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후안옌
사진 후안옌

19개 직업을 거쳐온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내던져진’ 20세 중국 청년. 부지런히 일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던 부모의 가르침과 달리,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학벌도, 재력도, 사회생활 요령도 없이 오로지 성실 하나만 무기로 갖고 세상에 나온 심약하고, 섬세한 젊은이 앞에 ‘제조업과 물류’를 중심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동시대 중국의 험난한 노동 현실이 펼쳐진다. 초대형 글로벌 베스트셀러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에는 제조업과 정보기술(IT), 물류의 중심지로 급성장한 중국의 맨얼굴이 극사실주의적인 노동의 필체로 그려진다. 저자 후안옌(胡安焉)은 광둥성, 윈난성, 베이징, 상하이 등 여러 지방과 대도시로 이동하며, 택배 회사, 물류 센터, 주유소, 편의점, 쇼핑몰, 자전거 가게, 옷 가게 등의 일터를 전전한다.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다 실패한 그는,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실업 기간에 인터넷에 올린 노동 일기가 100만회 이상 조회되며 돌풍을 일으켰고, 벼락같은 첫 책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유수의 중국 문학상을 휩쓸고 전 세계 16개국에 판권 수출됐으며, 영화와 드라마 제작까지 앞두고 있다. 후안옌을 인터뷰했다.

당신의 책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 비교되기도 하고,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도 비교된다. 일에 관한 당신의 글은 무엇에 가까운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나도 읽어봤다. 위화는 살아있는 중국 작가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니. 그런데 중국 독자는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를 ‘허삼관 매혈기’와 비교하지 않는다. 두 작품은 크게 다르다. 위화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 를 쓸 때 명확하게 루쉰(‘아Q정전’의 작가)을 목표와 기준으로 정했다. 사회 하층민의 시각으로 민족성과 사회성, 인성 등을 상징하고 비유했다. 나는 그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득실과 감정에 관심이 있다. 무엇보다 위화의 작품은 소설이지만, 난 실제 경험이다.”

호텔 종업원부터 시작해서 물류 센터, 택배기사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많은 일을 거쳤는지 궁금했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1990년대부터 대규모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직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20년 동안 20~30번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하루이틀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바로 일할 수 있다. 급여도 높지 않고, 승진 기회도 거의 없으며, 해당 업종에서 축적한 고객이나 인맥 등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나 업종이 지루해지면 다른 업종으로 바꿔 다시 시작해도 매몰 비용 같은 게 없다. 내 상황은 상대적으로 특수했다. 육체노동만 한 게 아니고,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 졸업장을 취득했고, 2004년부터 3년간 미술 편집과 만화 제작 일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모두 급여가 낮았고, 육체노동만도 못했다. 회사는 이직하고 얼마 뒤 모두 문을 닫았다. 2007년에는 친구와 여성복 장사를 했지만, 받은 상처가 수익보다 훨씬 컸다. 이후 인생관이 바뀌었다. 다만 경력이 얕았기에 선택지가 좁았다. 쇼핑몰 경비원, 편의점 직원, 택배 기사 같은 일밖에 구할 수 없었다. 어느 자리에서도 포기하기 아까울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
(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 (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중국의 청년 취업도 매우 심각하다. 명문대를 나와도 우체국 하급 관리로도 채용되기 어려워 노는 청년이 많다 던데.

“취업난 문제는 실제로 있다. 하지만 중국의 실업 문제는 일자리 자체를 찾을 수 없는 게 아닌, 청년의 기대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에 가깝다. 대학 졸업생에게 공장에서 나사를 조이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부모도 투자한 교육비를 어떻게 회수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낼 것이다. 고등교육 보급 수준이 사회의 산업 업그레이드 속도를 뛰어넘어, 사회가 고학력 청년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중국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 취업난 문제도 매우 복잡하다. 집안 상황에 따라 직업과 일을 대하는 젊은이의 태도도 크게 다르다. 이런 문제는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다.”

중국 청년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중국의 젊은 세대는 ‘네이쥐안(內卷·과잉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예 ‘탕핑(躺平·탈경쟁)’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네이쥐안이나 탕핑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없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한 신조어다.”

2013년 상하이 자전거 상점에서 일할 때 모습./ 사진 후안옌
2013년 상하이 자전거 상점에서 일할 때 모습./ 사진 후안옌

택배 기사는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밧줄이다.택배를 둘러싼 부조리한 경쟁, 임시직과 정규직, 삼륜차, 게으른 자와 성실한 자, 이상한 고객, 비인간적인 관리자 등 그런 곳에서 누가 가장 의지가 됐나.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지점 근무자는 약 50~60명이었는데, 10여 개 팀으로 나뉘었다. 팀원 간 협력도 있었지만, 경쟁도 있었다. 어떤 곳은 조건이 좋아 팀원 모두가 원했고, 어떤 단지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이익부터 생각하지, 동료를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없다. 입사 초기 임시 배정된 팀의 한 동료는 내게 우호적이었다. 그는 소위 ‘탕핑족(族)’으로 기본 업무량만 채우려 할 뿐, 더 많이 일하려 하지 않아 본인의 일을 나에게 나눠 줬다. 아쉽게도 그와는 2주 정도만 함께 일하고 다른 팀으로 배정돼 헤어졌다.”

