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슬로건, 로고타이프(브랜드명을 텍스트로 표현한 형태), 심벌마크(특정 단체·기업·도시 등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기호)였다. 그러나 이제 도시 정체성을 말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슬로건은 소리 없이 지나가지만, 굿즈는 소비자 손에 쥐어진다. 도시는 이제 ‘쉽게 경험 가능한 브랜드’가 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 경험은 관광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도시 브랜딩 최전선에서는 일상으로 도시가 들어오는 실험이 활발하다. 매일 마시는커피, 먹는 라면, 들고 다니는 에코백, 입는 티셔츠에 ‘그 도시의 색채’가 배어 있다면, 도시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감각적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의 일상화’다. 정체성의 일상화는 브랜드가 특정 계층을 향한 설득이 아니라, 다수가 공유하는 습관과 기억이 될 때 완성된다. 도시 브랜딩의 궁극은 결국 ‘그 도시를 살아보지 않았어도 그 도시의 삶을 산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체계를 넘어, 우리 삶에 감각적으로 축적된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 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대전, 서울 그리고 부산의 굿즈

대전의 사례는 이를 보여주는 가장 역동적인 실험이다. 한때 ‘노잼(재미없는) 도시’라며 자조의 밈(meme·인터넷 유행 비유전적 문화 요소)이었던 대전이 2024년 이후 ‘웨이팅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반전의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2024년 기준 방문객은 8400만 명을 넘어서며 2년 전 대비 12% 성장했고, 2025년 ‘대전 0시 축제’는 무려 216만 명을 끌어모았다. 빵집 ‘성심당’ 본점, 독립 서점 ‘다다르다’, 대전 중앙시장 앞에는 기다란 대기 줄이 일상의 풍경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변화는 1993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인 ‘꿈돌이’의 부활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 등장한 꿈돌이는 2023년 웹 예능 ‘지구마불 세계여행’ 출연을 계기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 2010년생)의 밈이 됐고, 팬아트·인형·문구· 텀블러 등으로 소비되는 하나의 ‘꿈돌이 세계관’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현상은 대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외 여러 도시가 지역 정체성을 ‘일상 소비재’로 번역하면서 ‘도시 정체성의 일상화’라는 새로운 브랜딩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대전시는 1993 대전 엑스포의 상징 캐릭터인 꿈돌이를 부활시켜, 2024년 ‘꿈돌이라면’ 을 출시했다. 봉지라면으로 시작한 이 실험은 불과 1개월 만에 50만 개 판매라는 성과로 이어졌고, 최근 컵라면 버전까지 선보였다. 꿈돌이라면은 단순한 복고풍 캐릭터 상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엑스포를 기억하는 세대에겐 향수의 감각을, Z 세대(1997~2010년생)에겐 ‘레트로 + 도시 정체성’을 결합한 새로운 상품성을 제공한다. 소비자는 도시의 얼굴을 보고, 도시의 맛을 고르고, 도시의 이미지를 먹는다. ‘먹는 굿즈’는 그 자체로 도시 정체성의 촉각적 재구성인 셈이다.

서울시는 한발 더 나아가, ‘해치’를 앞세운 도시 굿즈 스토어 ‘서울 마이 소울’을 구축했다. 서울의 상징 캐릭터인 해치는 라면, 아몬드, 코스터, 향초, 티셔츠 등 다양한 상품에 적용돼 있다. 특히 풀무원과 협업한 ‘서울라면’은 출시 5개월 만에 100만 개 이상 팔리며 주목받았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이미 국제적인 이미지 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치라는 지역적 상징을 통해 도시를 더욱 감각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브랜드 라면은 더 이상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도시 경험의 입구가 된다.

