 K-소스 수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 소스’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1조3359억원으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이 중 불닭 브랜드 수출이 1조1500억원으로 매출의 77.3%에 달한다.

샘표식품은 고추장 기반 소스류를 중심으로 미국·유럽 등 50여 개국 수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샘표의 소스류 수출액 중 미국 비중은 23%로, 유기농 고추장과 ‘연두’ 브랜드 제품이 현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2024년 해외 매출이 63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대상은 ‘청정원 순창 고추장’으로 미국·중국·동남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대상홀딩스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장류 부문 매출은 1700억원 수준이었다. 이 중 고추장을 포함한 K-소스 매출이 30% 이상이다.

더본코리아는 수출용 소스 패키지에 한식 조리법을 담은 QR코드를 담아 현지 시장을 공략 중이다. 소스별 응용 메뉴와 조리법을 평균 1분 내외 짧은 영상(숏폼) 형태로 제공한다. 이 밖에 오리온, CJ제일제당 등은 자체 가공식품에 고추장을 접목한 현지 맞춤형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K-소스를 활용한 수출 제품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K-푸드를 다루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흐름이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분석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8월 25일 tvN 토일 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전 세계 41개국에서 시청 1위를 차지했다. 1회 드라마 소제목이 ‘고추장 버터 비빔밥’이었는데, 이 레시피는 X(옛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업계는 이런 현상이 내수 부진에 갇힌 국내 식품 기업에 성장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한식 연구가 요리 교실의 매출 구조를 보면, 요리 수업보다도 만능 소스로 대표되는 소스의 주기적인 판매가 안정적인 수익을 낸다”라며 “국내 식품 기업의 매출 구조도 비슷하게 바뀔 만한 환경이 마련된 것”이라고 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K-소스를 활용한 레시피를 현지 소비자가 스스로 개발하는 건 현지 시장 확장성과 직결된다”며 “K-푸드·소스 등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는 만큼 수출 제품군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Plus Point

K-소스 대표 ‘장’ 다룬 책
美 요리계 오스카 ‘제임스 비어드’ 수상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서울 강남구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강민구 셰프가 한국 전통 발효장을 주제로 쓴 ‘장: 한식의 영혼(Jang: The Soul Korean Cooking)’이 지난 6월 미국 요리계 최고 권위로 꼽히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James Beard Award)’에서 ‘올해의 도서상’을 받았다.  ‘장’은 고추장과 된장, 간장 등 한식의 근간이 되는 장(醬)을 주제로, 약 60개의 레시피와 깊이 있는 해설을 담아냈다. 뉴욕타임스(NYT) 출신 음식 칼럼니스트 나디아 조(Nadia Cho)와 저널리스트 조슈아 데이비드 스타인(Joshua David Stein)이 함께 책을 썼다. 또 미슐랭 3스타 셰프 에릭 리퍼트(Eric Ripert)의 서문을 넣었다. 책은 장의 역사와 철학, 현대적 활용법을 녹여내고 있다. 된장의 깊은 풍미에서 고추장의 매운맛, 간장의 감칠맛까지, 한식의 뿌리를 형성한 장의 다층적 매력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강 셰프는 전통 한식을 기반으로 서구 요리에 장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글로벌 키친’에서 한국 장이 가질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장’은 단순 요리책을 넘어 발효장이라는 전통 식문화 자산을 글로벌 무대에서 브랜드화하는 전략적 의미가 있다. 발효장 산업은 최근 글로벌 푸드 테크와 건강식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분야다. 아시아발(發) 식문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요즘 한국의 전통 장이 차별화된 무기로 부상할 수 있음으로 보여준다. 강 셰프는 미슐랭 2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밍글스’와 ‘마마리 마켓’, 홍콩의 ‘한식구’ 등으로 한식의 지평을 넓혀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이 선정하는 이네딧 담 셰프스 초이스 어워드를 받아, 아시아 요리계에서 ‘셰프의 셰프’로 인정받기도 했다.

연지연 조선비즈 기자

·민영빈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