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출금리가 올라도 젊은 층이 집을 사는 이유는 월세 내기에 지쳐 내 집 마련 욕구가 더 간절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금리 부담보다 내 집 마련 설움이 더 무섭다. 전세의 사금융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초장기 모기지의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미국처럼 집값의 10%만 가지고도 집을 살 수 있는 모기지 상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월세 시대가 다가왔다. 이제는 전국에서 전세살이보다 월세살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동안 월세는 주로 연립주택이나 원룸을 중심으로 거래됐지만, 최근 들어 아파트에도 월세가 본격 도래하고 있다. 임대차 3법, 보유세 증가, 저금리, 전세 대출 규제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주택의 월세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월세가 대세가 되는 시대가 되면 부동산 시장의 판도도많이 바꿔놓을 것이다. 

주택 시장 흔드는 월세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부동산학계에서 월세화는 큰 화두였다. 후진국형 사금융으로 불리는 전세는 언젠가 종말이 올 것으로 봤다. 금융 산업 혁신으로 제도권 모기지(주택 담보대출)가 발달하면 사적 모기지(세입자 모기지)인 전세는 그 운명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세는 오랫동안 핵심 임대차 제도로 자리매김했다. 아마도 2009년 시작된 전세 대출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주거비 부담으로 따지면 전세가 월세보다 훨씬 낮은 임대차 유형이다. 

전세 대출 수요가 늘어나 전세값이 오르면서 갭 투자가 활기를 띠었다. 갭 투자는 자본이득을 위해 전세를 끼고 투자하는 투자 방식이다. 갭 투자는 전세를 공급하는 기능이 있다. 요컨대 전세 대출과 갭 투자가 전세 수명을 연장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제는 무분별한 전세 대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갭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 시기의 문제일 뿐 전세 대출은 지금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세 대출이 줄면 고가 주택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감소하면서 월세로 급속히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전세가 사라지면 깡통 전세나 전세 사기로 전 재산을 잃는 세입자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부정적인 반작용이 뒤따른다. ‘그림자 금융’인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로 바뀌면 그만큼 주거의 고비용 구조가 고착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 샐러리맨은 월급의 30~50%를 월세로 낸다. 집세를 내고 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살림살이가 빠듯해진다. 집 없는 세입자의 월세살이는 한마디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 집 마련의 ‘사적 지렛대’가 사라진다

전세는 ‘내 집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일단 전세를 끼고 사뒀다가 돈을 모아 이사하는 계단식 내 집 마련 방식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상급지 갈아타기 방식도 이런 갭 투자를 활용한다. 하지만 앞으로 본격 월세 시대가 되면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사라진다. 내 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전세살이를 몇 년 하고 목돈을 마련한 뒤 내 집을 장만하는 패턴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전세라는 완충이 사라지면 ‘월세→내 집 장만’으로 곧장 도약해야 한다. 

전세의 사금융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초장기 모기지의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미국처럼 집값의 10%만 가지고도 집을 살 수 있는 모기지 상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신규 분양 물량도 분양가가 높은 탓에 20~30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처음에는 지분을 일부만 보유하다가 장기간에 걸쳐 지분을 늘리는 방식의 분양 제도를 늘려야 한다. 집을 살 수 없는 한계 계층에 대한 주택 바우처(저소득층 주거지원) 지원도 늘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내 집 마련 지원과 주거 복지를 병행하는 주택정책을 펴야 20~30대의 주거난 해소에 도움이 된다. 

노후에 집 한 채는 필수

전세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자.  자가(自家)살이와 월세살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월세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잘 모른다. ‘하루가 짧은지는 실직해 보면 알고, 한 달이 짧은지는 월세를 내보면 안다’라고 했다.  월세 시대의 내 집 한 칸은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매달 월세 지출을 하지 않으려면 내 집이 필요하다. 최근 대출금리가 올라도 젊은 층이 집을 사는 이유는 월세 내기에 지쳐 내 집 마련 욕구가 더 간절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금리 부담보다 내 집 마련 설움이 더 무서운 것이 청년 세대의 현실이다.

젊을 때는 그나마 월세살이가 견딜 만하다. 투자를 왕성하게 할 수 있으니 집을 사지 않고 다른 데 투자해서 벌충하면 된다. 더욱이 매달 소득이 있으니, 월세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는 사정이 다르다. 월세를 받아도 모자랄 지경에 월세를 낸다고 생각해 보라. 나이가 들어선 이삿짐 꾸리기도 힘에 벅차다. 정처 없이 떠도는 노후의 월세살이는 한마디로 끔찍할 것이다. 나이 들어 내 집은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노후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 것이다. 젊었을 때는 무주택으로 있더라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든든한 안식처가 꼭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시니어 대상으로 조사 결과 92%가 선호 주거 형태로 편히 살 수 있는 자가를 원했다. 월세 시대 노후 생활에서 내 집 마련은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 평가 등급이 달라진다

월세 시대가 되면 아파트 평가도 전세 시대와 다를 것이다. 투자금 대비 월세 수령 액수(월세 수익률)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아파트도 미래 예상되는 수익을 기초로 적정 가격을 추산하는 수익환원법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은 주로 다세대나 다가구(원룸)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을 사고팔 때 매겨왔으나 이제는 아파트도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아파트는 수익형 부동산보다는 시세 차익형 부동산에 더 가깝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갭 투자가 하나의 재테크 방식으로 자리 잡았던 것은 바로 전세 제도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갭 투자는 현금 흐름보다 자본이득으로 보상받는 구조다.

하지만 월세 시대가 되면 현금 흐름 중심으로 가격을 따진다. 전세형 주택이 주식형 주택이라면, 월세형 주택은 채권형 주택이다. 채권 이자처럼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받는 것이다. 이제는 전세보다 월세가 잘 나오는 아파트를 눈여겨보는 게 좋을 것이다. 

포털이나 부동산 모바일 앱에서 월세 거래량과 금액을 비교 대상 단지와 대조해 보라. 같은 금액의 아파트라도 월세 수익이 더 높은 곳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월세 수요자가 선호하는 더블 역세권이나 업무 지구에있는 ‘대단지+새 아파트‘라면 금상첨화다. 월세를 잘 받는 아파트는 교통, 편의 시설 등에서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향후 월세가 잘 나오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 간의 매매가격 차이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를 새로 사거나 갈아타기할 때 처음에는 거주하더라도 나중에 월세로 돌릴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고르는 게 좋은 시대가 온다. 이른바 ‘월세 전환형 아파트’다. 반복하건대 앞으로는 월세 수익률이 집 고르기의 판단 기준이 된다. 세입자에게 아파트 월세화는 슬픈 일이지만, 노후를 준비하는 은퇴자에게 아파트는 월세가 나오는 또 다른 금융 상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