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8월 29일 방콕 정부청사
에서 헌재의 해임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
다. / 사진 로이터연합
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8월 29일 방콕 정부청사 에서 헌재의 해임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 다. / 사진 로이터연합

태국 정치 명문가인 탁신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가 또 한번 반복됐다. 8월 29일 역대 최연소 총리였던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태국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해임 판결 탓이다. 이로써 탁신 가문이 배출한 네 명의 총리가 모두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군부 쿠데타나 헌재 판결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나는 전례 없는 역사가 만들어졌다. 이는 대중적 지지 기반이 강력한 탁신 가문과 태국 군부 및 왕실을 대변하는 보수 세력 간 깊고 해묵은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다.

한 통의 전화가 불러온 ‘총리 잔혹사’의 재림

패통탄 총리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린 결정적 계기는 지난 6월 캄보디아 실권자인 훈 센 캄보디아 전 총리(현재 상원의장)와 한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다. 당시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자, 패통탄은 자기 아버지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오랜 친구인 훈 센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이 통화는 훈 센에 의해 유출됐고,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패통탄은 위기에 처했다. 문제가 된 통화에서 패통탄은 캄보디아와 화해적인 태도를 보였고, 국경을 관할하는 태국군 사령관을 비판했다. 그는 훈 센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냈지만, 국경 분쟁 문제를 소셜미디어(SNS)에서 다루는 훈 센 방식에 대해 ‘비전문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훈 센의 분노를 샀다. 

결국 훈 센이 패통탄 발언을 ‘전례 없는 모욕’이라고 비판하면서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는 태국 내 민족주의 정서를 들끓게 했다. 태국 보수 성향 상원의원은 패통탄이 총리에게 요구되는 헌법상 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며 헌재에 해임 심판을 청원했고, 8월 29일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해임에 찬성하면서 패통탄은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헌재는 패통탄 해임을 판결하면서 “개인적인 관계로 캄보디아 측 의사에 따르려 했다”라며 “총리직과 태국 국가의 품위를 훼손했다” 라고 강조했다. 

패통탄은 2024년 8월 역대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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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태국 ‘사법 쿠데타’의 역사

패통탄은 헌재 판결로 자리에서 물러난 다섯 번째 태국 총리이자, 탁신 전 총리가 뒷받침했던 정부의 다섯 번째 수장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헌재가 왕실 세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BBC 등 주요 외신이 이번 패통탄 해임을 ‘사법 쿠데타(judi-cial coup)’라고 부르며 태국 정치가 사법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현상을 비판하는 이유다. WP는 “헌재가 또다시 탁신 가문을 겨냥했고, 사법 쿠데타가 반복됐다”고 했다.

탁신 가문 총리 잔혹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총리로 일한 탁신 전 총리부터 시작됐다. 그는 통신 재벌 출신이지만, 고향인 북부와 동북부 농촌, 도시 빈민층을 기반으로 막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2001년 타이락타이당(태국을 사랑하는 당)을 이끌고 총리에 선출된 그는 30밧 의료보험, 쌀값 보조, 농민 부채 경감 등 서민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2005년 재선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지만, 방콕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반(反)탁신, 친(親)군부·왕실 세력의 거센 견제에 부딪혔다. 그는 견제를 뚫기 위해 2006년 조기 총선을 강행했지만, 야당의 선거 보이콧과 헌재의 선거 무효 판결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고, 결국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솜차이 웡사왓 전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매제다. 탁신 전 총리가 해외로 망명한 뒤, 그의 매제인 솜차이 웡사왓이 2008년 총리가 됐다. 그러나 솜차이 역시 3개월 만에 헌재의 여당 해산 판결로 총리직을 잃었다. 탁신 전 총리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2011년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하지만 그 역시 오빠와 같은 길을 걸었다. 2014년 헌재는 솜차이가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선고했고, 그 직후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 정권을 무너뜨렸다. 솜차이의 뒤를 이어 탁신 가문의 네 번째 총리가 된 이는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이다. 2024년 총선에서 탁신 계열의 프아타이당이 연립 여당 내 제1당으로 집권하면서 패통탄은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 역시 아버지와 고모부, 고모가 겪은 사법 리스크를 피하지 못하고 임기 1년 만에 해임됐다.

왕실·군부 중심 보수 엘리트 세력의 견제

탁신 가문 총리들이 잇따라 실각한 배경에는 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군부와 왕실 그리고 보수 엘리트 세력의 견제가 있다. 이들은 탁신 가문의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특히 헌재는 이들의 입김 아래 ‘권력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태국 헌재 재판관 9명은 국왕이 임명하지만 실제 추천권은 상원에 있다. 2017년 군부 주도 개헌으로 상원 250석 전원이 군부 지명인사로 채워지면서 사실상 군부가 헌재를 좌우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헌재가 친왕실·친군부 성향의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헌재는 ‘군주제를 훼손하거나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권력을 취득할 경우’ 정당 해산을 허용하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탁신 계열 정당을 반복적으로 해산시켰다.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똘라칸피왓(사법적 적극주의)’이라고 한다. 이런 사법적 적극주의와 더불어 군부의 정치 개입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태국에서는 1932년 입헌군주제 전환 이후 군사 쿠데타가 12차례 일어났을 정도로 군부는 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가속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2006년과 2014년 군부 쿠데타는 ‘탁신 세력이 국익을 팔아먹었다’는 프레임을 내세워 정당화됐다. 이번 패통탄 사태 역시 캄보디아와 국경 분쟁이 군부의 정치 개입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탁신 가문의 영향력, 이제는 끝인가

탁신 가문 총리들이 잇따라 실각하면서 탁신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끝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패통탄을 중심으로 한 프아타이당이 추진했던 카지노 합법화, 랜드브리지 등 경제 회복을 내세운 주요 공약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캄보디아와 국경 분쟁은 탁신 가문이 사업적 이익을 국가 안보보다 우선시한다는 의심을 더욱 키웠기 때문이다. 패통탄 해임과 함께 프아타이당의 인기는 급락했다. 20년 넘게 태국 정치에서 ‘선거 불패’ 신화를 쌓아왔던 탁신 가문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난국을 해결할 가장 명확한 해법은 새로운 총선이지만 경제회복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프아타이당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당내 유력한 총리 후보가 없는 데다 현재 간신히 7석 차이로 하원 과반을 유지 중인 연정에 참여한 타 정당의 이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패통탄에 대한 헌재 해임 판결이 나온 날, 탁신 전 총리가 왕실 모독죄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재등판에 대한 기대감이 잠시 일기도 했다. 하지만 사면 당시 왕실에 정치 불개입을 약속했고, 그가 70대 중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복귀는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는 이번 사태가 탁신 가문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Plus Point

태국 차기 총리 후보 관심 커져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헌재 해임 판결로 물러나면서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패통탄의 정당인 프아타이당 소속 차이카셈 니티시리, 중도 보수 성향 부뭄짜이타이당 대표인 아누틴 찬위라꾼, 전직 총리인 쁘라윳 짠오차, 현직 부총리 겸 에너지 장관인 피라판 살리랏타위팟, 태국 민주당 소속 주린 락사나위싯 등이 차기 태국 총리 후보로 꼽힌다. 

태국 총리는 상·하원 합동 750표 가운데 과반수인 376표 이상을 얻어야 당선된다. 상원 250석이 군부 지명인사로 채워진 만큼 차기 총리에 오르려면 군부와 타협은 필수다. 

윤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