부산시의 ‘부기’ 굿즈는 지역성 스타일링의 좋은 예시가 된다. 부산시의 대표 캐릭터 부기는 도시 정체성을 입고, 먹고, 쓰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자인 중심의 지역 창작자와 협업해 제작된 부기 굿즈는 티셔츠, 텀블러, 문구류, 스마트폰 케이스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경우 도시 얼굴은 단순한마스코트가 아니라, 도시가 추구하는 감정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부산은 이 굿즈를 통해 ‘활력 있고 스타일리시한 도시’라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도시를 먹는다, 해외의 도시 브랜드 굿즈

1│일본 구마모토 ‘쿠마몬’: 공유하는 IP

‘쿠마몬’은 일본 로컬 브랜딩의 전설이다. 일본 구마모토현이 개발한 이 캐릭터는 지금까지 2만여 개에 달하는 식품·소비재에 적용됐고, 수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만들어냈다. 쿠마몬은 초콜릿, 음료, 컵라면, 젤리, 쌀 포장지, 도시락 등에 등장하며 식품의 얼굴로서 도시 정체성을 대변한다. 더 놀라운 점은 쿠마몬이 민간 기업에 ‘무상 사용’된다는 것이다.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지역 상품에 쿠마몬이 등장함으로써 도시 이미지를 대중 식생활에 이식한다. 이 전략은 ‘캐릭터 IP(지식재산권)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으로, 구마모토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방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

2│일본 삿포로 ‘삿포로 클래식’ 맥주:마시는 지역성

삿포로 맥주는 ‘삿포로 클래식’이라는 홋카이도 한정 맥주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브랜딩했다. 이 맥주는 홋카이도 외 지역에서는 판매되지 않으며, 파란 눈 내리는 도시 일러스트가 맥주캔을 감싼다. 맥주 하나로 ‘지역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맥주는 여행자에겐 기념품이자 한정판이고, 지역민에겐 자부심이 된다. ‘이 맥주는 여기서만 마실 수 있다’는 인식은 삿포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로 작동한다.

3│이탈리아 볼로냐 ‘볼로네제 소스’: 도시가 만든 레시피

이탈리아 북부 도시 볼로냐는 ‘볼로네제 소스’의 고향이다. 시에서는 이 소스를 도시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전통 조리법을 보존하며 ‘라구 알라 볼로네제’라는 명칭 사용에 엄격한 기준을 부여한다. 현지의 수제 파스타 브랜드는 자사의 소스를 ‘볼로냐 스타일’로 브랜딩하며, 소비자는 이 맛을 통해 ‘볼로냐를 먹는다’. 이처럼 도시가 특정 레시피와 연결되는 경우, 음식은 단순한 맛이 아닌 문화적 기억으로 축적된다.

4│캐나다 퀘벡주 ‘메이플 시럽’:병에 담긴 풍경

퀘벡주는 세계 메이플 시럽의 70%를 생산하는 지역이다. 주 정부 산하 생산자 협동조합은 ‘Product of Quebec’ 라벨을 통일된 병 디자인과 함께 사용하며, 병에는 퀘벡의 단풍 숲과 전통 가옥이 인쇄된다. 관광객에게 이 시럽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도시 풍경이 병에 담긴 것이다. 이처럼 식품 포장 하나가 도시 이미지의 일상화된 매체가 될 수 있다.

정체성의 일상화가 가지는 힘

국내외 다양한 사례가 보여주는 공통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시 정체성은 이제 선언하거나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비되는 것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 정체성이 라면·맥주·향초·티셔츠 같은 일상 제품에 담겨 반복적으로 소비될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도시를 기억하게 된다. 이 경험은 도시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감정을 감각적으로 주입하며, 브랜드 인식보다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인 인상을 남긴다. 또한 정체성의 일상화는 도시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에서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구조에서 도시는 하나의 공공 IP 생태계로도 기능한다. 쿠마몬의 무상 오픈처럼, 캐릭터나 도시 이미지가 민간 기업, 지역 디자이너, 크리에이터와 협업 가능한 소재로 풀릴 때 도시 브랜딩은 지속 가능한 콘텐츠 자산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정체성의 일상화가 단지 관광객만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민 역시 매일 입고 쓰고 마시는 소비에서 자기 도시를 다시 경험하게 되며, 도시 정체성을 공유하는 일상의 주체로 자리 잡는다. 즉, ‘도시 브랜드’가 아니라 ‘도시 라이프스타일’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입에 넣고, 손에 들고, 피부에 닿고, 카메라에 담고, 선물로 포장되는 도시.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도시 브랜딩의 모습이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