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앙은행의 오랜 역사에서 파월이 영웅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절제된 연설을 펼치며, 경제 분석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과 통화정책을 설계하는 데 있어 합리적인 판단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트럼프의 전례 없는 정치적 압박에도 이를 해냈는데, 그 압박은 이후 ① 리사 쿡 연준 이사 해임 시도로까지 번져갔다.
연준의 오랜 독립성을 강력히 수호한 인물로서, 파월은 폴 볼커 전 연준 의장과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과 함께 미국 중앙은행사의 판테온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 볼커는 정치적 용기를 통해 그 자리를 얻었다. 그는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를 대폭 긴축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그 조치가 미국 경제를 심각한 침체로 몰아넣을 것임을 알면서도 단행했다. 내가 조지프 트리스터가 2004년에 펴낸 볼커 전기에 대한 추천사에서 썼듯, 1970년대 ‘대(大)인플레이션’에 맞서 싸운 중앙은행가로서 볼커의 용기는 미국 경제 회복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그린스펀은 볼커 이후 시기에 디스인플레이션(물가 하락)을 지속하는 데 따르는 도전 과제를 폭넓게 바라보며, 통화정책에 위험 관리 접근법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연준은 자산 버블과 생산성까지 정책 결정에 반영할 수 있었다. 모건스탠리에 있을 때 나는 그의 유명한 ② 1996년 12월의 ‘비이성적 과열 (irrational exuberance) 연설’에서 용기 있게 제기했던 문제의식을 끝까지 지키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그러나 거품이 극심하던 시기에 시장에 맞설 용기를 낸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파월은 볼커와 그린스펀의 강철 같은 의지와 비정파적 집중력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볼커는 고금리에 대한 대중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는데, 당시 내가 근무하던 연준 본부 건물을 농민들이 트랙터로 봉쇄했고, 상· 하원 의원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그린스펀의 비이성적 과열 발언 역시 월가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마찬가지로, 8월 22일 잭슨홀 단상에 오른 단호한 파월을 짓누른 정치적 압박은 결코 은밀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금융시장은 “앞으로 경제 전망이나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위험 요인의 균형이 달라질 경우 정책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파월의 메시지에 즉각 환호했다. 하지만 이미 선물 시장은 금리가 큰 폭으로 빠르게 내릴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었다. 시장은 당시 파월의 발언이 향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몇 차례 회의에 미칠 함의가 아니라, 미국 통화정책의 향후 운용을 안내하기 위해 파월이 제시한 엄격한 분석 틀에 더 크게 반응했다.

하나는 ‘법적 책무 이행’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연준이 활용하는 과정에서 고려되는 요소다.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이중 책무는 중앙은행에 언제나 어려운 균형 과제를 던져왔다. 파월은 관세와 (수요뿐 아니라 공급에도 영향을 주는) 이민정책부터 최근 고용과 국내총생산(GDP) 성장세 둔화에 이르기까지, 두 목표를 동시에 압박하는 요인을 차례로 설명했다. 그는 낮은 실업률을 위안 삼았지만, 노동시장에서 ‘이상한 균형(curious kind of balance)’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위태롭다(precarious)’는 연준 특유의 표현으로, 일자리가 갑자기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와도 같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연준이 정책 기조를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본다. 정책 설계 방식을 둘러싼 파월의 논의는 다소 학문적이었고, 단기 금리 결정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노동시장에 비해 떨어졌다. 그러나 바로 이 영역에서 독립적인 연준은 가장 큰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통념과 달리 중앙은행은 스스로 임무를 정하지 않는다. 이는 의회로부터 직접 부여된 권한이다. 처음에는 ③ 1946년 ‘고용법(Em-ployment Act)’에서 비롯됐고, 이후 1978년 ‘험프리-호킨스법(Humphrey-Hawkins Act)’을 통해 물가 안정 목표를 추가했다. 연준은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를 해석할 권한이 있지만, 법적으로 부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 틀을 설정할지는 가장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파월은 연준의 정책 방향과 최근 입장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특별히 놀라운 내용은 없었다. 2020년 연준의 이전 정책 방향 검토에서 실질금리(인플레이션 조정 금리)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평가됐다. 하나는 하방 기준인 실효 하한(ELB· Effective Lower Bound)이고, 다른 하나는 상방 기준인 ‘중립 금리’로, 이는 경제성장이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지도 자극하지도 않는 금리를 뜻했다.
이번 검토에서는 ELB를 주요 고려 요소에서 제외했으며, 과거 인플레이션 하락 폭이 예상보다 컸을 경우 일정 기간 초과 인플레이션을 허용해 보상하던 평균 물가 목표제를 폐기했다. 업데이트된 틀은 최대 고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부족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정을 도입했으며, 2% 물가 목표가 ‘이중 책무에 가장 부합하는 수준’임을 재확인했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이 보여준 절제된 태도는 볼커를 떠올리게 하는 비범한 정치적 용기의 발로였다. 정치적 간섭이 극심한 오늘날에도 그는 임무에 충실했고, 이는 쿡 연준 이사와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위대한 미국 공직자가 보여준 진정으로 용맹한 행위를 목격했다. 판테온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 제롬 파월.
Tip
① 트럼프는 8월 25일 ‘주택 담보대출 사기 의혹’을 이유로 임기가 13년이나 남은 쿡 연준 이사에게 해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한 건 112년 연준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쿡 연준 이사는 트럼프의 결정이 연방법을 위반했다며 즉각 법원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연방 대법원에서 심리하게 될 예정이다.
② 1996년 12월 5일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미국기업연구소 연설에서 주식시장의 거품을 경고하며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발언이었고, 이에 전 세계 증시가 크게 흔들렸다. 이후, 이 표현은 금융시장의 거품을 설명하는 대표적 용어로 굳어졌다.
③ 1946년 제정된 미국 고용법은 정부가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한 법으로 평가된다. 이어 1978년 험프리-호킨스법이 물가 안정 목표를 더하면서, 연준의 ‘이중 책무(고용과 물가 안정)’가 법적으로 확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