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문은 기대와 설렘을 일으켰고, 결국엔 현실이 됐다. 바로 오랜 기간 제작 루머가 돌았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촬영이 뉴욕 거리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장면이 목격되며, 그간 정체기를 보내고 있는 듯한 패션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뉴욕 거리 촬영 신에선 앤 해서웨이와 에밀리 블런트뿐 아니라 메릴 스트리프까지 목격되고 있다.
전 세계 패션 미디어를 비롯해 수많은 소셜미디어(SNS)에서 이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촬영 패션이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또 하나의 주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배우의 패션이 중요한 영화인데, 이렇게 제작 초반에 스포일되어도 괜찮은 걸까?
흥미롭게도 영화 촬영장 파파라치 사진은 의도적인 스포일러였다. 공식 예고편이 나오기 전부터 배우의 의상 스포일러를 통해 전 세계 패션 미디어와 SNS에 바이럴 폭풍을 일으키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본편이 패션계를 점령했던 2006년만 해도 인쇄된 종이 패션 매거진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패션 미디어의 생태계는 SNS와 영상 위주의 디지털 시대로 전환됐다. 새로운 패션 미디어의 시대에 맞게 영화 홍보 마케팅도 진화한 셈이다. 그리고 그 과감한 도전은 매우 스마트한 선택이었다.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스포일된 영화 속 패션은 SNS 세계에서 바이럴 폭풍을 일으켰고, 사전에 노출된 패션 브랜드는 수천만달러의 미디어 영향력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앤 해서웨이가 입은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의상은 브랜드 자체 파리 패션쇼보다 60%나 높은 미디어 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뜨거운 화제 속에서 앤 해서웨이는 미국 ‘보그’ 8월호 커버 모델로 등장했다. 유명 사진작가 애니 리보비츠가 촬영한 커버에서 앤 해서웨이는 고전과 현대의 경계에 놓인 여신처럼 보인다. 우아한 지방시 드레스와 불가리(Bvlgari) 세르펜티 주얼리가 어우러진 화보는 아름다운 배우이자 여성으로 성장한 앤 해서웨이를 재조명하는 초상과도 같다. 인터뷰에서 앤 해서웨이는 “아직도 패션 앞에서는 초심자처럼 설렌다. 매번 새로운 의상을 입을 때마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고 말했다.

앤 해서웨이는 타고난 아이콘이 아닌, 성장형 스타일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개봉되어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연 앤드리아를 연기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녀를 패션 아이콘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신인 배우 정도였다. 그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성공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영화에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앤드리아의 스타일이 눈부시게 성장하듯, 앤 해서웨이도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해 갔다.
사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성공 이후에도 한동안 그녀의 스타일은 파스텔 톤과 로맨틱 실루엣, 부드러운 소재를 즐겨 입는 사랑스러운 이웃집 여성 같은 친근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2019년쯤부터 변화가 시작됐고, 2022년 칸 영화제에서 보여준 다섯 벌의 룩으로 앤 해서웨이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아르마니 프리베(Armani Privè)의 화이트 드레스에 불가리의 하이 주얼리 목걸이를 매치시킨 룩은 베스트 레드카펫 룩으로 패션 미디어의 갈채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 불가리의 디너 파티에서 반짝이는 핫핑크 룩을 착용하며, 바비코어(Barbiecore·바비 인형의 상징인 강렬한 핑크색과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 대담한 핫핑크 룩은 큰 화제를 일으키며 패셔니스타에게 영감을 주었다. 패션계의 주목을 이끌어낸 칸 영화제와 불가리 디너 파티 룩은 단지 일회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멧 갈라(MET Gala)에서도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이어갔다. 카롤리나 헤레라의 가운 드레스를 입고 전설적인 전 ‘보그’ 패션 에디터 앙드레 레온 탤리(André Leon Tall-ey)를 추모한 2025년 멧 갈라 룩은 우아함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아르마니의 실크 드레스에 미니멀한 메이크업을 더해 영화적 순간을 완성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를 입고 전통적인 할리우드 글래머를 재현해, 그녀가 시대를 초월하는 스타일 아이콘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어느새 40대가 된 앤 해서웨이는 친근한 이웃집 여성 이미지에서 아르마니, 보테가 베네타, 베르사체, 발렌티노, 구찌, 불가리 등 럭셔리 브랜드의 뮤즈로 추앙받는 모던 여신으로 등극했다.
앤 해서웨이의 일상 스타일 역시 진화했다. 뉴욕 거리에서 포착된 그녀는 데님에 화이트 셔츠와 블레이저를 매치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고, 공항에서는 오버 사이즈 코트와 슬리퍼 스타일 슈즈를 조합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무드를 완성했다. 최근 파파라치 사진에서는 무심하게 묶은 헤어와 볼드한 선글라스 그리고 미우미우 코트를 걸친 모습으로 조용한 럭셔리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2026년 5월 개봉을 예고하고 있다. 20년 전 평범한 블루 스웨터를 입고 첫 출근을 했던 앤드리아가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서 근무하며 점차 패션에 눈을 떠가는 장면들은 영화의 눈부신 하이라이트였다. 이번 속편에서도 그때와 같은 패션 도파민을 터뜨려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