“나는 가축이 아니라 깨어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채찍 아래 일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고객이 자발적으로 별점을 주어야 진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입으로 감사할 뿐, 휴대전화를 꺼내 앱을 켜고 주문 내역을 찾아서 좋은 평가를 남기지 않는다. 그런 일은 번거롭고 시간 낭비니. 하지만 회사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일을 평가했다. 나는 순위가 뒤처져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웠고, 가슴을 졸이다 결국 택배 회사를 떠나게 됐다.”

어떤 일에 화가 났고, 어떤 일에 마음이 진정됐나.

“배달할 때 우리는 주문 목록을 수시로 새로 고침하고, 고객에게 전화하고, 업무 채팅방 메시지에 답하고, 머릿속으로 배송 순서와 노선을 짜야 한다. 삼륜차로 도로를 달릴 때는 교통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니 긴장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을 하면 쉽게 화가 난다. 언제나 시간을 다투고,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 작은 일에도 툭하면 화가 난다. 화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어, 당시 나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고객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고객에게 화를 냈다가는 불만이 접수되니 말이다. 매일 배송을 마친 뒤 삼륜차를 타고 지점으로 돌아갈 때가 마음이 제일 평온했다.”

상하이의 자전거 상점 사장은 매우 복합적이더라. 이해득실을 따져 필사적으로 일했으나 동료와 업계는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던 사장. 그러나 그는 당신에게 늘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고.

“그렇다. 자전거 상점 사장은 열정적이고, 의욕적이며,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전쟁터로 여기며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유형이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에게 존경과 호감을 품고 있었다. 세태에 물든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아주 순수하기까지 했다.”

중국 택배 분류 현장. /사진 로이터연합
중국 택배 분류 현장. /사진 로이터연합

일하는 태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나.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일을 대해야 하는지 따로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어려서부터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많은 부분이 어머니에게서 왔다.”

존경할 만한 파트너나 상사는 있었나.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귀해질 수 있고,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나.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상하이 자전거 상점 사장을 상사로 존경했다. 그의 끈기와 집념, 열정,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탄복했다. 하지만 그와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사람이 일터에서 얼마나 고귀하고 천박해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피하려 한다. 고귀한 품행이 칭찬과 보상을 받고, 비열한 품행이 비난과 처벌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고귀한 품행을 추구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무척 복잡하고 완벽해질 수 없다.”

물류와 택배 일은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품위를 가르쳤나.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는 실수와 질책이 무서웠다. 물류와 택배 일은 내가 실수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게 해줬다. 일의 강도도 세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도 다양해 실수는 불가피했다. 사실 실수란 누구나 저지르고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만 실수하지 않는 법이다. 물류와 택배 일은 정말 다양한 영향을 미쳤고, 결정적으로 그 일 덕분에 나는 스트레스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워라밸 추구 혹은 워커홀릭으로 사는 사람에게 당신이 깨달은 일과 자유에 대한 느낌을 나눠달라.

“10여 년 동안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주당 70~80시간 이상씩 일했다. 수면, 세수, 통근 시간 등을 빼고 나면 나만의 여가 시간은 불쌍할 정도로 적었다. 일터에서 상사의 지시, 회사의 방침, 고객의 취향, 시장의 흐름 등 여러 요소가 나를 흔들었다. 내가 경험했던 일은 나를 감정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만들려 했다. 일은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오랫동안 주체성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이 난제를 푸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걸 인식하고 중시한 것만으로 모종의 가능성을 품게 됐다. 일은 어떤 단계에서 내 삶을 가득 채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 일생을 전부 차지하지는 않았다. 어느 시점부터는 일을 통해 먹고살지만, 그 일을 통해 진정한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려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도구가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는 상태. ‘자유’란 내가 일과 삶 속에서 주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책 에필로그에 언급된 ‘위대한 실의’에 대한 해석을 하자면.

“‘위대한 실의’는 버지니아 울프가 300년 전 영국 부인 래티샤 필킹턴의 일생에 대해 내린 평가다. 회고록에서 직접 밝힌 래티샤의 인생 목표는 ‘온순하고 무해한 가정의 비둘기’가 되는 것이었다. 래티샤는 귀족 가문의 아가씨에서 하인의 이웃으로 전락했고, 마지막에는 방세를 내지 못해 감옥에 갇혔다. 어떤 사람은 래티샤의 역경과 불행을 신중하지 못한 그녀 탓으로 돌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보다 출신이 낮은 사람 눈에는 ‘좋은 패를 망쳐버린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신중해서 평탄하게 산 사람보다 래티샤는 훨씬 진실하고 감동적으로 살았다. 그녀의 거침없는 사랑과 증오, 솔직함과 천진함, 열정과 용기, 심지어 쩨쩨한 복수심에까지 나는 깊이 감동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나는 래티샤와 정반대다. 나는 나약하고 억눌려 있고 고독하며 자존감이 형편없다. 래티샤는 내가 되고는 싶지만, 결코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래티샤는 이미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도 여전히 유머를 잃지 않았다. ‘마음이 죽고, 머리맡에 빚 독촉장이 있는데도 오리고기를 즐길 수 있었다’라는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전율을 느꼈다. 그 문장이 나에게 인생을 마주할 힘을 줬다.”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Minds Conn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