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화학 이학 석사, 코넬대 화학 이학 박사, 전 서강대 화학과 교수, 전 대한화학회 회장, 전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 /사진 이덕환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서울대 화학 이학 석사, 코넬대 화학 이학 박사, 전 서강대 화학과 교수, 전 대한화학회 회장, 전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 /사진 이덕환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글로벌 과잉공급이 수년간 지속된 탓이다. 중국은 2014년 1950만t이던 에틸렌 생산 설비 규모를 2024년 5274만t으로 키웠다. 10년 새 중국에 증설된 설비만 해도 한국의 2024년 기준 연간 석유화학 생산능력(1270만t)의 2.6배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도 7개의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을 2024년부터 순차 가동하고 있다. 7개 공장을 모두 가동하면 연간 1150만t의 에틸렌을 쏟아낸다. 

정부와 업계는 8월 20일 만성 과잉공급에 처한 에틸렌 연간 생산량을 최대 370만t 줄이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포함한 ‘석유화학 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 재편 자율 협약’을 맺었다. 기업은 해당 협약을 토대로 사업 재편 계획을 2025년 말까지 제출하고, 정부는 계획에 따른 지원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계획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민간 기업의 자발적인 빅딜이 우선이다.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통해 측면 지원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대한화학회 회장을 지냈고, 과학·환경·에너지 분야에서 3200편 이상의 논문과 칼럼을 쓴 화학계 원로 학자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 원인은 어떻게 진단하나.  

"위기의 뿌리가 깊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중화학 산업을 통해 일어났다. 1960년대 정유·석유화학 공장이 세워지고, 중공업으로 산업이 발전했다. 2012년 별안간 모든 요소 공장의 문을 닫았다. 당시 요소 공장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오염이 많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그랬던 것이다. 요소 공장은 산업화에 있어 필수적이다. 2000년대 초 중국도 경제 발전을 시작하면서 먼저 요소 공장을 지었다. 산업화가 진행된 한국은 요소를 중국에서 값싸게 사 오면 되니, 더럽고, 지저분한 요소 공장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커졌다. 그러다 이후 10년 만에 요소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운송 분야가 사용하는 요소수의 양은 비중이 크지 않다. 그런데도 수급 불안정이 나타나니, 물류가 멈추는 등 대혼란이 생겼다. 석유화학 산업도 요소수 사태와 비슷하다. 석유화학 산업은 전형적인 공해 산업이다. 에너지도 많이 쓰고, 인명 사고도 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이 산업을 꼭 유지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생겼고, 중국이 뜨면서 중국을 대안으로 삼게 됐다. ‘이제 더럽고 지저분한 (석유화학 산업은) 하지 말자’는 인식이 생긴 건데, 이게 현재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잘못된 산업 정책이 지금 같은 위기를 만들었다는 건가.

“정책을 만드는 쪽은 산업화 현장에 대해 무지했다. 기존 굴뚝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건 금융 서비스 산업인데, 한국은 그쪽으로 발전하지도 못했다. 결국 대안 없이 굴뚝 산업은 더럽고, 위험한 것이라는 낙인만 찍었다. 석유화학 산업은 대표적인 박리다매 산업이다. 공장을 짓는 데는 조 단위의 돈이 든다. 큰 자본을 투자해 물량을 쏟아내야 한다. 정유와 석유화학 산업이 비슷한 면이 많은데, GS칼텍스가 탈황 장비 설비에만 5조원을 투자했다. 또 공장을 한 번 가동하면 멈추질 못한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끊임없이 돌려야 한다. 이런 데 쓰는 비용에 대해선 이해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원인이 있었을까.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있었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화학산업을 규제해야 한다며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제정했다. 화평법의 경우 유럽연합(EU)의 리치(REACH)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리치는 △국민 안전과 환경보호 △ 화학제품의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 △화학 산업 진흥을 제일 먼저 강조하는데, 화평법은 산업 진흥을 쏙 빼고, 화학물질의 ‘등록과 평가’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늘어 기업 입장에선 시간과 비용 낭비가 커졌다.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낸 법안이 화평법과 화관법이다. 화학물질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유해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늘 규제가 먼저였다.”

법을 폐지해야 하나.

“폐지는 힘들고,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실현 가능한 노력을 해야 한다. 화평법, 화관법 이후에도 화학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규제를 위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규제를 완전히 풀자는 게 아니다. 합리적인 규제를 하자는 것이다.”

석유화학을 망하게 둘 수는 없을 텐데.

“주변 나라를 믿고 산업 정책을 결정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을 요소 사태에서 배워야 한다. 일본도 메이지유신 이후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요소 공장을 세웠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구조조정을 했는데, 아직도 요소를 자국 내에서 생산 중이다. 내수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든다. 일본 요소는 품질이 매우 좋아 의약품에 쓸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자국 생산을 완전히 없앴다. 이런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석유화학 산업이 수출을 많이 하는 산업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석유화학 산업은 아주 기본적인 소재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산업을 포기하면 기초적인 굴뚝 산업은 다 죽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석유화학 산업의 내수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에틸렌의 경우 완전 포기하면 감당이 안 된다. 기체여서 수입하기도 어렵다. 경제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구조조정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구조조정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특정 산업의 특혜 주기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간 기업이 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석유화학 산업은 업계를 구성하는 기업이 너무 많다. 별별 기업이 다 들어와서 기술도 천차만별이고, 설비도, 품목도 모두 다르다. 이걸 어떻게 합치고, 없애야 하는지 산업통상자원부 관료가 어떻게 알겠나. 결국 기업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런 뒤에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맞는다.”

중국의 추격과 약진을 어떻게 보나.

“정면충돌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 석유화학 등 장치산업은 후발 주자가 언제나 유리하다. 우리가 못나서 그런 게 아니다. 장치가 노후화해 이를 포기할 때까지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바꾸지 못한다. 결국 길은 충돌을 피하는 것 하나다.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용(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 등) 분야에서 붙어봤자 승부는 나지 않는다. 자본력과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새로운 품목을 개발해야 한다. 짐작으로는 기업도 어느 정도 준비는 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가 준비돼 있는지를 보여줘야 정부도 지원이 가능하다. 애석하게도 아직 기업이 이를밝힌 사례는 없다.”

정부의 역할은 없나.

“제일 절박한 건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이 기본 소재 산업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석유화학 산업을 퇴출하려고 했던 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석유화학이 환경 부담이 큰 건 맞는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퇴출이 아닌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개선해 어떻게 안전하게 쓸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 측면 지원이 필요하다.” 

박진우 기자